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규제개혁이 능사인가
규제개혁보다 기초연구가 중요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키우기 위해 규제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을 낮추는 게 혁신성장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해서다. 문제는 국민 보건과 직결되는 바이오산업에서 규제개혁이 능사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바이오규제를 둘러싼 논쟁거리를 취재했다. 

과도한 규제완화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도한 규제완화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혁신성장’은 규제개혁을 밑거름으로 삼는다. 여기엔 낡은 법이나 제도가 산업의 성장과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문재인 정부가 중점육성 산업으로 꼽은 바이오산업에도 이런 원리가 작용했다. 정부는 바이오산업 도약의 원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규제를 하나씩 풀었다. 

그 결과, 2019년 8월 바이오산업의 규제 샌드박스로 통하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단재생바이오법)’이 통과됐고, 그해 말엔 강원ㆍ대구를 비롯한 5개 지역이 바이오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이듬해 1월 국회의 문턱을 넘은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ㆍ정보통신망법ㆍ신용정보법 개정안)’도 의료데이터 활용을 확대해 바이오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밖에도 정부는 15개 규제개혁 과제를 담은 ‘바이오헬스 핵심규제 개선방안’을 수립했다.[※참고 : 첨단재생바이오법의 핵심은 의약품의 신속한 허가를 위한 맞춤형 심사와 조건부 허가 절차다. 중대ㆍ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심사기간을 단축하거나 임상2상에서도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데이터 3법 통과와 규제 샌드박스 시행으로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열렸다”고 강조했던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올해도 어김없이 바이오산업의 도약을 위해 규제를 개선해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과도한 규제가 때로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바이오산업에 같은 논리를 적용해선 안 된다는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이오산업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보건산업이기 때문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보건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성과 효용성인데, 규제장벽을 낮추면 이를 담보할 수 없게 된다”면서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이슈만 봐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백신 이슈는 세계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화이자 백신의 예방효과가 90%를 넘는 데 비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예방효과는 70%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통상 예방효과가 50%를 넘으면 백신의 효용성을 인정한다. 이를 감안하면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을 기피하는 게 품질 때문만은 아니다.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명확한 효과와 이를 입증할 데이터가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절차를 간소화해서 적은 양의 데이터로 의약품을 만들어봤자 세계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안전성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만에 하나라도 부작용이 발생하면 품목허가 취소나 임직원 구속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국내 바이오산업의 위기를 부르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정부의 보건의료 분야 투자 실적을 보면 유독 의약품안전관리에 소홀했다. 최근 5년간(2015~2019년) 의약품ㆍ의약품개발기술 연구ㆍ개발(R&D)에 쓴 비용은 연평균 8.8% 증가한 반면, 의약품안전관리 R&D 비용은 연평균 7.4% 감소했다. 액수로 놓고 봐도 의약품ㆍ의약품개발기술에는 4079억원(2019년 기준)을 썼고, 의약품안전관리에는 170억원을 사용하는 데 그쳤다. ‘부쩍 낮아진 규제장벽 너머로 쏟아지는 의약품의 안전관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란 질문이 쏟아지는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바이오업계는 “사기와 기망으로 얼룩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보사 사태를 비롯해 메디톡신과 씨엘바이오의 서류 조작, 한올바이오파마의 임상시험 결과 왜곡, 최근엔 에이치엘비의 허위공시 논란까지 안 좋은 소식이 해를 거르지 않고 쏟아지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규제완화가 능사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규제완화가 투기를 부추기고 눈먼 돈을 부를 우려가 크다”는 일부의 우려를 감안하면 바이오업계 모럴해저드 문제가 더 심각해질 공산이 커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 문턱을 낮춰 산업을 육성하는 건 과거 반도체나 자동차ㆍ조선에서 효과를 봤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정책을 바이오산업에도 적용하겠다는 건 바이오산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자동차나 반도체는 공학기술이 있으면 실체도 있다. 하지만 바이오는 임상3상에서도 파투破鬪가 날 수 있다. 더구나  의약품은 안전성을 확보해도 효용성이 없으면 사기나 마찬가지다. 최종 승인을 받아야 실체가 생긴다는 거다. 결국 규제완화는 실체가 불분명한 기술이나 기업을 판매ㆍ상장하도록 용인해주는 꼴이다.”

그렇다면 규제개혁 없이 바이오산업을 육성할 순 없을까.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국내 기업들은 최종산물의 연구에만 몰두하는 데, 사실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이 바이오선진국인 이유는 기초연구에 투자를 많이 해서다. 국내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규제를 완화할 게 아니라 기초연구를 주도해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진짜 바이오원년을 만들기 위한 지름길은 규제완화가 아닌 기초를 닦는 일이라는 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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