이 작은 숫자가 당신 삶을 바꾼다
이 작은 숫자가 당신 삶을 바꾼다
  • 김정덕 기자
  • 호수 201
  • 승인 2016.07.26 0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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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숨은 함의

 

▲ 정부의 청년실업률과 민간 싱크탱크의 청년실업률이 다르게 나타나면서 정부 통계의 신뢰성이 도전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오류 없는 통계는 없다. 통계를 맹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통계의 오류가 당연하다고 해서 현실과 다른 통계를 쏟아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류를 줄이기 위한 방법론을 정부가 나서 찾아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은 통계 숫자가 국민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 있어서다.

지금은 ‘정찰제’라는 미명하에 에누리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재래시장이나 동대문 패션몰에 가면 으레 펼쳐지는 풍경이 있다. 가격 흥정이다. 그래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흥미로운 건 물건 가격을 깎아주고 난 뒤 던지는 장사꾼들의 한마디다. “밑지고 판다” “원가라 남는 게 없다” “다른 데서 이 돈 주고 못 산다”….

물론 거대 유통채널에 납품하기 위함이거나 손님이 단골이거나 떨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말은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99.9% 거짓말이다. 원가 혹은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한다는 건 자선사업이나 다름없어서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장사꾼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손님은 그 얘기를 듣고 좋아한다는 점이다. 원가에 마진을 붙여 값을 지불했을 가능성이 높은 게 뻔한 데도 말이다. 하지만 물건의 원가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걸 소비자가 안다면 어떻게 될까. 웃기는커녕 그 물건을 사지 않을 가능성이 100%다. 소비자가 모르는 원가를 부풀려 마진을 감추기 때문에 이런 속임수가 가능하다.

9900원짜리 물건을 ‘1만원대’가 아닌 ‘9000원대’로 홍보한다든지, 높은 할인율을 먼저 크게 적고 낮은 할인율을 뒤에 조그맣게 적어 놓는 백화점의 세일 수법도 장사꾼들의 대표적인 속임수다. 방법은 달라도 모두 숫자 속에 진실을 감춘다는 점에선 똑같다.
 

▲ 장사꾼들이 수치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처럼 정부도 수치로 국민을 호도한다.[사진=뉴시스]

이처럼 숫자로 진실을 왜곡하는 건 장사꾼만이 아니다. 공공부문에서도 왜곡된 숫자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부가 내놓는 각종 통계 수치가 현실과 맞지 않아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사실 숫자는 정부 정책을 가장 쉽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장치다. 예를 들어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각종 경제지표가 좋아졌다는 통계가 나온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집권 정당은 이후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정부가 통계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부와 기업 등 기득권층이 통계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통계학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대학교의 지역통합ㆍ거버넌스 연구학부의 로렌조 피오라몬티(Lorenzo Fioramonti) 교수는 “정책을 만들 때 숫자와 통계는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숫자는 때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코블렌츠 응용학문대학에서 통계학을 가르치는 게르트 보스바흐(Gerd Bosbach) 박사는 “정부와 기업, 은행, 보험사 등이 모두 통계로 국민과 소비자를 속인다”면서 이들을 두고 ‘사회의 사기꾼’이라 표현했다.

미국의 통계학ㆍ사회심리학 전문가인 대럴 허프(Darrel Huff)는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여러 자료와 통계들로 여론을 조작하지만, 일반 국민은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한다”면서 “기업과 정부정책을 평가할 때 그들이 제시한 숫자들은  합리적으로 의심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공식통계에서 가장 많은 오류가 지적되는 것은 바로 노동 관련 통계다. 이해당사자인 노동조합이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업률의 경우엔 대기업 산하의 싱크탱크에서조차 정부 통계 왜곡이 심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6월 정부의 청년실업률 통계를 완전히 뒤엎는 통계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했을 때, 국민은 동요했고 진실공방이 펼쳐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정부의 공식 청년실업률은 8.0%, 공식 청년실업자는 34만5000명이었다.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이 ‘청년 고용보조지표의 현황과 개선방안’에서 밝힌 수치는 달랐다. ‘사실상 실업 상태’인 청년들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일단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기준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과 ‘입사시험 준비생’도 실업자에 포함하면 청년실업률은 22.6%, 청년실업자는 113만8000명이었다. 여기에 ‘비자발적 비정규직 청년층(45만8000명)’과 ‘그냥 쉬고 있는 청년층(19만7000명)’까지 포함하면 청년실업률은 34.2%, 청년실업자 수는 총 179만2000명에 달했다.

