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시시한 변종 마초의 암울한 세상
[Economovie] 시시한 변종 마초의 암울한 세상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15
  • 승인 2018.11.29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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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델마와 루이스 ❹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는 소위 남성우월론자인 ‘마치스모’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렇다고 마치스모만 나오는 건 아니다. 악만 계속 보여주면 악에 둔감해질 수도 있다. 더러운 것만 나열하면 그것이 얼마나 더러운지 제대로 인식이 안 된다. ‘대비 효과’가 필요하다. 깨끗한 것과 대비해야 그 더러움이 도드라진다.

마초가 사라지고 마치스모만 넘쳐나는 사회는 불온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마초가 사라지고 마치스모만 넘쳐나는 사회는 불온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 속에는 미국 마치스모들이 여럿 등장한다. 마치스모는 변질된 ‘마초’들의 남존여비 사상, 혹은 남성우월주의를 의미하지만 여기서 그치지는 않는다. 본래적 의미의 마초들은 강자에 강한 반면 약자들에는 약해서 약자들의 수호자로 나선다. 그렇게 상대적 약자들인 여자와 아이들을 수호한다.

기사도騎士道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변질된 마초인 마치스모들은 반대로  약자에게  만 강할 뿐 강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약하다. 델마의 남편은 2000년대 미국이 아닌 조선시대 남정네가 타임머신 타고 날아와 미국사람 몸을 빌려 태어난 듯하다. 아내 델마를 쥐 잡듯 하며 살다가 델마가 대형사고를 치고 무시무시한 FBI가 집에 들이닥치자 FBI에게 알아서 긴다.

술집에서 술 한잔 나눈 델마를 ‘작업’도 생략하고 성추행 정도가 아니라 즉석에서 성폭행으로 돌진하는 마치스모도 나타난다. 그 역시 자신보다 강력한 힘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총을 겨누는 루이스를 제압하고 강간을 완성할 기백도 없다. 고속도로에서 번쩍거리는 고속도로 순찰대의 ‘권위’로 무장하고는 만만한 두 여자 델마와 루이스를 거의 희롱하듯 검문하던 경찰은 총을 빼앗기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고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아이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그리곤 두 여자가 시키는 대로 순찰차 트렁크 속으로 얌전하고도 재빠르게 기어들어간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마치스모만 나오는 건 아니다. 진정한 마초의 원형도 한명쯤 보여줘야 마치스모들의 지질함이 돋보이기 마련이다. 변종 마초인 마치스모들이 창궐하는 가운데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을 법한 진정한 마초가 뜻밖에 한명 등장한다. 기대하지 않아서 더욱 눈에 띄는 출현이다.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의 남자친구 지미는 떠돌이 무명 뮤지션이다. 남녀 양쪽 모두 생활이 불안정하니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오래되고 맥 빠진 연인 사이다.

델마와 루이스에는 소위 남성우월론자인 ‘마치스모’가 여럿 등장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델마와 루이스에는 소위 남성우월론자인 ‘마치스모’가 여럿 등장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미 역을 맡은 배우 마이클 매드슨은 그 풍모가 대단히 ‘건달적인’ 백수 전문 배우에 가깝다. 그의 등장은 루이스를 등쳐먹는 전형적인 파렴치 건달의 진수를 보여주리라는 예상을 하게 하지만 의외의 반전이 일어난다. 지미야말로 진정한 마초였다. 총기 살인을 저지르고 델마와 함께 멕시코를 향해 머나먼 자동차 도주에 나선 루이스는 지미에게 전화 걸어 자신의 예금 전액인 6000불을 인출해 전신환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

그나마 가느다랗게 유지되던 연인관계도 이제는 끝장인데 굳이 도피자금을 심부름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고,  루이스가 6000불을 먹고 튀어도 도리 없다. 그런데 지미는 그 돈을 찾아 직접 수천㎞를 운전해 루이스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FBI가 총출동해 추적하는 루이스에게 그제서야 결혼반지를 내밀며 청혼한다.

진정한 마초는 그다지 계산적이지 않다. 지미의 행동은 살인자에게 특별한 호감이 발동하는 변태라서가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에 몰린 루이스를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남자로서의 의무감이다. 루이스는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지미의 청혼을 물리친다. 지미도 걱정스럽고 침통한 얼굴로 루이스의 뜻을 존중하고 떠난다.

결혼 기피와 출산 기피가 인구절벽 현상으로 이어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마초 정신’의 쇠퇴도 한몫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진정한 마초라면 결혼과 집 장만, 양육의 두려움 정도에 주저앉지는 않을 듯하다. 그 어려웠던 시절 ‘무식하게’ 결혼하고 줄줄이 애 낳고 베트남 전쟁터ㆍ중동 사막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며 가족을 부양하고, 딸린 아이들을 교육시킨 우리의 마초들이 소위 ‘한강의 기적’의 주역들인지 모르겠다.

진정한 ‘마초 정신’은 약자를 수호하는 ‘기사도 정신’과 일맥상통한다.[사진=뉴시스]
진정한 ‘마초 정신’은 약자를 수호하는 ‘기사도 정신’과 일맥상통한다.[사진=뉴시스]

마초의 본고장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원조 마초들이 15세기부터 대서양을 건너 신세계를 개척하고 세계를 장악했다. 점차 변종 마치스모들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광도 쇠락을 맞았다. 미국의 힘의 근원이었던 미국의 마초들이 사라지고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보여주는 온갖 유형의 지질하고 타산적인 마치스모들이 창궐하면서 미국의 힘도 쇠락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시류에 영합하는 과잉보도인지 알 수 없으나, 성희롱ㆍ성추행ㆍ성폭력부터 데이트폭력ㆍ리벤지 포르노까지 온갖 비겁한 마치스모들의 한심한 뉴스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분명 영화 속 지미와 같은 마초의 모습은 아니다. ‘마초’가 사라지고 ‘마치스모’만 넘쳐나는 사회는 불온하다. 국가적으로도 암울하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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