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살돈시대 ❻

▲ 비대해진 몸을 사람들에게 선보일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박 강사가 느닷없이 “돼지야!” 라고 불러도 아무도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자가 “돼지야!” 하고 부르면 2~3명이 뒤를 돌아다본다. 그때마다 그는 박장대소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조만간에 다 돌아본다, 이것들아!” 그의 말이 맞다. 조만간 우리는 “돼지야” 소리에 모두 뒤를 돌아다 볼 것이다.

어느 날 윙윙 소리에 눈을 떠보니 박강사가 전동휠체어에 앉아 조종 연습을 하고 있었다. 벽 쪽으로 가지런히 휠체어가 4대가 더 놓여 있었다. “회사 경영진께서 여러분을 위해 거금을 투자하셨습니다. 미녀 뚱보들이 세상에 첫선 보일 날이 다가오자 너희의 원활하고 신속한 체중 증가를 위해 구매를 결정하신 거죠. 물론 아이디어는 내가 제공했다. 이 뚱보들아!” 존대와 반말을 섞어 하는 그의 말투가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무거운 몸을 휠체어에 의존하니 ‘내가 왜 불편한 직립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락했다. 우리는 더는 호모 에렉투스가 아니었다.

명색이 합숙소라고는 하나 이곳은 잠자는 방과 조리기구 하나 없는 식당뿐이다. 미녀 코끼리들은 나란히 전동 휠체어에 앉아 배달 음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오락기의 조이스틱 같은 것만 움직이면 됐다. 지퍼가 터진 문디 가시나는 운전이 서툴러 잔디밭으로 연결된 통로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드디어 우리의 비대해진 몸을 사람들에게 선보일 운명의 날. 덩치만 산처럼 커졌다 뿐이지 마음이 여린 혜진이는 아침이 되자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창피한 생각이 들어 간밤에 치킨을 반 마리밖에 먹지 않았다며 이를 악물기도 했다. 출발을 앞두고 우리는 모두 ‘펫-바이(bye)’ 라는 문구가 박힌 노란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시각적 효과는 단연 최고였다. 노란 단체복을 입은 후 우리는 뒤뚱거리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비포장도로에서 덜컹댈 때마다 넘실대는 살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문디 가시나는 자신의 특대형 브래지어를 조달해주지 않은 김 실장을 욕하며 버스에 올랐다.  그 와중에도 과도하게 출렁이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킥킥거렸다. 욕쟁이 박 강사는 자신의 작품들과 동행하지 않았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며 아무도 우리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욕을 먹어도 좋으니 박 강사가 던지듯 주던 음식들이 그리웠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두 시간여를 달려 의정부를 지나 강북에 있는 행사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자 아이들이 달려와 박 강사가 늘 부르던 말로 우리를 반겼다. 돼지라고 부르는 애들에게 문디 가시나는 저주를 퍼부었고 마음이 여린 혜진이의 얼굴에서는 쉼 없이 눈물이 흘렀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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