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김은지ㆍ이소연 시인의
색다른 협업 「은지와 소연」
시는 노골적인 자기 기록
두 세계 뒤섞은 독특한 시도

시집은 원래 한 시인의 개인적 기록이다. 여러 시인이 함께 시집을 만드는 건 드물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시집은 원래 한 시인의 개인적 기록이다. 여러 시인이 함께 시집을 만드는 건 드물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한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일종의 항의 전화였다. 자신의 책을 단독으로 기사화하지 않아 서운하다는 것이 전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 작가가 불만을 제기한 기사는 한주의 신간 도서를 정리하는 꼭지였다. 여러 책을 소개했고 그중엔 항의 전화를 한 작가의 책도 섞여 있었다.

한 명의 작가가 자신의 인생에서 남길 수 있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여러 권의 책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두 권의 책만 남기는 이들도 있다. 그렇기에 책은 그 작가의 삶 자체가 되기도 한다. 수년 만에 나온 자신의 책이 단독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항의하는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이해하고 있다.

1월 둘째주에 시집 한권이 회사로 왔다. 「은지와 소연」이라는 우정시집이었다. 시집은 보통 시인의 내면을 그리는 것이기에 한명의 작가가 만`든다. 그래서 두명의 작가가 함께 만든 우정시집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이렇게 여러 작가의 시를 모아서 발표하는 경우는 추모나 기념 등을 위한, 일종의 목적성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정시집은 오직 김은지 작가와 이소연 작가의 글로만 이뤄져 있다. 시집은 김은지, 이소연 그다음은 이소연, 김은지 순으로 서로의 시를 교차해나간다. 분명 다른 세계를 가진 시인인데 하나의 목소리처럼 읽힌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기록한다. 누군가는 나무의자를 만들고 누군가는 기사를 쓰고 또 누군가는 햄버거를 만들고 어떤 이는 프로그램을 언어로 짜기도 한다.

시집만큼 노골적인 자기 기록은 없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시집만큼 노골적인 자기 기록은 없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은 모두 자기의 방식대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 나간다. 나는 그중에서도 시집만큼 노골적인 자기 기록이 없다고 생각한다. 시집을 받아보면 누군가에게 보여줄 커다란 묘지의 비석 같아 보일 때가 있다.

그렇기에 시집은 개인적일수록 좋다. 자기의 색이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남들과 다른 빛을 내뿜는다. 그래서 시집을 읽을 때 불똥이 튄다. 마치 쇠와 쇠가 부딛쳐 내는 스파크처럼 내 삶과 시인의 삶이 부딪치는 순간이 강렬하게 기억되곤 한다.

김은지 시인과 이소연 시인은 취재를 위해 만난 적이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김은지 작가는 수많은 미팅과 술자리가 사라져 좋다고 했다. 반대로 이소연 시인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이 두명은 완전히 다른 작가다. 물론 두 시인의 시 세계도 큰 차이가 있었다. 이 둘이 친한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정시집은 이 두 시인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문학이 누군가를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타자를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은 오만이기에 끝내 소통에 다다를 수 없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다. 문학은 일종의 재현이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 세계가 극단에 치닫고 있기에 문학에서의 소통도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우정시집은 그 존재 자체로서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을 보인다. 문학이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이 시집은 두명의 세계를 한데 묶어 시집을 묶었다는 행위로 우리에게 소통 가능한 무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성격도 색도 다른 이들이 하나로 묶였는데도 이렇듯 자연스러웠다. 이것은 소통의 가능성 아닐까.

[사진 | 디자인이음]
[사진 | 디자인이음]

그날 항의 전화에 나는 사무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로 항의를 받고 기사를 작성한 선례를 남기면 그 이후에도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긴 전화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검토하겠다”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전화를 걸어온 작가에게 응원을 전할 수 있었다. “책 너무 잘 읽었습니다. 꼼꼼하게 다루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와 소통을 피했다. 그와 잠시 시간을 내고 대화를 나눴으면 어땠을까. 작가에게 하지 못한 인사를 지금이라도 보내고 싶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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