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여행] 승리를 통제하다
[이순신 여행] 승리를 통제하다
  •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 호수 334
  • 승인 2019.04.17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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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편 한산도❺
한산도해전에서 이순신의 유적계에 당한 왜군은 59척의 배가 침몰하고 6000명이 넘게 전사했다. [사진=연합뉴스]
한산도해전에서 이순신의 유적계에 당한 왜군은 59척의 배가 침몰하고 6000명이 넘게 전사했다. [사진=연합뉴스]

한산도해전이 시작되자 이순신은 대여섯척의 판옥선을 내보냈습니다. 한니발이 전진배치했던 경무장 보병과 같은 역할이었지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해적 출신의 수군 명장이었습니다. 다섯척의 판옥선이 이순신의 유적계誘敵計, 이를테면 유인책일 가능성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와키자카는 자신 있게 주력부대를 모두 이끌고 쫓아왔습니다. 이순신이 유인작전을 썼다 해도 충분히 조선 수군을 압도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겁니다. 그의 함대도 작은 규모가 아니었으니까요. 대여섯척의 판옥선을 추격하던 일본 함대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뿔싸! 어느새 조선 함대에 포위돼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부터 왜선은 조선 수군의 함포에 두들겨 맞아 하나둘씩 박살났습니다. 때마침 해류의 방향이 조선 수군 쪽에 유리하게 바뀐 데다, 학익진의 날개에 갇혀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서구의 모든 육군사관학교에서 가르친다는 칸나에전투가 1800여년 후에 한반도 남쪽 바다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한산도대첩을 외국의 해군사관학교에서 가르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전세계 전쟁사학자들이 한산도대첩을 높이 평가하며 연구해왔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한산도해전에서 발생한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피해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일본 수군은 59척의 배가 침몰하고 6000명이 넘는 왜군이 전사했습니다. 조선 수군은 단 한척의 전선도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3명의 전사자와 10여명의 부상자가 피해의 전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한산도대첩은 조선의 칸나에전투였습니다.

제승당 :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통영 여객터미널에 가면 한산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습니다. 배를 타면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런 당연한 말을 굳이 하는 것은 배를 타고 바다를 오가며 싸웠던 이순신과 수군의 마음을 느껴보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꼭 직접 배를 타고 한산도로 가봤으면 좋겠습니다.

배로 25분쯤 가면 한산도에 도착합니다. 배에서 내려서 아늑하고 아름답게 휘어진 바닷길을 따라 걷다 보면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이라고 적힌 입구가 나옵니다. 이곳에 최초의 삼도수군 통제영이 설치돼 4년간 유지됐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한산도 깊숙이 움푹 들어간 곳에는 제승당이 있습니다. 군사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이 봐도 절묘하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제승당制勝堂을 풀이하면 ‘승리(勝)를 통제(制)하는 곳(堂)’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Victory를 Control하는 Hall이라고 하면 될까요? 참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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