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년 10인이 바라는 정책
실질적 · 안정적 일자리 대책 원해
가벼운 주머니 헤아린 공약 ‘글쎄’

“꿈꾸는 청춘에게 날개를 달아주겠다” “청년의 꿈이 좌절되지 않는 서울을 만들겠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청년이 미래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그들이 내놓은 정책과 공약들은 청년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청년들이 바라는 서울과 후보자들이 만들겠다는 서울은 공통점이 있을까.

청년들은 일상에서 겪는 경제 문제부터 환경 문제까지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뒀다.[사진=뉴시스]
청년들은 일상에서 겪는 경제 문제부터 환경 문제까지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뒀다.[사진=뉴시스]

“잘 모르고 투표했다가 서울시가 잘못되면 어쩌지란 걱정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후보들의 공약을 더 많이 공부하고 투표하려고요(백아현ㆍ20).” “책임감이 느껴지고 부담감도 커졌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거구나 느꼈어요(조서영ㆍ23).” “터무니없는 공약들은 거르고,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일 현실성 있는 공약들을 눈여겨봐요(박소리ㆍ21).”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서울 청년들의 소회다. 혹자는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터부시한다. 그래서인지 주요 후보들이 내놓는 정책이나 공약에서 청년들은 가장 소외된 존재다. 하지만 청년들은 ‘혹자’의 생각보다 이번 보선에 진심을 쏟고 있다. 후보들의 세부공약을 꼼꼼히 뜯어보면서 자신들의 한표가 값어치 있게 쓰이길 바란다. 정작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건 기성세대일지 모른다는 거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바라는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또 청년은 어떤 정책을 바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20대 서울 청년 10명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 생각을 토대로 주요 후보자(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ㆍ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공약을 비교해봤다. 후보자들은 청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청년들의 현실 = 먼저 청년들은 자신이 일상에서 겪는 경제 문제부터 환경 문제까지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중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대학 등록금’ 문제였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지난해부터 모든 강의가 비대면으로 진행돼 수업 참여도가 떨어진 데다, 학교시설이 폐쇄돼 이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백아현(송파구) 청년은 “실습이 없는 학과다 보니 학교에 가본 적이 없고, 동기나 선배를 만나본 적도 없다”면서 “학교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데 비싼 학비 부담은 그대로다”고 꼬집었다. 조서영(마포구) 청년은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다 보니 등록금 부담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면서 “학교가 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독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서울시장 후보가 내놓은 청년 일자리 정책은 대부분 ‘창업’에 방점을 찍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두 서울시장 후보가 내놓은 청년 일자리 정책은 대부분 ‘창업’에 방점을 찍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서울 소재 대학교는 49개(일반ㆍ전문ㆍ교육ㆍ산업대학ㆍ2020년 기준)에 달하고 재학생 수는 56만3889명에 이른다. 전체 대학생(263만3767명)의 21.4%가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다. 청년들이 등록금 반환 등 무거운 이슈에서 서울시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두 후보 중 어느 누구도 대학 등록금 문제를 언급한 이는 없었다. “정부와 협의해 보겠다”는 정도의 약속이나 발언조차 없었다는 점은 청년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후보들이 내놓은 경제 공약도 청년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거대한 청사진’만 늘어놨을 뿐 청년들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린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들은 ▲대학생ㆍ무직청년 대상 교통비 지원 및 할인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 확대 ▲소득분위 구분 없는 다자녀가구 청년 지원 등 자신의 가벼운 주머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공약을 원했다.

전지민(성동구ㆍ23) 청년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다 보니 한 달에 10만원 안팎의 교통비도 부담이 된다”면서 “서울 거주 대학생이나 무직청년들에게 교통비 지원이나 할인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눈여겨본 후보는 없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 시민 모두에게 보편적 재난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청년층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아닌 데다 1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두 후보가 청년층을 위해 ‘월세 지원책’을 내놨다곤 하지만 기존 서울시 정책을 확대한 것뿐이어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참고 : 현재 서울시가 운영 중인 ‘청년월세지원사업’ 대상(현행 5000명)을 오 후보는 5만명으로, 박 후보는 모든 청년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정책 = 일자리 공약도 별반 다르지 않다. 두 후보 모두 구체적인 전략은 내놓지 않은 채 ‘창업’만 외쳤다. 먼저 오 후보는 ‘스케일업(기업성장) 도시’를 내걸었다. 서울시장 직속 창업성장위원회를 설치하고, 서울 시내 44개 창업 관련 시설을 구조조정해 민간전문기관에 위탁·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유니콘 기업을 3배 이상 육성하고 ‘스타트업(창업) 도시’를 넘어선 스케일업 도시를 만들겠다는 거다.

박 후보는 서울 시내에 21개(용산 스마트팜 클러스터, 서대문ㆍ은평 헬스케어 클러스터, 여의도 핀테크 클러스터 등)의 ‘혁신성장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국회 이전 부지를 청년창업특구로 지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여기에 연간 창업팀 100개를 발굴해 교육ㆍ투자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하지만 정작 창업에 부담을 느끼는 청년은 숱하다. 용기를 내서 시장에 뛰어들더라도 성공하기 쉽지 않은 데다 실패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들은 “일자리 공약엔 창업 관련 정책만 숱하다”면서 “창업시장에 억지로 떠미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청년들이 바라는 건 중소기업 처우 개선 등을 통한 실질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 공급대책이었다.

