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역풍 막으려면…

▲ 촛불과 태극기, 양극단의 세력이 분노를 표출한다. 하지만 분노만으론 미래를 볼 수 없다.[사진=뉴시스]
필자가 언론사 계열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을 때의 ‘가슴 아픈’ 기억 한 토막. 어느 에이전트로부터 프랑스 책을 번역해서 내놓을 의사가 있느냐는 요청이 왔다. 원본을 보니 저자가 이름 없는 레지스탕스 출신의 92세 노인이고, 본문이 13쪽에 불과해 도저히 채산성이 맞지 않을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웬걸, 이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대박이 난 것을 보고 쓰라린 배를 감싸야 했다. 다름 아닌 2010년 스테판 에셀이 내놓은 「분노하라」라는 제목의 책에 관한 얘기다.

저자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젊은이는 분노할 의무가 있다”며 “정치적 무관심과 체념을 떨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프랑스 사회에 큰 울림을 줬고 전세계 35개국에서 무려 3500만권이 팔렸다.

세계는 지금 분노의 시대다.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 분노 탓이다. 이대로는 안 되니 한번 바꿔보자는 심리가 예상 외의 결과를 낳았다.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로 대변되는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갈등이 심상치 않다. 헌법재판소가 기각이든 인용이든 아니면 각하를 하든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수긍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1946년 신탁과 반탁으로 나뉘어 3ㆍ1운동 기념식마저 민족진영과 좌파진영이 따로 거행했던 해방 후 혼란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마치 마주 달리는 열차 같은 모습이다. 집단광기의 끝은 결국 파국이니 걱정이다.

촛불은 분노다. 분노는 또다른 분노를 부르고, 확대재생산된다. 태극기 집회는 처음에는 불안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일부 촛불 집회현장에서 “이석기 석방과 통진당 해산 취소하라”는 구호가 나오자 불안감이 의구심으로 바뀌었고, 의구심은 점차 분노의 얼굴로 변했다.

여기에 정치인들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기 진영의 표밭을 다지는 계기로 집회를 활용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같은 민주당 내에서도 ‘대연정’과 ‘선한 의지’를 말한 안희정 충남지사 보다 ‘분노’와 ‘적폐청산’의 기치를 높이 든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훨씬 높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좌파의 집권가능성에 분노한다. 양쪽은 상대방을 불신하기에 어떤 논리를 들이댄다고 해도 상대의 동의를 얻기란 기대난망이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는 부류와 “야당은 빨갱이, 공산주의자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리 그 반대의 증거를 들이대도 설득할 수 없다.

해결책은 두가지다. 첫째, 우리가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고 냉정을 되찾는 거다. 감정과 행동 사이에 공간을 마련해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나와 내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성찰의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이 세상에 100% 진실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진실은 확률게임이다. 내 믿음과 반대되는 증거를 만나면 열린 마음으로 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분노는 치명적인 독약이다. 분노라는 감정은 중독성과 함께 점점 고조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과 함께 무한대로 팽창한다. 끝내 냉정을 잃어버리고,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분노는 삶의 원동력이자 미래를 향한 에너지라는 야누스 얼굴을 가졌다.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인류의 스승인 예수도 분노할 때는 단호하게 분노했다.

4ㆍ19혁명으로 농축된 이 땅의 분노 에너지는 30년 가까이 이 땅의 경제성장을 이끌었고,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중간급유를 받아 또다른 성장의 견인차가 됐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분노로 일어섰다. 촛불과 태극기 집회로 축적된 국민 분노의 에너지가 공멸이 아니라 국가발전의 새로운 추진체가 돼야 한다.

태극기는 민심의 순풍을 타고 펄럭여야 한다. 오직 힘으로만 흔드는 태극기는 한계가 있다. 동굴 안에 촛불을 켜면 동굴 내부만을 밝힐 뿐 밖은 오히려 더 어두워진다. 동굴 안에서는 변화무쌍한 국제무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진짜 분노해야 할 일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우물 안에 갇혀있는 것이다. 분노만으로는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4차산업혁명에 대비조차 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개혁에너지다. 분노를 한차원 승화시킨 새로운 에너지의 탄생을 기대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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