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재테크 | 40대 가장 김 과장의 재무설계

▲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은 가계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사진=뉴시스]
나이 마흔은 불혹不惑이라고도 한다. 공자가 자신의 삶을 빗대 지어낸 말이다. 문자대로라면 어지간한 일에 흔들림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에서 마흔은 여전히 불안하다. 가장 경제활동이 왕성한 시기지만 자녀양육과 노후준비, 고용불안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마흔 가장에게 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철수(가명) 과장은 올해 딱 마흔이다. 그는 요즘 불안하다. 결혼 11년차에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10살 된 딸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8살 아들이 있다. 김 과장은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하려면 앞이 깜깜하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다.

김 과장은 대학 졸업 후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지금의 직장으로 옮겼다. 급여는 연봉제로 인사고과에 따라 매년 재계약을 한다. 안타깝게도 김 과장이 맡은 업무는 회사 매출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탓에 자신이 소화하는 업무량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중소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전체 직원은 10명 이하에 불과해 복리후생 수준도 열악하다. 다시 말해 급여는 오를 가능성이 낮고, 성과급을 기대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지금 받는 급여 수준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 과장의 급여는 모든 수당과 상여금을 포함해 월평균 400만원. 그 정도면 그래도 많이 받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매월 빠져나가는 주택담보대출 상환금만 157만원이다. 여기에다 월평균 아파트 관리비가 21만원, 통신비가 15만원, 보험료가 22만원, 아이들 학원비가 58만원, 식비 120만원(외식비 포함), 차량유지비가 35만원, 기타 잡비 28만원을 지출한다. 매월 56만원이 적자다. 명절이 끼면 마이너스 금액은 더 커진다.

김 과장 부부가 적자라는 걸 뒤늦게 인지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신용카드다. 급여의 대부분이 신용카드 결제대금으로 빠져나가고, 이후엔 또 신용카드로 결제하니까 돌려막기식의 적자구조가 눈에 안 보였던 거다. 마이너스라는 걸 알아차릴 즈음엔 이미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김 과장의 더 큰 걱정은 미래를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과장의 가계부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역시 원인은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하는 대출금이다. 김 과장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하면서 저축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을 옮기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김 과장의 회사는 강남에 있었다. 경기도 외곽의 전셋집을 얻어 출퇴근해왔다. 당초 전세금은 2억2000만원이었고 대출금은 5000만원이었다. 하지만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군’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출퇴근과 학군까지 모두 고려해 천호동에 있는 98㎡(약 30평) 의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이때 1억5000만원의 대출을 추가로 받았다. 대출금은 2억원으로 불어났고, 김 과장이 매월 157만원(모두 원금균등상환)씩 대출금을 갚게 된 이유다.

그럼 무얼 포기해야 할까. 직장? 학군?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 조금 싸고 규모가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거다. 집을 구할 때 몇천만원은 큰 차이가 아닌 것 같지만 매월 갚아야 할 상환금은 크게 달라진다. 더구나 김 과장의 경우엔 시중은행 이자율을 그대로 적용받았다. 평수가 넓어서다. 때문에 주택금융공사가 82㎡(24.8평) 이하 아파트에 낮은 이자로 대출해주는 버팀목대출(수도권 1억2000만원 한도) 대상이 아니었다. 이자만 상환하면서 2년 단위로 연장해 최대 10년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버팀목대출의 장점인데, 이를 활용하지 못한 거다.

혹은 굳이 아파트가 아닌 빌라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요즘 신축빌라들은 실평수도 크게 나오고 관리비는 몇만원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넓은 아파트에서 살면 행복도나 만족도가 더 크겠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 행복감은 공허할 뿐이다. 마이너스 가계를 바로잡아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면 그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결국 김 과장도 주택담보대출금을 줄이는 것에 동의했다. 운이 좋게 아파트는 한달도 안 돼 금방 새 주인을 찾았고, 1억원만 대출받아 삼전동 빌라로 옮겼다. 30년 원리금균등상환(월평균 43만원)으로 설정해 부담도 줄였다. 관리비는 21만원에서 8만원으로 줄었다. 상황을 뒤늦게 인지한 김 과장의 부인도 외식을 줄여 식비를 100만원으로 조정하고, 잡비는 28만원에서 14만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물론 25만원의 공과금 지출이 생겼지만, 마이너스 가계는 플러스로 돌아설 여력이 생겼다. 여유자금은 80만원. 나머지는 조정하지 않기로 했다. 남는 돈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현재 김 과장의 회사는 퇴직연금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사업장이고, 노후에 김 과장이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 월 수령액은 115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노후 준비가 절실한 상황이다. 아이들 교육비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두 자녀의 교육자금을 위해 각 10만원씩 적립식펀드에 가입하기로 했다. 비과세인 해외 주식형펀드(10만원)로 비상금을 마련하고, 부채중도상환을 위해 저축은행에 48만원을 저축하기로 했다. 향후 아파트 구입을 위해 2만원짜리 청약도 넣었다.

김 과장 부부는 저축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걸 기뻐했다.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김 과장의 부인은 “새로 이사 갈 동네에 작은 재래시장이 있어 좋다”면서 “많은 물건을 사야 하는 대형마트는 식재료가 냉장고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일이 많은데 이제는 그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과장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 추운 겨울,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해도 급여는 오르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고 부인에게는 미안해서였다. 갓 마흔이 된 가장의 한숨은 그래서 깊었다.
김명선 한국경제교육원 선임연구원 bluem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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