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대기업 임원에게 필요한 것

▲ 중소기업에선 1인 다역을 능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사진=뉴시스]
중소기업에 재취업한 전직 대기업 출신 임원들은 가끔 ‘대리보다 무능하다’는 혹독한 평가를 듣곤 한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환경이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원과 인력이 최소화돼 있는 중소기업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손 걷어붙이고 직접 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대기업 퇴직 임원의 경험이 필요한 건 맞지만, 퇴직 임원도 마음가짐을 다시 잡아야 한다.
 
올해 들어 이력서가 부쩍 많이 들어온다. 대기업, 공기업, 심지어 구조적으로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굴지의 다국적기업 직원들까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이력서를 보내고 구직활동을 한다. 반면 국내에 기반을 둔 중소 제조업체에서는 ‘일 할 사람이 없다’며 하소연을 한다. 한 중소기업 CEO의 말을 들어보자. “신입사원은 지원조차 하지 않고 경력직들도 설이나 추석, 휴가철이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리더십 때문인 것 같아 퇴직한 대기업 임원 출신을 CEO로 영입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다. 사람은 많아도 중소기업에서 쓸 인재가 없다.”

이런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4년 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추천하는 사회적기업 ‘시니어파트너즈’를 설립했다. 기업은 최소 비용으로 숙련된 인재를 채용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조기 퇴직한 중장년 전문인력에게는 또다른 일자리가 제공된다. 기업과 인재 모두에게 윈윈인데다 취지가 바람직한 만큼 기대도 컸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반응이 의외로 미지근해서 지난 7월초 ‘인재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12명의 중소기업 CEO를 초청해 작은 세미나를 가졌다.

이들의 의견은 대동소이했다. 대기업 출신 임원이 중소기업에 입사한 후 겪는 두가지 어려움은 ‘리더로서 필요한 역량과 마음가짐’이다. 자원과 인력이 최소화돼 있는 중소기업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손 걷어붙이고 직접 해야 한다. 또한 물건 하나라도 아끼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자원과 인력이 탄탄한 대기업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임원들은 중소기업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이전에는 아랫사람이 가져온 결과만을 보고 받는 시스템이었다면, 이제는 엑셀·파워포인트와 같은 서류작업, 시장조사 등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임원들은 현업 능력이 떨어져 ‘대리보다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 CEO는 이렇게 비판했다. “유명 대기업 출신 임원들 몇명을 채용해 봤는데, ‘부잣집에서 고생 없이 자란 딸이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서 투정부리는 것’과 흡사해서 마음고생만 했다.”

이 말을 들은 한 경제학자는 다가올 미래를 이렇게 예견했다. “향후 5년 내 모든 기업은 25~30% 임원을 감축해 대량 인력이 배출될 것이다. 따라서 상시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이 당연시되므로 퇴직 직장인을 돕는 재생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기간에 퇴직자는 사회적응 능력과 태도 등을 리셋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재가 목마른 중소기업은 퇴직 인재의 능력과 경험을 사는 장터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리퍼블리시(Re-Publish) 프로그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20년 전 만들었던 중고장비를 새것으로 재생해서 다시 적정가격으로 팔거나 단종 제품인 경우 오히려 비싸게 팔리는 시스템이다. 타이어를 새것으로 바꿔 끼웠다고도 해석되는 리타이어(Re·Tire)와 조화를 이룬다면 폭발적인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기업에 지난 4년간 기울인 노력한 만큼의 성과와 성장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려움을 절감할 때가 많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희미하게나마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중국의 극동지방에서만 서식하는 모소 대나무는 처음 4년이 지나도록 싹이 채 3㎝도 돋지 않는다고 한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두툼한 뿌리들이 퍼져나가면서 튼튼한 기반을 다지느라 싹이 트는 데 몇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소 대나무는 5년을 기점으로 하루에 30㎝가 넘게 자라 그 키가 30m에 이른다. 무엇이든 시작은 어렵다. 하지만 토양이 일궈지면 싹이 돋고, 나무가 자라며, 생태계가 조성된다. 초기의 어려움을 견뎌내면 ‘모소 대나무’와 같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지금 중요한 건 열매라 아니라 인내다.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이사 susie@younpartners.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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