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대출 절벽

정부와 금융당국이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고금리에 허덕이던 서민에겐 반가운 소식임에 분명하다. 금리가 낮아지는 만큼 이자부담을 덜어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금리인하의 부메랑을 맞을 수밖에 없는 계층도 있다. 저소득층이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저소득층은 4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정부에 이들을 포용할 만한 정책이 있느냐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대출 절벽의 상관관계를 취재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대출길이 막힌 저신용자가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사진=연합뉴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매년 4830억원의 이자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정부가 최고금리 인하를 발표하면서 밝힌 금리인하 효과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11일 당정협의를 열고 법정 최고금리 인하 방안을 확정했다. 현재 24.0%인 법정 최고금리를 20. 0%로 4%포인트 낮추겠다는 게 계획의 골자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3월 기준 20% 초과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239만명 중 87%에 해당하는 208만명이 금리인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금리 인하로 기존 대출시장에서 밀려나는 차주借主는 31만6000명으로, 이중 3만9000명이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고금리 인하는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차주에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금리로 빌린 대출의 원리금을 상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차주의 숨통이 트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갑작스러운 금리 인하 결정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법정금리 인하 결정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우려가 많은 곳은 고금리대출 비중이 높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중금리 대출을 확대하면서 최고금리가 20%를 밑도는 저축은행이 적지 않다”면서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금리 대출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20%를 넘는 고금리 대출이 많은 저축은행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금리인하로 수익이 감소하는 걸 만회하기 위해 대출금리가 20% 미만인 대출자의 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축은행 업계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게 대부업계의 토로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금리로 폭리를 누리던 대부업체의 ‘우는소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부업계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건 살펴봐야 할 이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4년 7643개였던 대부업체(대부중개·채권매입추심업 제외 기준)는 2016년 6835개로 감소하더니 2018년엔 5827개까지 줄었다. 지난해엔 6005개를 기록하며 소폭 증가했지만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다시 줄어들 공산이 크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대부업체들이 ‘대출 문턱’을 높여왔다는 점이다. 신용대출 위주였던 대부업체들은 최근 안전한 담보대출을 늘리고 있다. 2015년 2조140억원이었던 담보대출 잔액이 지난해 7조원으로 3배 이상 증가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통계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이 11조2312억원에서 8조9000억원으로 20.7% 감소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2015년 21.2%였던 대부업체의 대출승인율이 지난해 11.8%로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나이스평가정보 기준). 이 통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저신용자 10명 중 9명은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저신용자를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최고금리 인하 예고한 정부

문제는 정부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대비책을 갖고 있느냐다. 정부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간 2700억원 규모의 정책서민금융을 확대하고 채무조정·신용회복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하지만 이 정도로는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내몰린 저신용자를 포용하긴 어렵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6000개 수준인 대부업체가 2000개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대부업체 감소로 타격을 입는 저신용자가 급증할 수 있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신용등급 저신용자가 빌리는 돈은 평균 1200만원이다. 최고금리 인하로 타격을 입는 저신용자를 대략 300만명으로 계산하면 연간 4조~5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서민금융을 대폭 확대하지 않는 이상 많은 저신용자들이 ‘대출 절벽’에 부닥칠 것이란 얘기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최고금리 인하의 취지는 좋지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며 “시장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저신용자가 증가하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대부업체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상봉 교수는 “은행이나 저축은행이 나서 저신용자 대출을 늘릴 가능성은 낮다”며 “대부업체를 활용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방법은 대부업체의 조달 비용을 낮춰 주는 것이다.

시장에 미칠 부작용 살펴야

지금은 제2금융권이나 개인 차입에 의존해 대부업체의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과거 고금리로 돈을 벌어들인 몇몇 대부업체는 버틸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부업체는 힘겨울 것”이라면서 주장을 이어갔다. “조달금리를 낮춰 대부업체가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어쩌면 저신용자가 불법 사금융시장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 것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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