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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
과거인은 미개한 존재이고
과거와 현재의 또다른 관점

과거로 간 현대인이 항상 과거인을 앞서는 건 아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거로 간 현대인이 항상 과거인을 앞서는 건 아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십수년 전쯤 장르소설 커뮤니티에 ‘현대인 천재론’이란 말이 등장한 적 있다. 과거나 문명 수준이 떨어지는 다른 세계에 현대인이 가면 그곳에서 현대인은 천재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현대인 천재론에 해당하는 작품에서 주인공은 일반적인 현대 지식으로 승승장구한다. 가령, 주인공은 비누를 만들어 ‘미개한’ 중세인을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한다. 당대 석학과 지식인에게 중고등학교 수준 지구과학ㆍ화학ㆍ물리학 등 정보를 제시하고 천재적 인물로 존경받는다.

하지만 최근엔 ‘현대인 천재론’을 충실히 따르는 작품은 많진 않다. 천재라기보단 ‘현대인이 더 합리적’이란 시선을 담은 작품이 더 많다. ‘현대인 천재론’이 비판을 많이 받은데다, 독자들이 뻔한 스토리에 질린 영향도 있을 거다. ‘현대가 합리적이다’ 혹은 ‘현대가 옳다’는 인식은 독자들이 조선을 다룬 작품을 볼 때 더 심해진다.

일부 독자는 조선을 오답이 적힌 시험지를 보는 것처럼 대하곤 한다. 붕당정치는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장場쯤으로 받아들인다. 유교는 나라가 망하는 데 일조한 사상으로 취급한다. 이 때문에 몇몇 대체 역사소설은 붕당 자체를 막거나, 유교 성장을 억제해 다른 사상을 심으려 시도한다.

이런 배경에는 조선을 실패한 국가로 보는 시선이 작용한다. 현대인 천재론이 ‘현대인은 천재’라는 정답을 깔아놨다면,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몇몇 소설은 ‘조선은 실패한 나라’란 정답을 정해놓은 거다. 조선의 문화나 사회적 관행을 비효율적이거나 불합리한 것으로 묘사하는 식이다.

이런 소설은 과거 사람들이 가진 지혜와 가치를 필연적으로 간과한다. 하지만 과거 사람들은 당시 환경과 지식에 맞춰 최선의 결정을 내렸을 게다. 혹여 최선이 아니더라도 그런 결정을 내린 덴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코락스 작가의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은 이 ‘나름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소설이다.

[일러스트 | 문피아 제공]
[일러스트 | 문피아 제공]

현대 사학과 출신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영조 재위 시기 ‘김운행’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운행과 함께 독자는 생활사와 풍습, 정치, 사상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여러 방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재치있는 표현이다. 작품 초반 몸종인 ‘장복’을 스마트폰에 빗대는 부분은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나로서도 입의 혀 같은 장복이를 몇 번 데리고 다녀보니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시대의 하인은 단지 가사 노동만 맡는 것이 아니다. 외출 시에도 필수적이다. 스마트폰, 키오스크, 자동차, 장바구니, 혹은 불미스러운 사태 발생시의 대전사代戰士 등등 상상 가능한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만능 비선형 컴퓨터인 것이다. 없으면 생활이 안 된다. -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 중

이 소설은 과거인들의 생활을 탐구해 독자들에게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가치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현대인이 과거인에 비해 더 우월하다는 고정관념을 넘어 과거와 현재가 서로 다른 맥락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음을 이해하게 된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대로라면 과거는 낙후했고 현대는 최정점의 시대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과거와 현재는 일직선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일지 모른다.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에 담긴 함의다.

김상훈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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