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인 | 자백

▲ 영화 ‘자백’의 장면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이자 서울시 공무원인 유우성씨가 간첩으로 내몰렸다. 국정원은 유씨 동생의 ‘자백’이 증언이라고 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면? 뭔가 미심쩍다고 생각한 한 언론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2015년 10월 대법원은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이다.

영화 ‘자백’은 ‘간첩조작사건’에 의심을 품었던 당사자인 최승호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 액션 추적극이다. 최 감독은 한국ㆍ중국ㆍ일본ㆍ태국 4개국을 넘나들며 40개월간의 추적 끝에 드러나는 스파이 조작 사건의 실체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다. 방송국 시사프로그램 PD 출신으로 성역 없는 취재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이번 영화로 영화감독의 세계에도 발을 들였다.

영화는 놀랍도록 치열한 취재 과정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거나 피해자 입장에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 이면에 감춰진 사실을 밝혀낸다. 특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거침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스파이 조작 사건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하는 모습은 ‘한국의 마이클 무어’에 비견될 만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4개국을 넘나들며 찍은 각각의 영상 역시 미스터리 추격 스릴러 못지않다.

전주국제영화제의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점점 왜소해지는 언론의 현실에 비춰볼 때 큰 횟불 같은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영화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 작품에 수여하는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아시아영화진흥기구에서 선사하는 넷팩(NETPAC)상까지 받으며 저력을 과시했다.

영화의 제작 과정도 의미가 남다르다. 영화는 스토리펀딩 방식으로 후원금을 모아 만들었다. ‘시민들에게 직접 영화를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스토리펀딩이야말로 최상의 방식이라 생각했던 거다. 제작진을 국정원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시민들에게 “국정원을 바꾸자”고 호소했고, 4억3000만원이라는 스토리펀딩 사상 최고 액수의 후원금을 모았다. 최 감독은 “다른 정부기관들은 좀 부패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더라도 치명적인 사태를 발생시키지는 않지만 국정원의 정보가 조작되면 국가를 파탄의 길로 내몰 수도 있다”면서 “그러기 전에 철저하게 뜯어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유우성 사건 등이 간첩조작으로 밝혀졌어도 국정원이 실제로 변한 건 없다. 간첩조작을 한 직원들을 그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고 유력언론들이 국정원의 간첩조작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도 그 심각성을 몰랐던 게 사실이다.

최 감독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국정원이 국민을 협박하고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자백’을 만든 이유”라고 말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 역시 그 뜻에 동참해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손구혜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