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연계책 되레 역효과
소상공인 자생력 키워줄 정책 필요

2020년 기준 제로페이 누적 결제액 1조1529억원, 누적 가맹점 72만9000개. 4월 말,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은 지난 2년여간의 사업 성과를 자신만만하게 발표했다. 사람들은 ‘제로페이 결제액이 벌써 1조원을 넘었나’란 반응을 보였지만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이를 토대로 가맹점 1개의 실적을 분석해보면, 하루 결제액은 2137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와 서울시가 352억원의 예산을 제로페이 사업에 쏟아부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 역시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제로페이는 왜 실적이 나지 않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제로페이의 문제점을 현장에서 확인해 봤다.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제로페이의 취지가 어긋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제로페이의 취지가 어긋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언젠가부터 ‘제로페이’가 화두가 됐고, 언젠가부터 또 사라졌다. 지난해 이맘때 1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됐을 때 제로페이는 핫이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샌가 제로페이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실적이 괜찮다는 이야기만 떠돌았다. 350여억원을 들인 제로페이는 과연 상인과 소비자에게 유용한 지불도구가 됐을까.

완연한 봄기운이 내려앉았던 지난 4월 26일 오후,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우림시장을 찾았다. 제로페이를 둘러싼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서였다. 기자가 이날 방문한 우림시장은 1970년부터 형성돼 온 골목형 전통시장이다. 약 300m 골목에 180여개 작은 점포들이 오밀조밀 늘어서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열지 않은 점포가 이 빠진 듯 눈에 띄긴 했지만 소상공인 대부분은 어제까지 힘겹게 지켜온 자리에 오늘도 변함없이 앉아 있었다.

평일 오후의 전통시장은 한가로웠다. 중랑구에서 연일 10명 안팎의 확진자가 발생할 정도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아 유동인구는 많지 않았다. 간간이 들리는 호객 소리를 들으며 시장 중앙통로를 걷던 중 한 정육점 앞에서 발을 멈췄다.

저녁에 구워 먹을 삼겹살을 사러 왔다는 중년부부는 아들뻘 되는 점원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점포 입구에 제로페이 가맹점 스티커가 붙어 있고, 카운터 옆에 제로페이 QR코드도 있었지만 중년부부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신용카드를 꺼내 삼겹살 가격을 지불했다.


손님이 떠난 후 정육점 점원 이성수(가명)씨에게 “제로페이로 결제하는 손님이 하루에 몇명이나 있느냐”고 물었다. “많지 않아요. 하루 매출의 10%도 되지 않을 걸요. 주로 30~40대 손님들이 제로페이로 결제를 하는데, 어르신들은 아무래도 사용을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전문가들은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것보다 소상공인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것보다 소상공인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걸음을 옮겨 이번엔 스마트폰을 세워놓고 동영상을 보고 있던 한 상인에게 말을 건넸다. 수년째 우림시장에서 참기름집을 하고 있다는 김윤섭(가명)씨 역시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손님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처음엔 상인회에 동장까지 나서서 제로페이 가맹점에 가입하라고 독려했어요. 그런데 가입하면 뭐해요. 명절 때나 제로페이 사용 장려기간에나 반짝하고 마는걸요. 평일엔 거의 없어요. 대신 상품권 손님은 더러 있어요. 공무원들이 상품권을 많이 들고 오더라고요.”

시장상인회와 지자체의 노력 덕에 우림시장에서 제로페이 가맹점 스티커를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점포 출입문은 물론 진열대, 점포와 점포 사이의 기둥에도 제로페이 가맹점 가입을 알리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하지만 상인들은 “제로페이로 인한 실제 혜택은 많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왜일까.

제로페이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역점사업이었다. 2018년 서울시장 3선 도전에 나선 박 시장은 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면서 ‘서울페이’ 공약을 내세웠다. 3선에 성공한 후 정부가 이 정책을 전국 단위로 추진하기로 하면서 ‘제로페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2018년 12월 20일 서울시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제로페이는 이듬해 5월 전국 5대 편의점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9월엔 제로페이 안에 지역사랑상품권과 모바일온누리상품권을 끌어들였다. 11월엔 제로페이가 민간에 이양되며 재단법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이하 한결원)이 출범했다.

