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여행] 민주적 상명
[이순신 여행] 민주적 상명
  •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 호수 353
  • 승인 2019.08.3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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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편 전쟁 준비
이순신은 명령을 내리기 전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사진=연합뉴스]
이순신은 명령을 내리기 전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사진=연합뉴스]

군대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생명으로 합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무조건 자신의 명을 따르라고 윽박지르지 않았습니다. 상명上命이 결정되기까지, 부하들과의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습니다. 

아래는 임진왜란 발발 직후부터 이순신의 첫 출전까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임의로 해석을 더한 부분은 없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전서에 수록된 이순신의 장계와 「난중일기」 그대로입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간순으로 재배치했습니다.

4월 15일 일본군 부산포 도착 2일 후 : 이순신은 영남 우수사 원균과 영남 좌수사 박홍으로부터 각각 통첩을 받았습니다. 원균에겐 왜선 90여척이 부산포 앞 절영도에 닿았다는 것을, 박홍에겐 왜선 350척이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순신은 이들로부터 받은 통첩 내용이 담긴 장계를 조정에 띄우고, 순찰사, 병마사, 우수사에게도 즉각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순신은 그 왜선의 출현이 침략의 시작이란 점은 몰랐습니다. ‘무역선일 수 있지만 일본의 침략일 수도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고 왕에게 보고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순신은 자신이 관할하는 10개 기지에 비상령을 내리고, 전라 감사와 전라 병사, 전라 우수사에게도 알렸습니다. 

4월 16일 일본군 부산포 도착 3일 후 : 이순신은 영남 우수사 원균이 보낸 공문을 통해 부산진이 함락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순신은 다시 장계를 올리고 삼도에도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내에 비상령을 내리고 장비의 점검 등도 지시했습니다. 

4월 17~19일 : 이순신은 자신이 맡은 지역의 방어 태세를 철저히 점검했습니다. 발포 권관이 파직됐으니 임시 책임자를 정해달라고 순찰사가 요청했습니다. 이순신은 나대용을 천거했습니다. 영남 우수사 원균, 영남 우병사 김성일 등으로부터 전쟁의 상황에 대해 연락을 받았습니다. 주로 거듭되는 패전과 일본군의 강성함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일단 관내 순시와 점검에 집중했습니다. 

4월 20~22일 : 이순신은 전라 관찰사 김수의 공문을 통해 전라 좌수영의 전선이 경상도에 와서 도와줄 것을 조정에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전라 좌수사 이순신은 이때부터 다른 지역으로의 출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정의 정식 명령 없이 군대를 이끌고 관할 지역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이순신은 여러 곳으로부터 소식을 받으면서 지역의 방비에 충실했습니다. 

전쟁 소식이 점차 널리 알려지자 민심과 군의 분위기가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순신은 군의 기강이 해이해지거나 교란되지 않도록 엄정하게 관리했습니다. 또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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