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플랫폼의 유별난 특징들

작은 골목까지 집어삼켰다. 빵가게든 미용실이든 동네가게든 대기업이 잠식하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돈과 거래선만 있으면 ‘포식’쯤은 식은죽 먹기였다. 하지만 대기업이 쉽게 깃발을 꽂지 못하는 곳이 있다. 흥미롭게도 중고거래 시장이다. 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공룡이 당근을 먹지 못하는 이유를 취재했다. 

중고거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형 유통업체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GS리테일 제공]
중고거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형 유통업체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GS리테일 제공]

개점하자마자 구름 같은 인파가 모여든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화제를 모은 매장이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첫 오프라인 스토어 ‘BGZT랩(브그즈트랩)’이다. 브그즈트랩에선 한정판 스니커즈를 판매할 뿐만 아니라 개인 간 비대면 중고거래를 위한 라커도 제공한다. 

중고물품 판매업체와 거래를 튼 유통채널은 더현대 서울만이 아니다. 이마트24·롯데마트는 일부 점포에 ‘파라바라’의 중고거래 자판기를 배치했다. 중고물품을 팔기 위해 매장의 일부를 기꺼이 내준 셈이다.

지난해 정식 론칭한 파라바라는 자체제작한 중고거래 자판기를 이용해 비대면 중고거래를 중개하는 업체다. 판매자가 기기에 물품을 넣으면 구매자는 대금을 지불하고 물품을 꺼내간다. 거래가 성사되면 파라바라도 일정의 수수료를 받는다. 

중고거래 플랫폼과 택배 제휴를 맺어 쏠쏠한 효과를 보는 곳도 있다. CU는 2017년 편의점 업계에서 처음으로 중고나라 운영사 큐딜리온과 손잡고 운임비 할인혜택을 제공했다. 이후 번개장터·아이베이비·헬로마켓과도 제휴를 맺었다. 그 결과, 지난해 1~4월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한 택배 이용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7.7% 늘어났다. 

GS25도 중고거래 플랫폼을 활용할 방침을 세웠다. GS25는 지난 2월 당근마켓과 ‘우리동네 플랫폼’ 구축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협약에 따르면 GS25와 당근마켓은 각자의 강점인 1만5000개 점포와 2000만명의 회원을 활용해 ▲온오프라인 상품 판매 ▲생활 서비스 ▲구인구직 공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숱한 유통업체가 중고거래 플랫폼과 손을 맞잡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 간 중고거래 시장이 유통업체에도 새로운 먹거리여서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중고거래를 통해 모객 및 추가구매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중고거래의 매력이다.”

커뮤니티 탄탄해야 거래도 생겨

그런데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게 있다. 중고거래 시장에 직접 뛰어든 유통업체들이 없다는 점이다. 프로모션을 함께 진행하거나 공간을 내주는 ‘간접적 방법’만 쓰고 있다. 대기업이 리퍼브 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던 것과는 다른 행보다. 왜일까.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중고시장은 ‘커뮤니티’를 축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일러스트=더스쿠프 포토]
중고시장은 ‘커뮤니티’를 축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일러스트=더스쿠프 포토]

“개인 간 거래가 중심인 생활 중고거래 시장에 진출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무리 자금이 많고 인프라가 탄탄하더라도 중고시장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공산이 크다. 이런 위험요인을 대형 유통업체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발을 살짝 담그는’ 정도의 전략만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고시장의 특징은 뭘까. 무엇보다 중고시장은 ‘커뮤니티’를 축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2003년 네이버 카페로 시작한 중고나라는 압도적인 회원 수(1만8000명)를 자랑한다. 20년 가까이 이어오면서 ‘오늘도 중고로운 평화나라’라는 밈(meme·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행동·양식·이미지)이 생길 만큼 대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중고거래 앱 사용자 수 1위에 오른 당근마켓도 마찬가지다. 당근마켓의 최대 강점은 앱 기반의 지역 커뮤니티다. 지역 정보를 공유하려는 사용자가 모이면서 커뮤니티가 커졌고, 자연히 거래량도 늘어났다. 중고나라 관계자는 “커뮤니티 성격과 플랫폼의 목적성이 확실해야 사용자가 모인다”며 “플랫폼의 편의성이나 규모, 결제 시스템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중고시장의 둘째 특징은 플랫폼 사용자가 구매자이자 판매자란 거다.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플랫폼이 ‘차별화된 콘셉트’를 갖고 있는 이유다. 예컨대, 번개장터의 모토는 ‘취향을 잇는 거래’다.

 

중고물품은 주로 개인 간 거래로 진행되기 때문에 ‘먹튀’ 가능성이 많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중고물품은 주로 개인 간 거래로 진행되기 때문에 ‘먹튀’ 가능성이 많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취향이 같은 사람끼리 중고물품을 거래하라는 취지인데, 10대 소비자가 응답했다. 이들이 아이돌 굿즈·피규어·콘서트 티켓·문제집 등을 사고 팔면서 번개장터는 중고 플랫폼의 강자로 올라섰다. 당근마켓 역시 ‘이웃 간 직거래’를 콘셉트로 동네 사람들을 구매자이자 판매자로 만들었다. 

사기 막으려 채팅·페이 도입

셋째 특징은 사기거래 리스크가 크다는 점이다. 중고물품은 주로 개인 간 거래로 진행되기 때문에 ‘먹튀’ 가능성이 적지 않다. 헬로마켓이나 번개장터가 자체적인 결제수단(헬로페이·번개페이)과 채팅기능(헬로톡·번개톡)을 도입한 이유다. 앱 내에서 흥정과 결제를 할 수 있어 편리한 데다, 사기거래의 위험을 줄일 수 있어서다. 더불어 플랫폼들은 AI에 사기 수법을 학습시켜 사기 거래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유통컨설팅업체 김앤커머스의 김영호 대표는 “중고거래 시장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형 유통업체가 직접 뛰어드는 게 만만치 않다”면서 말을 이었다. 

“자금과 거래선, 그리고 판로만 있다면 어떤 시장이든 장악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자금, 거래선, 판로를 모두 갖고 있는 대기업이 모든 시장을 점령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중고시장은 그렇지 않다. 이는 반대로 중고시장의 DNA를 습득할 수 있다면 ‘작지만 강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공룡이 당근을 먹지 못한 이유를 따져봐야 할 때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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