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미사일보다 강한가

▲ 단기적으로 민주주의가 미사일보다 강하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김정은 체제가 무엇을 바라는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때다.[사진=뉴시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민주주의는 북의 미사일보다 100배 1000배 강하다”면서 “북이 갖고 있지 못한 민주주의가 우리의 밥이고, 삶이고, 평화”라고 말했다. 자유와 평화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문 대통령의 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패권과 무력이 지배하는 현 국제정치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미사일보다 강하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역사는 선한 의지가 있는 나라가 반드시 승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배부른 나라는 배고픈 나라를 이길 수 없다. 길게 보면 민주주의가 미사일보다 강할 수 있겠지만 당장은 미사일 몇발이 소중한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

신사의 나라 송宋은 피의 숙청이 없었다. 개국공신에게 큰 재물을 주고 귀향을 유도한 송 태조 조광윤의 온정주의는 중국사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송은 시장경제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세계 최강의 나라였다. 특히 군사력의 척도인 철 생산량은 산업혁명 직전의 유럽 전체 생산량을 웃돌았다.

송은 인구 1억800만명의 거대 국가인데 비해 송을 침략했던 거란족, 탕쿠트족, 여진족, 몽골족은 건국 당시 인구 100만 이하의 소국이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 로이드 E 이스트만 교수는 세계 최강의 나라가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소국에게 무릎을 꿇은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의아해한다.

몽고 쿠빌라이가 28만 대병력으로 쳐들어올 때 송의 정규군은 100만명이 넘었고, 멸망 당시에도 60만 대군이 있었다. 그런데 왜 망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송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기가 없었다. 문신文臣 우위를 고집하다 장수를 제대로 양성하지 못했다. 우유부단한 지도자는 동맹과 적을 오가며 줄타기를 하다가 국가로서의 신뢰를 잃었다.

송은 금과 짜고 거란을 멸망시켰지만 금에 의해 자신도 먹히는 처지가 됐다. 피난 정권인 남송 역시 몽골과 손잡고 금을 멸망시켰으나 몽골에 의해 왕조가 끊기는 처지가 되었다. ‘300년 한족 왕조’ 송의 이미지는 초원의 약탈자에게 매번 돈을 갖다 바치고 끝내는 살해당한 돈 많은 선비에 불과했다.

적에게 잡혔다가 탈출한 진회가 송의 재상을 맡았는데 그가 바로 금의 고정간첩이었다. 진회는 황제를 설득해 햇볕정책을 펴면서 주전파를 견제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을 후방으로 소환했고, 충신을 모함해 권부에서 몰아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면 지도층의 용기와 단합이 필요한데 송은 내부분열로 거란, 금, 몽골제국에 차례로 겁탈당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킬 힘과 자원이 있어도 정신력이 없으면 야윈 늑대에게 먹히는 ‘살찐 돼지’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역사의 이치다.

지금 대한민국은 송과 유사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 국가이자 독재정권인 북한에 대해 ‘순진한’ 낙관론이 지배한다. 김일성을 신봉했던 종북주의자 또한 건재하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위중한 상황에서 외교안보 라인은 최고의 드림팀이라고 볼 수 없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고, 그래서 한반도의 전쟁을 가장 확실하게 막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미연합사령부 체제다. 그런 때에 전시작전권 ‘환수’에 나서고 글로벌 경쟁력 시대에 손에 쥔 원자력 기술을 내버리려고 한다.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며 어정쩡한 균형자나 운전대 역할을 고집하기보다는 확실한 파트너를 정하는 게 필요하다. 자칫 신뢰를 잃으면 미국과 같은 동맹국이라도 언제 등 돌릴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인권 무풍지대인 김정은 치하의 북한 주민은 차라리 전쟁을 기대하는 심리라고 한다. 전쟁에 이겨서 남한이 적화해도 좋고, 져서 남한에 흡수되면 더 좋다는 이판사판의 ‘결기’라니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 북한의 지배계층은 집단최면에 걸려 있다. 광기에 사로잡힌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평화를 구걸할 때가 아니다.

핵 위협보다 조만간 재개될 북한의 대남 평화공세가 더 걱정이다. 북한이 중국과 손잡고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한미동맹을 흔들어댈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기에다 이산가족상봉 등 교류 협력 사업을 제안해오면 우리는 큰 논란과 분열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미국이 등 돌린 상태에서 국론마저 사분오열로 나뉘게 되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대한민국은 중국에 예속되고, 북한의 핵 인질이 되는 슬픈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