김이재(마포구ㆍ22) 청년은 “청년 고용 비중을 높인 중소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기업에 청년 인턴 할당제 도입을 독려해 실제 고용이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박소리(성동구) 청년은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이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를 서울시가 보전해주는 등의 제도를 통해 중소기업과 청년들을 연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환경정책 = 청년들이 대학 등록금ㆍ일자리 등 개인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쏟는 건 아니다. 사회적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적인 화두로 자리 잡은 환경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10명의 청년 중 2명이 환경정책을 제안했는데, 코로나19 이후 부쩍 증가한 ‘일회용품 소비’부터 ‘대기오염’ 문제까지 폭넓은 관심을 보였다.

이 때문인지 청년들은 즉각 효과를 낼 수 있는 현실적인 환경공약을 바랐다. 조서영 청년은 “플라스틱을 배제하고 종이로만 만든 친환경 포장용기나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이 펼쳐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소리 청년은 “친환경 포장재를 만드는 기업을 위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 서울시장 후보들이 내놓은 환경공약은 어떨까. 오 후보는 환경 관련 공약이 전무했다. 반면, 박 후보는 환경공약을 내놓긴 했는데, 장기적인 플랜에 치우쳐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2040년까지 자동차ㆍ트럭ㆍ버스를 친환경차로 전면 전환한다거나 태양광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제로에너지건축물을 의무화한다는 공약은 ‘1년 시장’이 내놓기엔 너무나 큰 그림이었다.


그중에서도 수직정원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은 “혁신적이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각적인 실효를 거둘 수 있는 환경정책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박 후보의 정책은 ‘먼 얘기’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젠더정책 = 젠더 이슈도 청년들에겐 큰 관심사다. 두 후보 역시 젠더정책에 많은 비중을 할애했는데, 아쉽게도 관점이 달랐다. 먼저 후보들의 정책부터 보자. 크게 ‘경력단절 해소방안’과 ‘여성 대상 범죄예방ㆍ안전대책’으로 나뉘었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두고 박 후보는 경력단절 후 재취업보다 경력단절 예방에 초점을 맞췄고, 오 후보는 경단녀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에 주목했다. 범죄예방·안전대책에선 공공화장실 개선과 안전한 안심귀가 대책 마련 등 두 후보의 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청년들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랐다. 예컨대 성별 간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선 전문적인 조기 성교육이 중요하다는 거다. 조서영 청년은 “우리나라에선 성 얘기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다보니 성교육 시기가 늦고, 교육 내용도 뻔하고 지루하기 일쑤인데, 이런 문제가 성차별ㆍ성범죄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라대한(성동구ㆍ25) 청년도 “현재 허투루 쓰이고 있는 성인지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민주성·효율성을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육정책 = 보육정책도 청년들과 후보들 간의 관점이 달랐던 분야 중 하나다. 먼저 두 후보는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높이고, 돌봄시설 관련 인적·물적 자원을 확충하는 등 공적 영역에서의 ‘돌봄 시스템’을 강조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부모가 직접 자녀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청년들이 ▲남녀 모두 육아휴직 의무사용 ▲일주일 두 번 ‘육아의 날’ 조기 퇴근 ▲한자녀 가정도 재정지원 등의 정책을 원한 이유다. 다만, 최근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아동학대에는 청년들과 후보들 모두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청년들은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바랐다.[사진=뉴시스]
청년들은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바랐다.[사진=뉴시스]

■장애인정책 = 장애인정책은 늘 말의 성찬盛饌에 그치는 공약 중 하나다. 청년들도 이를 지적했는데, 특히 장애인의 이동 편의성이 현저히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재석(노원구ㆍ21) 청년은 “시각장애인 전용 택시는 장애인들의 이동 편의성을 높이는 수단인데, 차량 수가 너무 부족하다”면서 ‘서울시 생활이동지원센터 내 시각장애인 전용 택시 확충 방안’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흥미롭게도 두 후보 모두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짚었다. 박 후보는 2025년까지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겠다고 약속했고, 오 후보는 장애인 보행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버스요금을 무료화하는 등 교통비 부담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동권을 제외한 장애인 정책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오 후보는 앞서 언급한 것 외에는 별다른 정책이 없었고, 박영선 후보는 ‘장애인 탈시설 권리’ ‘재난상황에서의 건강권’ 등 코로나19로 부각된 의료체계 문제를 짚는 데 그쳤다.

[※참고 : 이재석 청년은 2급 시각장애인이다. 그래서 이 청년의 바람은 두 후보가 귀 기울일 만하다. 그는 ▲장애인 안내견 입장 거부하는 사업장 제재 강화 ▲장애인 인식 개선 프로그램 확대 ▲영화관 배리어프리 쿼터제 도입 등을 제안하며 일상ㆍ문화생활의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울시장 보선에 출사표를 던진 두 후보의 공약과 청년이 생각하는 바람을 비교해봤다. 물론 청년의 바람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정책으로 만들기엔 지협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후보가 ‘시민을 위해’ 시장이 되겠다고 나섰다면 반드시 귀를 기울이고, 그 장단점을 따져봐야 한다. 우리에겐 그런 후보가 필요하고, 그런 이가 시장에 당선돼야 한다. 청년의 바람을 경청하는 건 이제 박영선, 오세훈 두명의 몫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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