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상층부가 조립식 패널인 이유

계단식 빌라촌에선 베란다를 불법 증축하는 게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계단식 빌라촌에선 베란다를 불법 증축하는 게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빌라 건물 상층부는 왜 계단식으로 깎여있을까. 이 깎인 부분에 다시 조립식 패널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덮는 이유는 또 뭘까. 불법처럼 보이는데, 왜 우리 동네 주변에 자꾸만 생기는 걸까. 이런 질문을 쫓다보면 의외의 해답을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부동산을 둘러싼 탐욕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계단식 빌라촌을 취재했다.

“지난해 서울 강북 지역에서 주택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노후 도심지역에 다세대주택을 신축하는 건데, 설계 작업 중 건축주로부터 수상한 요청을 받았다. 4~5층 북측 외부 베란다 바닥에 생활하수 배관을 미리 깔아달라는 거였다. 준공 후 베란다 구역을 증축해 생활공간으로 넓히겠다는 건축주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결국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설계를 진행할 수 없다’고 말한 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한 건축사무소 대표의 설명이다. 빌라로 일컬어지는 다세대주택의 신축을 의뢰받았는데, 건축주가 불법증축을 시도할 의도가 보여 프로젝트를 중도에 포기했다는 거다. 이 건축가는 “신축빌라 의뢰엔 이런 일이 숱해서 문제”라고 토로했다. 대체 무슨 얘기일까. 우리 주변 골목엔 빌라가 밀집된 ‘빌라촌’이 많다. 이들을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건물 4~5층의 외벽 재료가 나머지 층수의 재료와 다르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색깔의 블록을 얹은 듯한 형태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계단식 빌라

이런 우스꽝스러운 건물이 양산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보통 빌라는 1층을 필로티(기둥만 있는 공간)를 구성해 주차장으로 쓴다. 2~3층은 베란다 확장형으로 일반세대를 구성하고, 4~5층은 확장하지 않고 베란다를 둔 채 준공을 받는다.

4~5층 베란다를 그대로 두는 건 ‘일조권 사선’으로 불리는 법 때문이다. 건축법 제61조 ‘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건축물의 높이 제한’에 따르면 건축물을 지을 때 북쪽 대지경계선에서 기울기 2분의 1의 가상 사선을 그려, 신축 건축물이 그 사선을 넘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건물 북측 대지의 햇빛을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 “북쪽땅과 가까운 부분을 2분의 1 기울기로 깎아 주변 건물의 일조권을 보장하라”는 거다.

이렇다보니 4~5층은 2~3층보다 면적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이때 위층과 아래층과의 바닥 면적차로 생기는 4~5층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베란다가 된다. 여기까지의 과정에선 4~5층에 급히 덧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지자체로부터 건물의 사용승인을 받는 것도 이때다.

빌라 상층부를 덧대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는 건 불법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빌라 상층부를 덧대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는 건 불법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문제는 그 이후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사용승인 후 4~5층 베란다 구역에 샌드위치 패널 등을 덧대 증축한다. 이를 위한 사전작업도 치밀하다. 건축가는 베란다 구역에 전기배선과 수도배관을 미리 확보해 두고, 건축주는 확장 면적을 분양 면적에 포함해 분양 대금을 책정한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건축법은 베란다 증축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아래층의 지붕을 불법점거한 것과 다를 바 없어서다. 아래층과 위층 사이에 생긴 공간의 소유주도 아니면서, 벽과 창을 만들고 지붕을 덮어 자신의 집으로 삼으니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던 ‘일조권 사선법’도 어기는 행위다.

그런데도 불법증축은 빌라 업계에선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도심 주택가에 위치한 수많은 빌라촌에서 손쉽게 목격할 수 있다. 빌라업계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행정조치를 하긴 하지만, 운이 나빠 걸리는 수준”이라면서 “걸리더라도 대부분 벌금을 내고 마는 방식으로 불법증축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거주자 안전 위협하는 계단식 빌라

