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잃은 IC단말기 지원사업

2년 전 영세자영업자의 환영을 받았던 대책 ‘IC단말기 전환사업’을 기억하는가. MS(마그네틱) 카드 사용이 전면 중단되자 정부가 추진한 자영업자 지원책이다. MS카드 단말기를 IC(직접회로)카드 단말기로 교체하면서 자영업자의 숙원인 수수료를 떨어뜨리겠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 대책은 역주행하면서 자영업자를 되레 울리고 있다.

▲ IC단말기 전환사업이 당초 계획과 달라지면서 가맹점 수수료 인하가 어렵게 됐다.[사진=아이클릭아트]
‘464조5000억원’.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총 대출 규모다. 자영업자 1인당 평균 7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빚을 내서 창업한 이도, 장사가 되지 않아 빚을 낸 이도 수두룩하다는 거다. 이 때문인지 정부는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탁상공론의 결과물에 천편일률적 지원책이 숱하지만 그나마 자영업자의 기대를 모은 대책이 있었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방안이 담긴 ‘IC단말기 전환사업’이었다. 밴(VAN·부가통신망사업자) 수수료를 떨어뜨려 영세가맹점의 부담을 줄이고 궁극적으론 가맹점 수수료의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게 이 사업의 골자였다.

IC단말기 전환사업은 2015년 금융위원회와 여신협회를 주축으로 시작됐다. 2018년 7월부터 MS(마그네틱) 카드 사용이 전면 중단되고 IC(직접회로) 카드로 전환됨에 따라 카드 가맹점은 모두 IC단말기로 교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높은 수수료도 손보겠다는 게 정부 당국의 계산이었다.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금융당국은 연매출 2억원 이하 영세가맹점 65만곳의 단말기를 무상으로 교체해주기로 했다. 카드업체들로부터 1000억원의 기금도 조성했다. 입찰을 통해 IC단말기 교체 사업을 시행할 밴사 3곳(한국스마트카드·금융결제원·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도 지정했다.

이들은 평균 90원대인 밴수수료를 각각 45원, 53원, 40원으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한 밴수수료 인하 효과는 연간 5000억원 수준이다. 영세자영업자는 IC단말기 전환사업에 환영의 뜻을 내비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맹점 수수료가 줄면 먹고사는 걱정을 덜 해도 됐기 때문이다.

사라진 ‘수수료 인하’ 정책

 

그런데 최근 금융당국이 딴소리를 하면서 지침을 바꿨다. “모든 밴사가 참여할 수 있다. ‘수수료 인하’ 부문은 삭제한다. 기존 사업자와 신규 사업자에게 일괄적으로 75원의 수수료를 적용하도록 한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는 거였다. 여신금융협회 측의 말을 들어보자. “기존 3개 사업자가 2015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교체한 단말기는 6만5000대가량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속도로는 2018년까지 사업을 완료할 수 없다.” 이 주장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금융당국이 지침을 바꾼 이유는 타당하다.

반론도 나온다. “IC단말기 전환사업은 완료까지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수수료 인하 효과를 포기하면까지 사업자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 밴수수료 75원도 논란거리다. 평균 46원으로 내려갈 예정이던 밴수수료를 무슨 근거로 올렸냐는 거다. 여신협회 관계자는 “밴사와 합의한 사항”이라면서 “대형 밴사의 평균 수수료가 113원인데도 수수료를 75원으로 낮게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밴사의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찬대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IC단말기 전환사업에 영업망을 확보하고 있는 대형 밴사가 참여하면 시장 지배력이 훨씬 커질 것”이라면서 “소형 밴사가 수수료 경쟁을 아예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이를테면 수수료 인하를 유도하려던 정책은 사라지고, 대형 밴사의 시장 지배력만 공고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멀고 먼 수수료 인하의 길

 
사업에 참여하는 밴사의 자질도 골칫거리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모든 밴사에 사업권을 내주면서, 개인정보 유출·판매 불법 리베이트 전력이 있는 대형 밴사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2015년 11월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5개 대형 밴사가 13개 대형 가맹점(연매출 1000억원 이상)을 대상으로 170억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IC단말기 전환사업이 대형 밴사 ‘배불리기’ 사업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맹점 수수료는 자영업자의 생존에 관한 문제다. 2016년 소상공인 비즈니스 활성화 등 실태조사 결과, 자영업자의 86.4%가 현재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이 적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영업자가 인식하는 적정 수수료율은 0.5~1% 미만으로 현행 0.8~1.96%보다 훨씬 낮게 조사됐다.

IC단말기 전환사업의 취지도 이런 상황을 반영했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자영업자가 빠진 자영업자 지원책이 되고 말았다. 금융당국의 탁상행정 탓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찬대 의원은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기존 사업자 수준의 수수료를 적용하도록 밴사에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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