청년실업률 진위 논란, 왜

특히 정규직을 원하지만 일자리가 자체가 부족하거나 능력이 부족한 탓에 임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비자발적 비정규직’ 숫자만 해도 공식 청년실업자의 두배를 훨씬 웃돈다는 사실은 청년실업률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통계청은 “국제기준과 다른 임의적ㆍ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반박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2011년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실업률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어 실제로는 통계청 수치보다 4배가량 높아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통계 수치가 잘못 나온 게 뭐 그리 대수냐 싶지만, 통계는 우리의 삶과 직결된다. 일례를 들어보자. 지난 6월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빌라 3층에서 한 AS기사가 에어컨 실외기 수리작업을 하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와 용역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다. 하지만 통계는 그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특수형태근로자’에 해당하는데, 일종의 자영업자다. 근로기준법(근기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간 준수, 최저임금 준수, 4대 보험(산재보험은 일부 적용) 적용 등이 모두 배제된다.
 

특히 이번 사고 당시 그는 현장에 혼자였다. 일반적으로는 업무를 지시하고 임금을 주는 이가 사업주에 해당하고, 이 사업주들을 통해 산업안전규정에 따라 작업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업주였기에 산업안전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만큼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지난 6월 CJ대한통운의 택배기사가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했는데, 그 역시 특수형태근로자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이 준수되지 않으니 무리하게 작업을 하다 변을 당한 거다.

단어 정의만 바꿔도 통계 달라져

이런 사고는 기업의 사업 외주화가 만들어낸 간접고용(특수형태근로) 폐해의 일부다. 만약 이들이 ‘노동자’로 인정만 받아도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결국 통계를 뽑아내는 기초데이터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통계 수치가 달라지고, 수치가 달라지면 정책이 달라지고, 정책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통계 수치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계 수치를 자주 인용하는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통계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걸 어떻게 개선할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통계는 어떤 지수가 가장 정확한 지수냐 하는 문제, 그 지수를 가지고 기초데이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 그 가운데 지수의 정확성은 강대국의 논리나 국제기준 등과도 맞물려 있어 개선이 쉽지 않다. 반면 기초데이터 조사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예를 들어 노동통계를 낼 때 설문지가 정확하지 못하다든지 하는 것들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다만 통계마다 개별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두 가지를 수정한다고 해서 개선된다기보다는 사안에 따라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장상환 경상대(경제학) 명예교수는 “통계가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손을 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보다는 좀 더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는 있다”면서 주장을 이어나갔다. “사실 문제는 로데이터(원자료)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따라서 통계에 쓰이는 로데이터를 모두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국세청은 소득자료를 개인정보보호라는 명목으로 공개하지 않지만, 개인정보는 지운 다음 내놓을 수 있다. 그게 어려운가. 현 정부는 표면적으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데, 그 전제조건은 모든 국민의 소득과 세금 현황을 낱낱이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야 엉뚱한 사람이 혜택을 보거나 세금이 새는 걸 막을 수 있다. 빅데이터 시대에 그 정도도 공개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통계 현실화, 정부 의지 문제

장 교수는 “주로 표본조사에서 오류가 나온다”면서 표본조사의 신뢰성을 높일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모집단을 인터뷰해서 그걸 그대로 공개하는 방법보다는 특정 모집단을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조사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선 조사원의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둘째, 표본의 선정과 선정된 표본에 대한 정확한 조사다.

▲ 통계의 태생적 오류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 오류를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사진=뉴시스]

장 교수는 “예컨대 한국은행이 국내총생산(GDP)을 방정식으로 뽑아낼 때 쓰는 계수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탓에 현실 반영이 안 될 때가 있다”면서 “기초데이터는 변화한 사회 구조를 가능한 한 빠르게 반영할 수 있도록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실업률이 달라지는 것처럼 정부와 국민이 공감할 수 있게 올바로 정의하는 것도 통계의 오류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통계와 현실의 괴리는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게 다수 통계학 전문가들의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통계수치와 현실의 괴리를 줄이려는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의 모든 기초데이터는 정부가 갖고 있으니 결국 정부의 의지 문제”라는 장 교수의 지적을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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