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CEO와 청년의 차 한잔 “해보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프랜차이즈 CEO와 청년의 차 한잔 “해보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 김다린 기자
  • 호수 415
  • 승인 2020.11.18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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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링 1편] 이재욱 피자알볼로 대표와 한동훈 학생
[사진=천막사진관]
[사진=천막사진관]

‘티(tea)’가 놓인 테이블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습니다. 한 사람은 20대 청년, 한동훈(25) 학생입니다. 학생에겐 꿈이 있습니다. ‘한동훈’이란 이름을 내건 식당을 창업하는 겁니다. 벌써 쓴잔도 한번 마셨다는군요. 3년 전 노량진에서 ‘작은 곱창집’을 야심차게 열었다가 별 성과 없이 가게를 접었다고 합니다. 한편에선 ‘용기가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동훈 학생에게 실패의 상처는 깊기만 합니다. 

동훈 학생과 마주 앉은 이는 성공한 프랜차이즈 CEO 이재욱(42) 피자알볼로 대표입니다. 피자알볼로는 14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수제피자 전문 브랜드입니다. 매장은 274개(2020년 8월 현재), 연매출은 351억원(2019년 기준)에 이릅니다. 피자알볼로의 피자는 ‘건강한 도우’ ‘풍부한 토핑’으로 유명합니다. 마케팅보단 품질에 집중해 기존 피자 브랜드와는 다른 성장문법을 보여 왔습니다. 

그런 이재욱 대표가 동훈 학생의 ‘멘토’를 자처했습니다. 자신의 생생한 창업 경험을 직접 들려주는 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멘토링을 들어보시죠. “위기는 기회입니다. 간절하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다면 한발 물러서도 괜찮습니다. 실패도 배움입니다.” 지금부터 두 사람의 ‘티토링(Tea-toring)’을 공개합니다. 

티토링은 더스쿠프(The SCOOP)와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가 공동으로 기획한 ‘멘토링 프로젝트’입니다. 꿈을 꾸는 청년 멘티와 꿈을 이룬 멘토를 매칭해 티 한잔을 마시면서 공감대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입니다. 티토링 그 첫번째 편, 성공한 프랜차이즈 CEO와 창업을 꿈꾸는 청년의 만남입니다. 

“요즘 청년들 정말 힘들거든요.” 한동훈 학생은 요즘 청년의 문제로 입을 뗐다. 우는소리도, 볼멘소리도 아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 상승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세번째로 컸다. 

연애ㆍ결혼ㆍ출산과 같은 인생의 통과의례가 사치가 돼버린 세상, ‘헬조선’ ‘수저신분론’ 등 조롱 섞인 신조어를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에 우리 청년들이 힘겹게 서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동훈 학생은 이재욱 피자알볼로 대표의 멘티로 선정된 날 ‘십수년 전에도 지금처럼 막막했는지’를 가장 먼저 묻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이 대표에게 그 질문을 첫번째로 던졌다. 

성공한 프랜차이즈 CEO 이재욱 대표와 창업을 꿈꾸는 청년 한동훈 학생이 만났다.[사진=천막사진관]
성공한 프랜차이즈 CEO 이재욱 대표와 창업을 꿈꾸는 청년 한동훈 학생이 만났다.[사진=천막사진관]

한동훈 학생 : “요즘은 창업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기 어렵습니다. 불경기에다 코로나까지 겹쳤잖아요. 대표님도 처음 가게 문을 열 땐 청년이었을 텐데, 어땠나요. 지금처럼 막막했나요.”

이 대표가 피자알볼로를 창업한 건 2005년, 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두살 터울의 동생 이재원 피자알볼로 부사장과 함께 목동에 19.8㎡(약 6평) 크기의 가게를 연 게 출발이었다. 

알바 등을 전전하면서 간신히 모은 전세자금 2500만원을 탈탈 털어 시작한 ‘흙수저 창업’이었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직접 전단지를 들고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니고, 오토바이를 몰면서 배달영업을 했다. 고행이었다. 하루에 고작 피자 3판을 파는 날이 숱했다. 전단지를 꼽다가 아파트 수위 아저씨에게 모욕을 당하고 쫓겨난 일도 많았다. 

하지만 형제는 ‘건강에 좋고 맛도 좋은 수제피자’란 콘셉트를 고집스럽게 유지했다. 수제피자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빛이 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결과였다. 실제로 창업한 지 5년 만인 2010년부터 피자알볼로는 가맹사업을 펼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재욱 대표 : “저 역시 창업을 하기 전엔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진로를 두고 걱정이 많았죠. 요식업 전공을 살려 취직을 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고민이 많아서였는지 아르바이트도 참 많이 했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경험이 밑천이 된 것 같습니다.”

