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일은 행동으로 옮겨야

다산 정약용은 어진 일을 행동으로 옮겨야 결과가 나온다는 실학을 펼쳤다.[사진=뉴시스]
다산 정약용은 어진 일을 행동으로 옮겨야 결과가 나온다는 실학을 펼쳤다.[사진=뉴시스]

내 이름은 다산 정약용(1762~1836년).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200년 전 내가 살았던 시대와 너무 비슷해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난 부조리한 세상을 평생 한탄했는데, 2018년 한국을 보면 도대체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정권이 바뀌자 반대세력에 보복과 응징이 횡행하고 있는 것도 꼭 닮았습니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협량한 배타주의 또한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알다시피 난 정쟁의 희생물이 돼 18년간 귀양살이를 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18년을 더 살다 남양주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를 아껴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불과 11세인 순조가 등극하자 남인 시파時派이던 우리 집안은 반대파인 벽파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게 됩니다. 마침 천주교도들이 우리 집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멸문의 지경에 이르게 되지요.

과거에 장원급제한 명문집안 출신이자 수원성 축조까지 관여했던 내가 왜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졌을까요. 정적 서용보(1757 ~1824년)와의 질긴 악연이 한몫을 했습니다. 암행어사로 경기도에 나갔다가 안양 만안교 축조과정에 얽힌 그의 비리를 캐고 조정에 보고하자 서용보는 경기도 관찰사직에서 쫓겨났지요. 그는 이 일로 앙심을 품고 평생에 걸쳐 앙갚음을 합니다.

신유사옥 때 왕은 나를 무죄로 석방하고자 했으나 때마침 복직한 서용보의 반대로 포항 장기로 유배를 떠납니다. 그해 10월에는 황서영 백서사건이 터지자 또다시 나를 엮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1803년 정순왕후가 나, 정약용을 석방할 것을 특명으로 내렸으나 결국 무산됩니다. 유배지에서 풀려난 나를 조정에서 다시 기용하려고 논의했으나 당시 영의정이던 서용보가 극력 저지했지요. 역설적으로 말하면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의 일등공신은 서용보입니다. 귀양지에서 ‘슬로라이프’를 영위하도록 이끌어 준 인물이니까요.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21세기 후손들이 나의 기구한 삶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해서이지요. 악연은 나를 단련시켜줬고, 아름다운 인연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줬습니다. 귀양지에서 당대의 큰스님인 혜장스님과 교류하면서 학문과 문화의 깊이가 더해졌지요. 강진의 부호 해남 윤씨 가문의 도움으로 유배지에서 본격적인 학문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윗물이 아랫물이 되고, 아랫물이 윗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지요. 잘나갈 때 오만하지 말고 밀려났다고 비겁하지 말라는 얘기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좀 더 관대해져야 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국민 지지율 높을 때가 정말 조심할 때이지요.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너무 모질게 박해하면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지도자들은 밑바닥 민심을 알고 하는 건가요. 억지로 임금을 끌어올린다는 소득주도 성장과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을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일자리 만든다고 50조원이 넘는 국민혈세를 썼는데 실업이 넘쳐나는 것은 바로 현장을 외면하기 때문이지요. 유교에서 말하는 인仁은 현실에서 부닥쳤을 때 결과까지 내다보고 하자는 겁니다. 아무리 뜻이 고매하다고 해서 현실에서 백성들의 삶이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면 정치가 할 일이 아니지요. 

난 곡산에서 고을 수령을 하며 백성을 다스릴 계책은 농부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성이 겪는 고난 앞에서 한갓 주자학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어진 일을 행동으로 옮겨야 인을 행함이 돼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이 바로 실학입니다.

조선시대 노론은 귀를 막은 채 반대파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매도해 나라를 뒷걸음치게 했습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이념밖에 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500권이 넘는 나의 저작들은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주요 내용입니다.

아홉살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곧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을 아홉명 두었지만 여섯 자식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결혼 60주년 회혼 날 마침내 75년의 파란만장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죽음과 죽음으로 세월을 헤아린 굴곡진 인생이지만 나의 삶을 통해 실패와 좌절이 인생이 끝이 아닌 것을 후세에게 보여줬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정해진 운명은 없고, 인연의 원인과 결과만 있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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