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올드보이여! 이젠 돌아가라
[윤영걸의 有口有言] 올드보이여! 이젠 돌아가라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98
  • 승인 2018.07.24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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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내다보는 참신한 세력 나서야
기득권이 물러날 생각을 안하면 사회는 역동성을 잃는다. 사진은 박보영 전 대법관.[사진=뉴시스]
기득권이 물러날 생각을 안하면 사회는 역동성을 잃는다. 사진은 박보영 전 대법관.[사진=뉴시스]

당연한데 신선하다. 지난 1월 퇴임한 박보영(57) 전 대법관이 고향인 전남 순천과 가까운 곳에서 판사 임용을 희망해 화제다. 퇴직 대법관이 시골근무를 지원한 게 뭐 대단하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 드물다. 대법원은 1995년부터 원로 변호사들을 시ㆍ군법원 판사로 임용해왔으나 지원자가 없어 2010년을 끝으로 임용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대부분의 퇴임 대법관들은 ‘전관예우’라는 무기 하나로 서울에서 밥벌이를 해왔기 때문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변호인 선임서에 도장 한번 찍어주고 3000만원을 받았다는 얘기는 법조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이 땅의 OB(올드보이)들은 집요하고 탐욕스럽다. 개발시대를 살면서 출세가도를 달렸고, 적지 않은 재력을 축적했지만 도통 물러날 생각이 없다. 이들에게 고향은 입신 출세를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서지현 검사의 성희롱 폭로가 ‘미투’를 촉발시킨 것처럼 박보영 전 대법관의 선택이 지도층 인사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신호탄이 됐으면 한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겪은 일이다. 어느 국장급 인사가 자신의 고향이 호남인데 이제까지 서울로 잘못 알려졌으니 정정해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는 철학이나 소신보다 정권의 입맛에 맞춘 처신으로 최고위직까지 올랐다는 평을 들었다. 잠시 자리를 떠날 때도 개인사무실을 도심 한가운데에 내고 자신의 하마평을 언론사에 부탁할 정도로 권력욕이 강했다. 

얼마 전 어느 경제신문사가 전직 경제장관 10명을 대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제언을 들었다. 전직 경제장관 10명 중 9명은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책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 대선캠프 출신 전직 장관들 역시 비판의 강도가 높았다. 그러나 딱 1명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찬사를 보냈다. 그의 얼굴이 박힌 신문기사를 보면서 ‘아, 또 다시 한자리를 노리는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이 선진국의 길목에서 좌절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꽉 막혀버린 세대교체에서 찾을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이 도무지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사회의 역동성이 사라져간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구세대가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며 사회개혁을 틀어막고 있다. 산업화 세력은 굴뚝산업 시대의 정책 마인드에 갇혀있고, 운동권 출신인 민주화 세력은 도덕적 명분을 독식한 채 특권집단화한 지 오래다.

자유한국당은 젊은 세대와 단절된 정당이어서 희망이 없다. 텃밭 다선의원들이 버티고 있는 한 개혁은 공염불에 가깝다.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적폐 이미지를 벗으려면 3선 이상 의원들 모두 물러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 십년을 우려먹은 중진 정치인들이 문제다. 언제까지나 민주와 반민주 프레임으로만 국정을 몰아갈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프랑스 대표팀은 월드컵 2연패를 노렸지만 개막 경기부터 패했고, 한골도 넣지 못한 채 1무2패로 조별리그서 탈락했다. 당시 주장이던 노장 지단의 고개 숙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런 프랑스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유는 평균 나이 26세의 젊은 강팀으로 세대교체에 성공한 데 있다. 4골을 기록한 킬리안 음바페는 19살이다. 프랑스 축구팀은 23명 중 21명을 이민자 후손일 정도로 톨레랑스(관용)가 넘치는 젊은 팀으로 바꾼 게 승리의 비결이다.

4ㆍ19세대가 근대화를 이끌었고,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하던 세대는 민주화에 앞장을 섰다. 이제 한국은 촛불세대가 전면에 등장해야 한다. 나이가 젊고, 지역이나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는 참신한 세력이 나서야 희망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월이 지나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서울 생활을 훌훌히 떨치고 고향 김해를 택한 데 있을지 모른다. 결국 실험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의 정신만은 우리 가슴에 남아 오래도록 여운을 울린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이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열차에 몸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땅의 지도층은 이제 고향을 향해 “나 돌아갈래!!!”를 외칠 때가 아닌가싶다. 달려오는 열차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달리는 초음속 고속열차 말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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