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마켓분석
경제를 걷다➍ 성수동 1편
강남에서 옮겨온 회사들
화장품ㆍ패션, 콘텐츠까지
붉은 벽돌 휘감은 새 건물들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에는 왕십리로를 사이에 놓고 업무시설빌딩이 들어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에는 왕십리로를 사이에 놓고 업무시설빌딩이 들어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요즘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하다고 손꼽히는 곳. 패션ㆍ연예ㆍ화장품 등 유행에 민감한 기업들이 둥지를 튼 곳. ‘붉은 벽돌’ 건물이 레트로함과 트렌디함을 모두 간직한 곳. 그래! 요즘 서울에서 가장 핫한 지역인 성동구 성수동이다. 지금 같은 경기침체기에 2022년 1분기 이후 8분기 연속 ‘오피스 0%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으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 흥미로운 건 성수동의 변신이 ‘진행중’이란 점이다. 공장에서 지식산업센터로, 그리고 다시 고층 오피스로 밑그림이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활력 넘치는 변화도 있지만 사라져가는 산업의 그림자도 있다. 더스쿠프가 시리즈 ‘경제를 걷다’에서 이번엔 성수동을 걸었다. 아현동, 은평구, 용산에 이은 ‘네번째 걷기’다. 


2019년부터 성동구 성수동으로 회사가 몰리기 시작했다. 작은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화장품 기업 클리오, 국내 3대 연예기획사 중 한곳인 SM엔터테인먼트가 강남 압구정동을 떠나 성수동에 둥지를 틀었다. 그 이후로도 새 사옥을 찾는 회사들이 성수동을 찾아왔다. 그런 관심 때문인지 성수동의 오피스 공실률은 현재 ‘0%’대다. 들어오려는 기업들이 번호표를 끊고 기다린다는 얘기다.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 2번 출구. 건물 외관을 벽돌로 꾸민 건물이 있다. 1층은 스타벅스, 그 위층에는 영화관 메가박스가 들어가 있다. 소비자를 위한 상업시설 같지만 사실 이 건물에는 메가박스 본사가 입주한 업무시설이 함께 있다.

강남 도산대로에 있었던 메가박스는 2019년 이 건물이 완공되자 성동구 성수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고, 이름을 ‘메가박스스퀘어’라 붙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벽돌’을 택한 걸까. 

산업화 시기 서울은 벽돌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주택에 붉은 벽돌을 사용했고 공장의 담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서울 도심에서 밀려난 제조업 중 일부는 성수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 이후 서울 곳곳에서 진행한 재건축ㆍ재개발로 붉은 벽돌 건물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길 반복했지만 성수동만은 달랐다.

2000년대 재개발ㆍ재건축이 활발한 시기에도 성수동은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돼 건물을 고치거나 새롭게 만드는 일이 없었다. 그런 상태로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특별계획구역이 해제됐다. 

그 시점부터 건물들은 ‘독자 개발’을 시작했다. 성동구는 붉은 벽돌 주택이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용도 변경하면서 벽돌 외관이 사라지는 걸 방지하려고 애썼다. 이를 위해 벽돌 외관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건축 가이드라인도 생겼다. 그래서 벽돌은 과거의 서울인 동시에 현재의 성수동을 상징한다.

벽돌로 외관을 장식한 메가박스스퀘어는 2023년 11월에 주인이 바뀌었다. 게임업체인 크래프톤이 메가박스 사옥을 사들였다. 영화에서 게임으로 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건물의 주인은 트렌드에 민감한 문화산업 기업이다. 

메가박스스퀘어를 지나 100m쯤 걷다 보면 이번에는 왕십리로를 사이에 두고 두 건물이 마주 보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입주해 있는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디타워와 화장품 업체 클리오 사옥이다. 33층의 디타워와 비교했을 때 14층의 클리오 사옥은 아담해 보이지만 서울시 건축상까지 받은 건물이다. SM엔터와 클리오 모두 2021년과 2019년에 강남 압구정에서 성수동으로 둥지를 옮겼다. 

조금 더 북쪽으로 걸었다. 2호선 뚝섬역으로 꺾이는 고가철로와 왕십리로가 만나는 뚝섬역 교차로에는 디벨로퍼 네오밸류가 입주한 ‘누디트 서울숲’이 눈에 띈다. 메가박스스퀘어처럼 누디트 서울숲 역시 외관 일부를 벽돌로 정돈했다.

걷는 사람의 시선과 마주하는 저층부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숲역에서 뚝섬역 교차로까지 약 600m를 걷는 동안 중대형 업무시설만 4곳을 볼 수 있었다. 모두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만들어진 건물이다.

상업 부동산 정보업체 알스퀘어에 따르면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 지하철 2호선 뚝섬ㆍ성수역 일대 오피스(지식산업센터 제외)의 공실률은 8분기 연속 0%대(1.0% 이하)를 기록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3대 업무지구인 광화문, 강남, 여의도의 2023년 4분기 공실률은 각각 4.4%, 3.7%, 2.9%를 기록했다. 3대 업무지구의 오피스 공실률 역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성수 업무지구는 그보다도 더 낮다.

무슨 의미일까. 부동산 업계에서는 세입자가 계속 있는 건물이더라도 이전 세입자가 나가고 새 세입자가 들어오는 기간이 있기 때문에 자연 공실률을 통상 4%대로 본다. 

알스퀘어 관계자는 “0%에 근접한 공실률이라는 건 세입자가 나간 후 대기하던 세입자가 곧바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라며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 기업은 성수동에 사옥을 마련하는 것 자체를 회사 이미지 메이킹이자 직원 복지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성수동에 들어올 만한 기업들이 여전히 더 있다는 건데 정말 그런 걸까. 뚝섬역에서 성수역까지 마저 걸어보기로 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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