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의료기기 업체의 한탄, 내가 만든 혁신기술 나더러 입증하라니 …
중소 의료기기 업체의 한탄, 내가 만든 혁신기술 나더러 입증하라니 …
  • 고준영 기자
  • 호수 317
  • 승인 2018.12.13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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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기술 입증책임 누구에게 있나

한 의료기기 업체가 혁신제품을 개발했다. 안전성과 유효성만 인정 받으면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그런데 관련 기관은 이를 인정할 만한 툴도, 룰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의료기기 업체 스스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만한 절차와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게 어느 나라 이야기일까. 우리나라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혁신적인 의료기기가 탄생하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봤다. 

자금력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혁신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어렵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금력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혁신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어렵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ㆍ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기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융복합 혁신기술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건데, 이런 경향은 업종 불문이다. 미래 먹거리로 손꼽히는 의료기기 산업에서도 혁신기술은 필수적이다. 혁신기술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시장 경쟁력이 크게 달라질 정도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혁신적 의료기기를 출시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혁신기술이 담긴 의료기기를 출시하려면 숱하게 많은 산을 넘어야 하는데, 중소업체 혼자 이를 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중소 의료기기 업체의 한 관계자는 “혁신 의료기기의 개발과 출시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혁신 의료기기의 제품화는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을 정도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혁신 의료기기를 출시하기 위한 절차는 왜 중소기업에 불리할까. 한 의료기기 업체가 혁신 의료기기를 개발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업체는 해당 의료기기 를 제품화하기 위해 총 세단계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첫째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의료기기 심사ㆍ허가, 둘째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보의연)으로부터 받는 신의료기술평가, 셋째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요양급여ㆍ비급여 대상여부 확인이다.

 

식약처와 보의연이 실시하는 의료기기 심사ㆍ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는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이 작업을 위해서 업체는 새 의료기기의 작용기제가 무엇인지,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지 등의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해당 의료기기가 기존 품목에 해당한다면 이전 기준과 절차를 따르면 된다. 하지만 혁신 의료기기는 입증 방법까지 업체가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으로선 쉽지 않은 일이다. 

중소 의료기기 업체 한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새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선 해당 업체가 그에 맞는 입증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테스트를 해야 안전성이 입증되는지, 그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 등 새로운 연구를 해야 하는데 의료기기를 새로 개발하는 것만큼 어렵다. 통상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정도는 돼야 가능하고, 글로벌 기업이 국내 진출할 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여차저차해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 식약처와 보의연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심평원이 보험급여를 인정하지 않거나 보험수가를 산정하지 않으면 사실상 제품화가 불가능하다. 일례로 중소 의료기기 업체 알로텍은 2009년 세계 최초로 의료기기(일회용 핸드피스)를 개발해 글로벌 기업과 MOU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험에 등재되지 않고, 보험수가가 산정되지 않아 수출길이 막혀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에 없는 의료기기를 보험에 등재하려면 품목 분류를 다시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부대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새로운 고시를 해야 해서 심평원이 잘 움직이지 않난다”면서 “이는 굳이 리스크를 만들지 않는다는 안전제일주의적인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어려움을 보완하는 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식약처가 운영하고 있는 ‘신개발의료기기 등 허가도우미’ 제도는 혁신 의료기기의 개발ㆍ제품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기관을 연결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알찬 실적을 내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이 제도를 시행한 2005년 이후 총 230건의 신청을 받았지만, 지원이 결정된 건 97건에 그쳤다. 그중에서도 허가가 완료된 건 27건에 불과하다. 이런 점을 고려한 듯 정부는 의료기기 시장의 혁신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발표한 ‘의료기기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은 내년 1월 시행된다.

곳곳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과도한 규제 완화가 안전성을 위협할 거라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게 일부 의료기기 품목에 한해 시행되는 ‘선先진입 후後평가 제도’다. 그 동안 혁신 의료기기의 가치를 입증할 만한 절차와 근거를 마련하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무턱대고 출시하는 신속한 절차가 아니라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절차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혁신 의료기기를 입증하는 방법과 절차를 중소기업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빈틈부터 없애라”는 일침이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에서 직원수 20명 미만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1%다(2016년 식약처 통계). 중소기업이 커야 의료기기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통계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믿을 건 기술력뿐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기술력의 유효함을 입증하기 위해 그 방법과 절차를 해당 기업이 만드는 건 웃지 못할 촌극이다. 지금 중요한 건 신속한 절차가 아니다.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확실한 룰과 틀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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