제로페이 시스템은 이렇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에 깔린 제로페이 앱을 열어 매장 안에 있는 제로페이 QR코드를 인식해 결제 금액을 등록하면 된다. 그러면 내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금액이 이체된다. 제로페이는 소비자보다 소상공인을 위한 제도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인 소상공인이 제로페이 가맹점에 가입하면 전년도 매출이 8억원 이하일 경우 결제수수료가 0%다. 매출이 8억~12억원 이하면 0.3% 수수료, 12억원을 초과해도 0.5%의 수수료만 내면 된다. 소비자들이 신용카드 대신 제로페이를 이용해 결제하면 소상공인들이 내야 할 수수료를 그만큼 덜어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이 ‘착한 시스템’을 정작 소상공인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걸까. 우림시장 방문 이튿날 제로페이를 운영하고 있는 한결원이 발표한 제로페이의 성과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4월 27일 한결원은 “제로페이 누적 결제액이 지난해 11월 1조원을 돌파했고, 가맹점은 올 4월 85만개를 넘어섰다”며 “지금까지의 제로페이(1.0)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단계였다면 앞으로의 제로페이(2.0)는 구축된 인프라를 활용하는 단계가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한결원은 “새롭게 도약하는 제로페이 2.0의 ‘세계 최고의 간편결제 인프라 구축’이라는 미션을 위해 ‘가맹점 집중’ ‘소상공인 이익 지향’ ‘자율적인 사업 참여’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여기까진 그럴듯하다. 문제는 숫자에서 드러난 제로페이의 민낯이다. 이날 한결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제로페이 누적 결제액은 1조1529억원, 누적 가맹점 수는 72만9000개에 이른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가맹점 1개당 평균 제로페이 누적 결제액은 158만1481원에 불과하다. 제로페이가 2018년 12월 20일에 시작된 걸 감안하면 가맹점 1개당 평균 제로페이 결제액은 하루 2137원에 머무른다. 1조1529억원이란 거대한 전체 숫자에 가려진 초라한 성적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전통시장 상인들은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제로페이의 본래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 제로페이의 목적은 소상공인이 지급해야 할 수수료를 절감해주는 거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직불결제를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 입장에선 큰 혜택이 없어 직불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성이 적다.[※참고: 소비자가 제로페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건 아니다. 연말정산 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서울대공원, 서울식물원 등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최대 3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본요금(성인 기준) 자체가 5000~6000원으로 비싸지 않은 데다가 민간 시설을 이용할 때 제휴카드로 약 60%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체감효과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한계 탓에 제로페이 실적이 신통치 않다는 걸 알아챈 정부와 서울시가 2019년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모바일상품권을 10%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연계 서비스를 제로페이에 덧붙였다. 가령, 제로페이를 사용하면 10만원 상품권을 9만원에 구매할 수 있도록 유인해 제로페이 실적을 끌어올리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이 정책은 ‘엉뚱한 효과’만 불러일으켰다. 10%라는 직접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 소비자는 제로페이로 수수료와는 무관한 상품권을 주로 사들였다. 당연히 제로페이의 표면적 실적은 개선됐지만 소상공인에겐 별다른 혜택이 가지 않았다. 이는 제로페이 결제 비중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제로페이 결제 비중에 따르면 직불결제 서비스는 전체 결제액의 15.4%에 불과했다. 

반면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모바일상품권은 각각 73.7%, 10.9%를 차지했다.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는 직불결제 결제보다 수수료와 상관없는 상품권 결제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는 거다. 소상공인을 돕겠다며 시작한 제로페이 사업의 효과가 소상공인들의 피부에 닿지 않는 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소상공인을 돕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현배 서강대(경제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소상공인을 도울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필요한 건 소상공인들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거다. 제로페이는 경쟁력과 상관없이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거다. 소상공인 돕기 위해 정부 재정만 쏟아붓는 게 과연 최선의 답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제로페이 손님 안 반갑다’고 손을 내젓던 어느 소상공인의 목소리에 누군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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