한동훈 학생 : “그때도 지금처럼 경기가 나빴나요.”

이재욱 대표 :  “통계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체감경기는 그때도 지독했습니다.” 

피자알볼로가 문을 연 2005년은 이 대표의 기억대로 ‘침체기’였다. 2001년 치욕스러웠던 외환위기를 극복해냈지만 후유증은 한국경제 밑단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필이면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청년들의 상황은 당연히 심각했다. 2005년 월평균 취업자 증감 수는 14만9000명으로 2004년(46만명)보다 부쩍 감소했다. 2005년 2월 청년실업률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9.0%를 돌파하면서 청년 실업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각됐다. 지금의 ‘N포 세대’처럼 당시엔 ‘이태백’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이었다. 

한동훈 학생 : “그런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이재욱 대표 : “어려움도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전 내성적이긴 하지만 긍정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힘들긴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했습니다. 맛있는 피자를 만든다는 열정과 패기도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요즘 청년에게 “열정과 패기를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간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실질 청년체감실업률(2020년 9월 기준)이 25.4%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의 수준이라니 그럴 법도 하다.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족公試族’이 가파르게 늘어난 것도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동훈 학생은 청년들의 열정이 공무원 시험에 소비되는 장면을 똑똑히 봤다. 프랜차이즈 CEO를 꿈꿨던 그가 3년 전 첫번째 창업(곱창집)에 도전했던 장소가 노량진이었기 때문이다. 

이재욱 대표 : “동훈 학생은 창업 경험이 있다고 들었어요. 몇살 때였나요. 참 용감하네요.”

한동훈 학생 : “스물한살 때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인 몇몇이 모여 망해가는 가게를 인수했는데, 그중 한명이었죠. 브랜드 이름을 정하고 메뉴를 구성하고, 인테리어를 다시 꾸며 저만의 첫 가게를 열게 됐죠.”

창업 경험치를 쌓을 좋은 기회였지만 쉽지 않았다. 매출이 들쭉날쭉하자 함께 가게를 운영하던 ‘동업자’들과도 갈등에 빠졌다. 결국 동훈 학생은 창업 1년 만에 ‘입대’를 선택했다. 금세 끝난 도전이었지만 느낀 점은 있었다. 손님으로 마주하던 이들과의 ‘동질감’이었다. 평범한 청년이 그나마 비빌 언덕이 공무원뿐이란 현실이었다. 그건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감정이었다. 

한동훈 학생 : “당시엔 공부 열심히 하는 청년들에게 저렴하고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게 낙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아! 공시밖에 답이 없구나’란 생각도 했습니다. 일종의 자괴감 같은 거였죠. 대표님은 요즘 청년의 자화상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재욱 대표 : “청년들 사이에서 공무원이 인기 직업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합니다. 공무원 참 좋죠. 그런데 개인적으론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노력을 공시에 쏟아부어도 일부만 그 성과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그사이 더 많은 기회가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한동훈 학생 :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이재욱 대표 : “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공시를 선택한 청년들이 주변을 보면서 다른 길을 살필 만한 여유나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겠느냔 아쉬움은 있습니다.” 

한동훈 학생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재욱 대표 :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건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다 보면 기회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면 빠르게 포기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럼 제2의 길, 제3의 길을 의미 있게 열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포기할 때의 기준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내가 정말 끝까지 최선을 다했는가’를 반문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이 기준이 돼선 안 됩니다.”

‘티토링 제1편 프랜차이즈 CEO와 청년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천막사진관]
‘티토링 제1편 프랜차이즈 CEO와 청년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천막사진관]

동훈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도 있었다. 포기조차 어려운 지금 청년의 현실이 너무 엄혹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동훈 학생이 이렇게 물어봤던 것 같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하셨을 것 같나요?” 이 대표가 고개를 갸웃하자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지금 시대에서 20대 청춘으로 살고 있다면, 선뜻 창업을 선택했겠습니까.” 이 대표는 즉각 대답했다. “저는 합니다.”

이재욱 대표 : “저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무조건 창업을 선택하라고 해요. 꿈이 있다면 말이죠. 창업해야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같이 어려울 때도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을 통해 얻는 것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어려울 때 더 많이 도전해야죠. 그래야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라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한동훈 학생 :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안 보일 때는 어떻게 하죠.”

