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마켓분석
라면 판매액·수출액 증가세
유튜브와 SNS엔 레시피 홍수
라면 특화매장도 속속 등장
새 경험하려는 소비자 많지만
고물가 속 알뜰 소비족도 증가
라면 고공인기 속 어두운 그림자

고물가 국면에선 가벼워진 지갑으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든다. 5000원에 김밥 두줄을 사먹는 건 이제 옛말이 됐다. 자장면은 7000원을 넘었고, 비빔밥은 1만원으로도 사먹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뜨거운 김을 후후 불며 넘겨야 하는 라면뿐이다.

알뜰 소비를 하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편의점 라면 매출도 증가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알뜰 소비를 하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편의점 라면 매출도 증가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라면 열풍이다. 각종 라면 먹방과 라면 조리법 영상이 국경을 넘나들며 유튜브와 SNS에 넘쳐난다. 그 덕에 라면 판매액은 2021년 1조8268억원에서 2022년 2조2737원으로 증가했고, 라면 수출 실적도 훌쩍 뛰어올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라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5.9% 늘어난 8억7610만 달러(약 1조1436억원)를 기록했다. 

라면의 높은 인기에 유통업계도 발빠르게 대응 중이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게 ‘라면박물관’과 ‘라면 라이브러리’다. ‘라면박물관’은 최근 메가푸드 마켓으로 재단장하고 있는 홈플러스의 식품코너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매대다. 

지난해 6월 도봉구 방학점에 첫선을 보인 후 현재까지 11개 매장에서 라면박물관을 운영 중이다. 해외라면 70여종을 포함해 360여종의 라면이 박물관 전시품처럼 매대를 채우고 있다. 여기에 1960년대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라면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설명해놨는가 하면 라면의 매운맛 서열도 정리해놨다. 이를 흥미롭게 여긴 소비자들은 종종 그 앞에 서서 활자를 읽어 내려가거나 사진을 찍기도 한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라면 라이브러리’를 운영 중이다. 실제 도서관은 아니고, 이 역시 라면 특화 매장이다. 복합문화공간인 홍대 KT&G 상상마당에서 합정역 방향으로 약 130m를 걷다 보면 편의점이 나오는데, 이곳이 국내외에서 인기 있는 봉지라면 100여종과 컵라면 120여종을 한데 모은 ‘K-라면 특화 편의점’ CU 홍 대상상점이다.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곳은 한쪽 벽면을 가로 6m, 세로 2.5m 크기의 라면 전용 진열장으로 꾸몄다. 흡사 도서관을 보는 듯하다. 이곳에선 봉지라면과 용기(900원)를 구입하면 라면조리기를 이용해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해당 점포는 외국인 관광객과 인근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또는 대학생들이 주로 찾는다”면서 “점심시간대엔 2030세대 국내 소비자가, 저녁 시간대엔 외국인 관광객 방문이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라면 열풍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K-라면’이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레시피를 활용한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지만 라면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이들의 한끼 식사이기도 하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CU에서 라면 매출 성장률(전년 대비)은 2021년 8.6%, 2022년 25.6%, 2023년(1~11월) 21.1%로 꾸준히 상승해왔다. 앞서 언급한 라면 열풍 덕도 있지만 알뜰 소비를 하려는 소비자가 그만큼 늘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기자가 CU 홍대상상점을 찾은 시간은 오후 2시를 향해가는 시간이었다. 비가 내리고, 점심시간도 살짝 지나서일까. 북적일 거란 생각과 달리 매장은 다소 한산했지만 몇몇은 매대에서 라면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학업 때문에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는 김소영(가명)씨는 마침 라면을 골라 시식대에서 조리방법을 읽고 있었다. “아점으로 라면을 먹으러 왔다”며 입을 뗀 그는 “혼자 사는데 집밥을 해먹자니 번거롭기도 하고 식재료를 버리는 일도 많아 종종 편의점에서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오늘 고른 건 인도네시아 미고랭 라면이다. 여기에 라면용기와 핫바, 생수까지 곁들여 한끼 식사로 4500원을 결제했다.

현재 취업준비 중이라는 이종민(가명)씨도 오늘의 첫끼는 라면이다. 그는 매운 봉지라면과 삼각 김밥을 택했다. “요즘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부담이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틀에 한번 정도는 이렇게 해결한다.” 포장을 벗기고 즉석 라면 조리기 앞에 선 그는 라면을 끓이고, 다시 시식대까지 그걸 가져오기까지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청년들이 한끼 식사로 라면을 택하는 덴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의 가격이 올랐다. 그중 외식비 물가를 보자.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11월 서울 기준 김밥 평균 가격은 3292원, 자장면은 7069원, 칼국수는 8962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김밥은 6.7%, 자장면과 칼국수는 각각 8.2%, 5.9% 올랐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품목별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라면(외식)도 1년 전보다 5.5% 뛰었다. 한끼 식사로 5000원은 어림도 없고, 1만원은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어떤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4000~5000원이 기본값이 됐다. 그에 반해 라면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부담 없이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마트에서 라면 행사를 할 때마다 북새통을 이루는 것도 이런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라면 열풍 뒤엔 고물가에 신음하는 우리네 삶이 녹아 있다.[사진=홈플러스 제공]
라면 열풍 뒤엔 고물가에 신음하는 우리네 삶이 녹아 있다.[사진=홈플러스 제공]

이영애 인천대(소비자학) 교수는 “현재의 라면 인기에는 여러 이유가 섞여 있다”면서 ‘새로운 경험’ ‘경험관리(experience mana gement)’를 그 이유로 들었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요즘 2030세대는 새로운 걸 경험하려 한다. 라면 신제품이나 나만의 레시피를 적용한 라면으로 새로운 것을 경험하려는 욕구가 크다.”

그렇다면 경험관리는 뭘까. “소비자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된 한끼 식사 대신 라면을 사 먹는다고 해보자. 소비자 입장에선 그런 자신의 사정을 들키고 싶지 않을 거다. 유통업계도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서 라면을 산다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주고 싶지 않을 거다. 그 전략의 일환으로 ‘라면박물관’ ‘라면 라이브러리’가 나온 게 아닐까. 이렇게 되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라면을 사는 게 아니라 라면박물관이나 라면 라이브러리에서 특화된 경험을 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경험관리다.”

고물가 속 알뜰 소비로 라면을 찾는 소비자. 그런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유통업계의 전략이 맞물려 ‘라면박물관’ ‘라면 라이브러리’가 탄생했다는 거다. 알고 보면 씁쓸한 라면 열풍의 그림자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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