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terview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국내 최초 월경용품 전문점 론칭
비싼 생리대 가격 직접 해결 나서
정부보다 앞서 바우처 지원 시작

2016년 ‘깔창생리대 이슈’가 터지기 직전. 한발 앞서 생리대를 못 사는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스타트업이 있다. 놀랍게도 이 회사는 정부가 생리용품 바우처 지원을 시작하기 전에 ‘기부 포인트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7년 월경컵을 국내 최초로 수입한 곳도, 월경용품 전문매장을 국내 시장에서 처음 론칭한 곳도 여기다. 월경 전문 커머스 ‘이지앤모어’의 이야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를 만났다. 

이지앤모어의 목표는 월경을 향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진은 안지혜 대표. [사진=천막사진관]
이지앤모어의 목표는 월경을 향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진은 안지혜 대표. [사진=천막사진관]

‘깔창생리대’ 논란이 전국을 뒤흔들기 한달 전인 2016년 4월 25일. 월경용품 전문 이커머스 스타트업 ‘이지앤모어’는 생리대를 살 돈이 없는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서포터가 생리용품 패키지 하나를 사면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게도 생리대 한 상자가 전달되는 식이었다. 지원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이지앤모어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후에도 생리용품 지원을 이어갔다. 2018년엔 정부보다 먼저 ‘기부 포인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소비자의 기부 포인트를 전달받은 청소년은 자신에게 필요한 생리용품을 골라서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 회사는 기부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월경컵 ‘페미사이클’을 수입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계기로 국내 월경컵 시장을 열어젖힌 곳도 여기다. 

그럼에도 이 스타트업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1월 8일 서울 대방역 ‘스페이스 살림’에 국내 최초 월경용품 전문상점 ‘월경상점’을 열었다. 월경용품 판매를 넘어 문화를 만들고 있는 이지앤모어의 안지혜(35) 대표를 만났다. 안 대표는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며 “월경 사각지대를 메우는 게 복지”라고 말했다. 

✚ 이지앤모어를 시작하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처음엔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어요. 7년 정도 숫자를 좇는 일을 하다 보니 조금씩 버거워지던 어느 날, 자주 가던 식당이 이주여성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란 걸 알게 됐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그곳으로 이직했어요. 근무하는 1년 동안 여성문제 공부를 많이 했고,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을 키웠어요.” 

✚ 그런데 왜 월경 전문 이커머스를 만드셨나요?
“이직 후 남편이 장을 보다가 무심코 던진 질문이 계기가 됐어요. 남편이 제게 “생리대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었는데, 전 그제야 ‘생리대가 비싸다’는 사실을 인식했죠.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생리를 하지 않는 사람 눈에는 비싼 물건이었던 거죠. 그때 월경용품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온라인에선 오프라인보다 가격이 2~3배 저렴하니, 가격을 낮춰 판매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사업 초기,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기부하는 펀딩을 진행하셨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월경용품 판매 사업을 결심하고 소비자 조사를 해봤어요. 그런데 정말 돈이 없어서 생리대를 사지 못했던 여성이 많은 거예요. 생리대 가격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품 하나를 사면 저소득층 청소년에게도 기부하는 사업모델을 세웠고, 펀딩이 그 시작이었죠.”

✚ 지금도 기부를 하고 있나요?
“그럼요. 다만 2018년부터 방식을 바꿨어요. 용품을 주는 대신 포인트로 원하는 제품을 살 수 있게 했죠. 아이들의 나이, 혈의 양, 피부 민감도 등이 다른데 정해진 제품만 쓸 순 없으니까요.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 ‘초이스샵’을 만들어 필요한 제품을 직접 구매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쓰는 포인트는 저희 온라인 몰에서 구매한 소비자들이 모은 거예요. 제품을 구매하거나 리뷰를 작성하면 기부 포인트가 적립되죠.”  

✚ 정부보다 빠르게 포인트 방식을 도입하셨네요. 정부 지원을 받는 청소년도 초이스샵을 이용할 수 있나요?
“저희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어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중에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부모님이 일을 하지 못해 소득이 없는데도 집이 있어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는 경우죠. 현재는 149명의 아이들이 초이스샵을 이용하고 있어요.” 

✚ 정부 지원사업의 판매처로 선정될 법한데, 왜 포함되지 않았나요?
“그렇지 않아도 몇년째 애쓰고 있는데 안 되네요. PG사(전자결제대행사)에서 바우처로 결제할 수 있게 기술개발을 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에요. 수소문하고 있지만 아직 방법이 없어요. 정부나 카드사는 PG사에 알아보라는 식이고요. 답답한 건 우리만이 아니에요. 많은 월경용품 관련 스타트업도 안타까워하죠. 아이들에게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줄 수 있는데 기회가 없으니까요.”

✚ 국내 생리대 시장은 독과점 형태였는데, 어느덧 다양한 월경용품 제조판매업체가 생겼습니다. [※참고 : 국내 일회용 생리대 시장점유율의 절반 이상은 유한킴벌리(42.7%)와 LG유니참(19.9%)이 차지하고 있다(키움증권, 2019년 기준).]
“2017년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일어난 이후 시장 자체가 커졌어요. 유기농 생리대가 뜨면서 새로운 브랜드가 늘었고, 월경용품 관련 스타트업의 규모도 커졌죠. 기성 업체들의 점유율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기성 제품만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월경컵이나 면생리대 시장이 생기면서 카테고리가 다양해졌다는 것도 큰 변화예요.”

이지앤모어는 지난 1월 8일 국내 최초 월경용품 전문 상점인 ‘월경상점’을 열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지앤모어는 지난 1월 8일 국내 최초 월경용품 전문 상점인 ‘월경상점’을 열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죠. 어떻게 보시나요?
“무엇보다 생리대가 여성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룬 자료가 부족해요. 일회용 생리대를 혈이 굳을 정도로 장시간 착용했을 때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와야 해요. 그래야 제대로 된 논의를 할 수 있죠.”

✚ 일회용 생리대가 불안한 여성들이 월경컵에 관심이 많아요. 실제로 사용하는 이들이 많나요?
“인지도가 높아지는 만큼 사용자가 늘어나는 건 아니더라고요. 국내에 들어오기 전부터 월경컵을 알던 사람들이나, 익숙해진 사람들은 꾸준히 써요. 하지만 진입장벽이 높은 건 사실이에요. 몸에 맞는 걸 찾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쓰던 사람도 편의성 때문에 일회용 생리대를 다시 찾기도 하죠. 시장이 형성된 지 3년째인데, 어떻게 성장시킬지 고민하고 있어요.”

✚ 아무래도 낯설어서 손이 가지 않는 듯해요.
“맞아요. 정보가 부족해서 그래요. 예컨대 10대 소비자는 ‘월경컵 쓰고 싶은데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라고 물을 때가 많아요. 어머니 입장에선 월경컵이 낯서니까 못 쓰게 하는 거죠. ‘월경박람회’ ‘월경컵수다회’ 등을 여는 이유예요. 온라인으로는 아무리 봐도 믿음이 가지 않지만 오프라인으로 접하면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망설이던 사람도 직접 보고, 만지고, 설명을 들으면 대부분 구매해요.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못 열지만, 최근에 오픈한 ‘월경상점’이 박람회를 대신할 것 같네요.”

✚ 이지앤모어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모든 여성이 건강한 월경을 하도록 돕는 것, 월경에 관한 인식을 바꾸는 게 목표예요. 아프고 짜증 나는 기간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으로 만드는 거죠. 앞으로 5년 정도는 월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그 뒤로도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일을 할 거예요.”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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