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CJ헬로비전 합병 무산 1년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ㆍ합병(M&A)을 불허不許했다. 방송통신 업계는 곡소리를 냈다. ‘규모의 경제’가 아니면 방송통신 산업의 위기를 뚫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예상한 불행한 시나리오는 없었다. 되레 실적 증가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이 무산된 지 1년이 지났다.[사진=뉴시스]

“합병이나 매각이 아니면 생존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이번 공정위의 결정으로 전국 기반의 IPTV 사업자(SK브로드밴드)와 지역 기반의 케이블방송 사업자(CJ헬로비전) 간 합병이 원천 봉쇄됐다.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 케이블방송 시장은 고사하고 말 것이다.” 지난해 7월 공정위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ㆍ합병(M&A)을 불허하자 방송통신업계 안팎에서 나온 한탄이다.

볼멘소리만은 아니었다. 당시 통신산업과 IPTV는 성장동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매출 성장도 멈춘 상태였다. 케이블TV 시장은 위성방송 등 전국 기반 유료방송에 가입자를 뺏기고 있었다. 여기에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사업자가 한국시장을 본격 공략하면서 국내 사업자가 위협을 받고 있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이 ‘합병 청사진’을 제시한 이유다.

 

장동현 전 SK텔레콤 사장이 들었던 ‘합병 인가 필요성’의 근거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지난해 2월 이렇게 말했다. “전세계 미디어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일본은 100%, 미국도 90%에 육박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케이블TV의 디지털전환이 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울트라고화질(UHD) 콘텐트 등을 수용하기 어렵다. 지금이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통신ㆍ방송 산업 간 M&A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는 게 ‘세계적 흐름’이라는 거다. 실제로 미국에선 2위 통신업체 AT&T가 유료방송 시장 2위인 다이렉TV를 M&A했다. 영국의 통신업체 보다폰이 독일의 케이블TV 카벨 도이치란트를 인수한 적도 있다. 결국 공정위의 합병 무산 결정 산업의 흐름을 역행하는 오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렇게 1년, 업계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은 ‘불행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야 한다. ‘골든타임’이 지나도 훌쩍 지났기 때문이다. 결과는 의외다. CJ헬로비전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76억원을 올렸다. 지난해 4분기에 영업손실 300억원을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실적 개선이다. 다른 케이블TV 경쟁자와 달리 가입자 수(2015년 410만 가구→420만 가구)가 늘어난 게 실적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실적 전망도 좋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775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81% 증가할 것으로 증권가는 내다보고 있다. 이 회사가 알뜰폰 사업, 사물인터넷(IoT) 사업 등 신성장동력을 발굴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SK브로드밴드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매출은 722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059억원) 대비 2.4% 늘었다. 특히 IPTV 매출이 2356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1.7% 늘어난 부분이 실적 향상에 기여했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두 회사의 M&A가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정위와 업계의 인수 반대 핵심은 ‘독과점’이었다. 시장은 SK텔레콤이 단숨에 7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거대 유료방송 사업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M&A한 후 휴대전화 서비스와 유료방송을 묶어서 싸게 파는 ‘방송통신 결합상품’을 내놓으면 시장을 독식하기 쉬워진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CJ헬로비전과의 M&A를 밀어붙이던 SK측은 결합상품을 출시하면 사업자간 가격경쟁이 시작돼 소비자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일정 부분은 사실이다. 가격이 낮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 사업자가 시장에서 배제돼 경쟁이 사라지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경쟁이 없는 시장에서 소비자는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그간 우리나라 통신 산업은 공공성과 다양성을 구현하는 사업자의 승리가 아니라 규모가 큰 사업자가 독식하는 구조였다”면서 “방송통신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업 간 결합은 언제 발생해도 좋은 일이지만 그게 소비자의 후생을 외면하는 일이라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두 기업의 합병은 경제논리로만 접근하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통신시장의 공익성을 외면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까지 안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다행히 아직 방송통신 업계의 골든타임은 끝나지 않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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