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사일런스 ❶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원작을 각색한 문제작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과 달라이 라마의 행적을 다룬 ‘쿤둔(Kundun)’을 통해 종교의 존재 의미에 천착했던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감독은 영화 ‘사일런스(Silence)’에서 또 한번 종교적 믿음에 대한 고뇌를 다룬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뉴욕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빈민가 한가운데 외딴섬처럼 자리 잡은 성당의 성스러움과 바깥세상의 속물스러움이 혼재돼 있음을 보며 “성당 밖에 차고 넘치는 고통과 사악함을 변화시키거나 구원할 수 없다면 종교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이 경험은 그로 하여금 평생 종교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했다.
 
종교의 본질적 문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우연히 접한 일본 작가 엔도 슈샤쿠의 역사 실화 소설 「침묵」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20년이 넘도록 벼르고 벼른 끝에 마침내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사일런스’가 설정하는 시간과 공간은 17세기 에도 시대 일본이다. 17세기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막부 통치 하에 나름대로 번영하던 안정된 시대였으나 예기치 않던 조금은 특별한 반란 사건이 일어난다. 도쿠가와 막부에 반기를 들었던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亂:1637~1638년)’이 그것이다. 일본 근대사의 ‘추문’이자 상처인 시마바라의 난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진압됐지만 사건의 주동자를 비롯한 반란군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였다는 사실이 커다란 비극으로 이어진다. 
 
▲ 스코세이지 감독은 ‘사일런스’를 통해 종교적 믿음에 또한번 천착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기록에 따르면 도쿠가와 막부는 주동자인 아마쿠사 시로를 비롯한 천주교 반란군과 그 동조자들까지 무려 3만7000명을 처형했다. 반란군의 총 규모는 2만4000명으로 나타났는데 3만7000명의 목을 자른 것이다. 반란군 외에 동조자로 의심되는 민간인들까지 도륙한 결과다. 거의 해충 박멸 수준이다.
 
‘온전한 기왓장으로 남느니(구차하게 살기보다) 옥으로 부서지겠다(장렬히 죽겠다)’는 ‘와전옥쇄瓦全玉碎’를 외치며 장렬히 전사하는 야만스러움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무라이의 나라지만 반란군 전원의 전사 외에 나머지 최소 1만2000명에 달하는 민간인의 죽음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8000여명의 ‘천주학쟁이’들을 도륙했던 대원군의 병인박해(1866년)쯤은 조족지혈鳥足之血로 느껴지게 만드는 참극이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천주교도 3만7000명을 도륙하고도 대대적인 천주교 ‘잔당’ 색출과 탄압에 나선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멀쩡한 소, 돼지, 오리, 닭 등 가축들을 감염이 의심된다며 가차 없이 구덩이에 묻어버리듯 대대적인 ‘방역 작업’을 벌인다. 영문도 모르고 어리둥절하게 죽어가는 가축들처럼 수만명의 ‘천주 바이러스 감염 의심환자’들이 살殺처분된다. 영화 ‘사일런스’는 그 참담하고 공포로 짓눌린 음울한 시대에 살아남아야 했던 천주교 선교사와 일본 천주교 신자들의 고뇌와 고통을 그린다. 
 
영화는 포르투갈 제수이트(Jesuit) 교단의 선교사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리암 니슨 분)의 회고로 시작된다. 페레이라는 시마바라의 난 진압 이후 벌어졌던 광기에 사로잡힌 천주교 박해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는다. ‘천주쟁이’거나 천주쟁이로 조금이라도 의심받는 자들은 해안가에 박아 놓은 나무 기둥에 묶여 만조滿潮 때 물에 잠겨 죽는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시체는 불태워진다. 주민들은 예수의 십자가상을 짓밟아 보이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페레이라는 그가 믿는 신에게 매달리고 신에게 구원을 기도하지만 신은 ‘침묵’한다.
 
▲ 도쿠가와 막부는 반란군 외에 동조자로 의심되는 민간인들까지 모두 도륙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17세기 일본에서 벌어졌던 암울한 역사이지만 왠지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그다지 멀거나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남의 일’같지 않다. 얼마 전 개봉한 1987년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1987’ 속 이야기는 ‘역사’라기보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멀쩡하게 학업에 열중하던 대학생이 ‘민주화투쟁’을 하는 친구를 뒀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받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는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지만 왠지 ‘좌파 같다’는 느낌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고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된다. 17세기 ‘시마바라의 난’이 휩쓸고 지나간 일본에 불어닥쳤던 천주교에 대한 증오의 광란처럼, 20세기 ‘한국전쟁’이 할퀴고 간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빨갱이’ 히스테리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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