빌라 불법증축으로 인한 부작용은 숱하게 많다. 건축사무소 H2L의 현창용 대표는 “불법 증축에 쓰이는 재료는 대체로 부실하다”면서 “단열불량ㆍ결로 등의 하자가 발생하는 건 기본이고, 건물 구조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 불법으로 증ㆍ개축된 부분엔 기존 건물보다 화재에 약한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주변 건물의 햇빛을 가리는 것도 문제다. 서울 중구 지역에서 불법증축 빌라 관련 민원을 넣었던 A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지난해 말 신축빌라가 들어섰는데, 이 빌라가 상층부를 증축하면서 햇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수십차례 구청에 신고를 했고, 건축 담당자까지 만났다. 이 담당자는 불법 건축물로 인정하고 시정조치까지 명령했다는데, 증축된 부분이 철거되진 않았다. 여전히 햇빛을 못보고 살고 있는 데도, 담당자로부터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불법인 데다 문제투성이인 이런 빌라는 왜 자꾸 생기는 걸까. 김씨의 말처럼 지자체가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진 않다. 지자체 역시 항공촬영ㆍ민원 신고ㆍ담당 공무원의 수시 현장순찰 등을 통해 불법증축 빌라를 적발한다.

문제는 적발한 이후다. 지자체에 적발된 불법 빌라는 다음과 같은 복잡한 행정절차를 거친다. ‘지자체 시정명령(원상복구 명령)→집주인 시정명령 불이행→지자체 상당한 이행기간의 통지→집주인 이행기간 내 시정명령 불이행→지자체 계고처분→지자체 이행강제금 부과(연 최대 2회, 총 5회)’ 등이다.

좀 더 쉽게 풀어보자. 자치구는 적발하면 즉시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원상복구 명령을 무시하는 집주인이 많다. 벌금으로 내는 이행강제금만 내면 불법인 채로 건물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이행강제금은 규모가 크지도 않다. 현행법상 ‘건축물 시가표준액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에 위반면적을 곱한 금액 이하의 범위’에서만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33㎡(약 10평) 짜리 건물에 3.3㎡(약 1평)을 불법 증축했다면, 불법 부분인 3.3㎡(약 1평)의 시가표준액을 반영해 부과하는 식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시로부터 입수한 ‘2018년 위반건축물 유형별 현황’ 자료를 보자. 지난해 서울시가 총 6만5779건의 불법 건축물로부터 걷은 이행강제금은 866억7701만9000원. 건당 131만원에 불과한 금액이다. 1년에 최대 2회까지 이행강제금 부과가 가능하다는 걸 감안해도 260만원에 남짓한 수준이다. 

반면 불법으로 평수를 늘려 받을 수 있는 ‘임대수익’은 막대하다. 빌라업계 관계자는 “평수를 늘리면, 그만큼 임대료를 높게 받을 수 있는 만큼 연 100만원이 채 안되는 벌금을 내는 게 낫다”면서 “방 2개까지 66㎡(약 20평)짜리 건물로 사용승인을 받고, 13㎡(약 4평)가량의 베란다를 확장해 방을 하나 더 만들어 놓으면 방 3개짜리 빌라로 팔거나 임대를 놓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 역시 이행강제금만 내고 원상복구하지 않고 장기간 버티는 건물주에겐  ‘형사 고발조치’란 강력한 칼을 빼들 순 있다. 하지만 좀처럼 보기는 어렵다. 서울시 한 구청에서 위반건축물을 담당하는 사무관은 “단속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해당 건물주를 마냥 몰아세우기는 어렵다”면서 “골목 곳곳에 이런 빌라가 널려있는 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따져 물으면 우리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현창용 대표는 불법증축 빌라를 이렇게 정리했다. “건물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고, 우스꽝스럽게 덧댄 부분은 도시 전체의 경관을 해치기도 하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임대료로 돈을 벌고, 건축가는 추가 증축으로 돈을 벌고, 지자체는 벌금으로 돈을 버는 구조다. 모두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보니 불법증축 빌라가 양산되는 걸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모두 웃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늘 그렇듯 애먼 피해자는 있게 마련이다. 바로 불법증축 빌라의 세입자다. 이승태 변호사(법무법인 도시와사람)는 “이행강제금은 베란다를 불법으로 확장한 건축주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현재 위법한 건물을 점유하고 있는 점유자 또는 소유자에게도 부과될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불법인지 모르고 베란다가 증축된 빌라를 매수하거나 임차해 이행강제금을 부과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불법’으로 점철된 빌라를 우린 언제까지 내버려둬야 할까. 늘 그렇듯 해결책은 가까이 있지만 해결자는 멀리 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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