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의 흔적들

정부는 국가 발전 방향을 잡는다. 특정 정책을 선정하고 실행하는 이유다. 정부의 성격에 따라 그 내용은 다르다. 하지만 방향은 늘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국책사업이 비선세력들의 돈벌이로 전락한 이유다.

▲ 박근혜 정부의 국정 어젠다인 창조경제가 최순실 게이트로 흔들리고 있다.[사진=뉴시스]

‘문화융성’.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다. 3대 전략에 10대 과제가 포함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세기에는 문화가 국력”이라며 “문화융성을 경제 재도약의 성장엔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문화복지와 창작지원, 첨단 콘텐트 산업 육성이라는 디테일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런 국정기조는 수출과 내수경기 부진으로 신음하던 현 시점에서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의 속성인 창조성과 다양성을 국가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3년 만에 드러난 문화융성의 민낯은 이런 기대를 배신했다. 문화융성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다. 비선실세 최순실과 그 측근들의 돈벌이 기회였다. 최씨의 측근인 차은택 감독이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됐다. 차씨는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을 통해 이권을 챙겼다.

 
차씨가 가장 깊숙이 개입한 사업은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이다. 이 사업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의 문화창조융합본부가 주도했다. 초대 본부장 겸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차씨다. 콘텐트 기획부터 유통까지 ‘문화벨트’로 잇겠다는 거창한 사업 목적에는 막대한 예산이 책정됐다. 정부는 2019년까지 7000억원을 쏟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막대한 예산이 배정된 배경에는 차씨가 있다. 그는 문체부 요직에 자신의 인맥을 깔았다. 차씨의 홍익대 대학원 은사인 김종덕 교수가 문체부 장관에, 광고계 은사이자 선배인 송성각씨는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됐다. 문화 융성의 정책 기조가 차씨의 놀이터가 된 셈이다. 문체부는 “의혹은 의혹일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 문체부는 내년도 예산안 일부가 최씨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삭감할 계획이다.

올림픽 마스코트 선정까지…

정부의 국정 어젠다인 ‘창조경제’에도 비선실세의 그림자가 남았다. 차씨 측근인 김모씨가 대표인 유라이크커뮤니케이션즈는 설립된지 불과 1개월만에 창조경제센터 17곳의 홈페이지 구축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로 꼽혔던 아이카이스트의 부사장이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의 동생인 정민회씨로 드러났다. 가상현실 콘텐트 사업도 수상쩍다. 이 사업 행사에 참석한 업체 대표는 최씨의 아지트로 알려진 카페의 운영업체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지금껏 국고 15조원가량이 투입된 대형 국책사업인 평창동계올림픽에도 이들의 그림자가 있다. 최씨 소유의 기업 ‘더블루케이’는 해외 시공사와 업무제휴를 맺고 올림픽 개막식장 공사계약을 시도했다. 두 업체가 만나는 자리에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 수석과 김종 전 문체부 차관도 참석했다. 더블루케이가 노렸던 것은 평창올림픽 시설공사 사업 중 하나인 오버레이(임시 스탠드 및 부속시설) 설치 사업이다. 수주금액은 3000억원에 달한다.

최씨 조카 장시호씨는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를 만들어 6억7000만원의 예산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받았다. 신설법인이 정부 예산을 따낸 것을 두고 장씨가 최씨의 조카라는 배경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장씨는 이 센터를 통해 1300억원이 들어간 강릉빙상장의 사후 활용계획에도 개입하려 했다. 올림픽 마스코트 선정과 조직위원장 교체에도 최씨 일가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란 의혹도 있다.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선정이 늦어진 것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결정 직전에 있던 흰 호랑이 대신 진돗개를 평창올림픽 마스코트로 추천하면서다.

올림픽의 문화예술사업에서도 최순실 인맥의 이름이 보인다. 김종덕 장관의 홍대 후배인 목진요 연세대 교수는 올해 6월 평창올림픽 개ㆍ폐회식 영상 감독을 맡았다. 차씨가 거느린 업체들은 관련 광고, 공연, 영상 이권에 적극 개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표절 논란이 불거졌던 국가 브랜드 개발 사업에도 차씨 관련 회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한국형 공적개발원조’ 사업인 코리아에이드는 미르재단이 주도했다. 결국 초대형 국책사업 곳곳에 최씨의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는 거다. 국민들을 향해 있어야 할 국가 정책이 엉뚱한 곳을 보고 있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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