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수조원대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는 국가R&D 사업 성과보고서가 쏟아진다. 그런데 국내 산업은 제자리걸음이고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시장과정부연구센터가 그 이유를 분석했다. 지난해 발표한 두편의 연구논문을 통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그들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 시장과정부연구센터는 국가R&D 사업의 문제를 꼬집었다. 오른쪽부터 박상인 교수, 이희원 연구원, 임홍래 연구원.[사진=더스쿠프 포토]

18조9000억원. 지난해 국가연구개발(R&D) 분야에 책정된 정부 예산이다. 보건ㆍ복지ㆍ노동, 국방, 교육 등 전체 분야 가운데서 7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산업 기술경쟁력에서 일본과의 격차는 더 멀어졌고, 중국은 턱밑까지 쫓아온 지 오래다.

정부는 R&D를 통한 경제 창출효과와 선도기술 연구에 관한 쾌거를 발표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는 “국가R&D 사업의 실효성에 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정확한 잣대를 두고 재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 국가R&D 사업의 실효성을 따져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박상인 교수(이하 박 교수) : “우리나라의 국가R&D 사업은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만큼 양질의 성과를 내고 있을까라는 점에서는 의문점이 많다. 국가R&D 사업의 성과는 논문과 특허다. 그런데 그것들의 질적 가치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 물음에 명확하게 답을 내린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가R&D의 성과를 실증적으로 분석ㆍ평가할 필요성을 느꼈다.”

✚ 검증 방식이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조사ㆍ연구했나.
박 교수 : “중요한 건 사업 목적에 걸맞은 성과를 냈느냐다. 국가와 민간사업자는 R&D의 목적이 다르다. 국가는 산업의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기초연구가 목적이다. 반면 민간의 목적은 사업성이 높은 개발연구다. 국가R&D와 민간R&D의 성과를 비교하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 특허를 통해 비교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 교수 : “앞서 말했듯 R&D의 성과는 논문과 특허다. 이번 연구에선 특허를 통해 비교하는 게 더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국가R&D와 민간R&D 특허는 인용 현황에서 차이가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연구 논문에서는 기초연구일수록 뒤늦게 인용되고, 개발연구는 출원 시점에 주로 인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나.
임홍래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연구원(이하 임 연구원) : “1997년 경제학자 마누엘 트라젠버그, 애덤 제프, 리베카 헨더슨이 대학이 보유한 특허(기초연구)와 기업이 보유한 특허(개발연구)의 인용 추이를 비교했다. 연구결과, 대학의 특허가 기업보다 장기간 지속적으로 인용됐다.”

시장과정부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국가R&D 특허와 민간R&D 특허의 인용 추이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두 특허 모두 단기간 인용에 그쳤다는 얘기다. 기초연구를 하겠다던 국가R&D 사업이 개발연구에만 힘을 쏟았다는 방증이다.

✚ 등록유지 기간도 특허의 질적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박 교수 : “특허권을 유지하려면 매해 등록료를 납부해야 한다. 특허의 등록유지 기간이 길다면 그만큼 경제적 가치가 높다는 거다. 그런데 인용횟수ㆍ기간이 비슷했음에도 평균 특허 등록유지 기간은 국가기관이 민간기업보다 길었다. 특허 가치 외에 외부 요인이 작용한 게 아닐까 의심했다. 가치가 낮은 특허가 양산될 수 있는 문제였다.”

21세기프론티어, 글로벌프론티어로 부활

✚ 현재 경제적 가치가 낮거나 인용횟수가 적어도 이후 중요할 거라 판단되는 특허는 좀 더 오래 보유할 수도 있지 않나.
박 교수 : “그렇다. 특허의 질적 가치가 높은지 낮은지 확인하려면 좀 더 복합적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데 등록유지 기간으로만 판단하는 건 속단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종합적인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별도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또다른 연구에선 국가R&D 사업의 일환인 ‘21세기프론티어 사업’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여기에선 논문을 성과분석 자료로 삼았다. 앞의 연구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박 교수 : “21세기프론티어 사업은 기초연구를 하자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산업을 선도할 원천기술을 발굴하는 게 목표였다. 그런 의미에서 저명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좋은 비교 자료가 된다. 그 분야를 선도하는 연구들이 실리기 때문이다.”

✚ 국제학술지와 주제어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리딩연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박 교수 : “주류 학술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비주류 학술지에 실렸다가 뒤늦게 재조명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재 나온 리딩연구는 십중팔구 저명 국제학술지에 실린다고 보면 된다.”

이희원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연구원(이하 이 연구원) : “학술지는 인용지수(IFㆍ해당 논문이 다른 논문에 얼마나 인용됐는지를 계산한 수치)기준 상위 10개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선정했다. 아울러 21세기프론티어 사업 성과 분석을 위해 선정한 2개 사업단은 과학기술표준분류상 3가지 중분류로 나뉘는데 우리는 그 분류에서 다시 10개의 학술 분야로 나눴다. 총 100여개의 저명 국제학술지를 놓고 비교했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은 리딩연구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은 어떤가.
박 교수 : “21세기프론티어 사업이 끝나가고 글로벌프론티어가 시작할 무렵인 2010년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그 당시 21세기프론티어 사업은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고 성과도 없어 그만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낫다. 그런데 얼마 후 글로벌프론티어 사업이 시작됐다. 이름만 조금 바뀌었을 뿐 사업내용은 그대로였다.”

✚ 성과가 없었다고 해놓고 왜 다시 부활시켰나.
박 교수 : “당시 MB정부는 과학기술부를 없애고 여론의 뭇매를 맞던 상황이다. 일단 R&D 예산은 늘렸는데 마땅히 쓸 곳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21세기프론티어 사업을 부활시킨 셈이다. 그런데 이미 21세기프론티어 사업을 비판해놓은 터라 이름을 바꾸고 후속 사업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기 성과에 급급한 국가R&D

▲ 기초연구에 집중해야 할 국가R&D 사업이 개발연구에 힘을 쏟았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 그렇다면 국가R&D 사업을 없애야 한다는 얘긴가.
박 교수 : “아니다. 다만 두가지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는 평가 기준이다. 현재의 평가 방식에선 즉각적인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개발연구에 치중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축소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R&D 사업 예산의 45%가량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출연연에 들어간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출연연은 과거 개발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느낀 게 있다고 들었다.
이 연구원 : “교육과학기술부가 출간한 ‘21세기프론티어사업 연구성과 분석 백서’라는 게 있다. 대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창출한 경제적 이익 얼마, 발표한 논문 몇 편.’ 문제는 비교 대상이 없다는 점이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정확한 성과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 게다가 효과가 어떻게 산출됐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업에 들어간 금액을 성과라고 말하는 것도 있다. 정부가 발간하는 대다수 성과보고서가 이런 식이다. 이 연구를 통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성과보고가 개선되기를 바란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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