이재욱 대표 : “그런 힘든 순간도 분명히 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창업 초기엔 하루에 피자 3판을 파는 데 그쳤습니다. 그럴 땐 피자고 뭐고 다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한동훈 학생 : “그런데도 견뎌내셨군요.”

이재욱 대표 : “한두 분의 고객이 제가 만든 피자를 맛있다고 평가했거든요. 좋은 재료를 썼고,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습니다. 제 선택이 틀린 건 아니었다는 얘기였죠. 배달도 직접 했는데,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 상당했습니다.”

지금이야 배달앱의 인기로 누구나 배달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피자알볼로를 창업했던 2005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자영업자라면 배달을 해야 했고, 그런 배달은 ‘철가방’이란 비아냥 섞인 말로 통용되곤 했다. 낯을 가리는 이 대표에게도 배달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어요. 창피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길에서 지인을 만나기라도 하면 도망치듯 숨었습니다. 가게를 알리는 전단지를 동네 곳곳에 붙이는 것조차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한동훈 학생 : “그런 문제는 어떻게 딛고 일어섰나요.”

이재욱 대표 : “매번 숨고 피하다가 문득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이 다 고객들인데, 나는 왜 고객을 피하고 있나.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고마운 분들인데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었죠.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용기를 내서 전단지를 건넸어요. ‘제가 직접 만든 피자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라는 말도 붙여봤죠.”

한동훈 학생 :  “뭐가 달라지던가요?” 

이재욱 대표 : “참 신기했어요. 전단지를 받은 이들이 실제로 주문을 하더라고요. 맛이 좋다고 느낀 분들은 일종의 ‘단골’이 됐고요. 그때 알았어요. ‘요식업도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구나’란 사실을요.” 

창업이라는 게 그렇다. 끝없이 도전하고, 끝없이 적응해야 한다. 장사가 잘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업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가맹사업을 2010년 시작했지만, 진통의 연속이었다. 몸집이 커지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점들이 숱하게 노출됐기 때문이었다. 프랜차이즈 CEO가 꿈인 동훈 학생도 이 부분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한동훈 학생 : “사업이 잘되면 필연적으로 몸집이 불어나게 마련이잖아요. 피자알볼로도 성장통이 있었을 텐데, 어떤 문제점이 있었고,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이재욱 대표 : “가맹점이 20개쯤으로 늘어났을 무렵입니다. 늦은 밤 점주들이 모여 성난 표정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분들의 불만은 간단했습니다. 본사에서 이런저런 마케팅을 펼쳐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런 활동이 없으니 답답했던 거죠.” 

한동훈 학생 : “막막하고 당황스러웠을 것 같은데요.”

이재욱 대표 : “네, 프랜차이즈 사업을 접어야 하나란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한 점주분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을 믿고 있다. 피자가 맛있으니 포기하지 말아 달라.’ 그때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일단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가서 사업 공부를 시작했죠.”

한동훈 학생 : “어떤 분야든 공부가 필요하군요.” 

이재욱 대표 : “그럼요, 끝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한동훈 학생 : “지금도 그때의 그 열정과 초심을 간직하고 있나요?” 

이재욱 대표 : “지금도 일을 하면 설렙니다. 더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겠죠. 사실 전 목표를 크게 세우는 편이 아니에요. 작은 목표를 달성하면서 동력을 얻곤 하죠. 음, 예를 들어볼까요? 윗몸 일으키기를 처음부터 100개를 할 순 없습니다. 10개를 해내야 20개, 30개가 있고, 그래야 100개란 목표를 달성하는 게 가능합니다. 창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대한 포부 말고 작은 목표를 세우세요. 쉽게 달성하면서 자신감은 물론 희망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동훈 학생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저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요즘 청년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말이 있나요.” 이재욱 대표의 메시지는 단순명료했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두렵고 힘들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든 잘할 수 있는 재능 하나는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그런 재능을 살릴 기회도 찾아옵니다. 저도 포기하지 않고 견디다 보니 신기하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동훈 학생은 지금 젊잖아요. 포기하지 말고 꿈이 있다면 꼭 도전해 보세요.” 

벌써 1시간30분이 흘렀다. 두 사람의 티토링은 예상보다 길게 이어졌다. 웃음과 탄식, 조언과 비평이 섞이면서 둘은 ‘공감대’를 찾아갔다. 티토링은 그렇게 끝났다. 뭔가 아쉬웠던 건지 이 대표가 한동훈 학생에게 한마디 더 건넸다. “준비하다가 막히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세요. 파이팅!” 두 사람의 티토링은 지금부터다.  

김다린·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사진= 천막사진관

영상=영상제작소 Vide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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