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 배터리 내재화
배터리 업계는 낙관론
문제는 점유율 잠식하는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배터리 제조사들은 느긋한 모습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기술력을 쉽게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란 판단에서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 어차피 배터리 공급이 부족할 텐데 뭐가 걱정이냐는 말도 나온다. 문제는 중국 배터리 업체의 기세가 워낙 뜨겁고, 미국이나 일본의 차세대 배터리 개발 작업도 심상치 않다는 거다. K-배터리의 경쟁상대는 완성차가 아니라 기술력일지 모른다. 

올해 1분기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시장점유율이 가파르게 증가했다.[사진=뉴시스]
올해 1분기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시장점유율이 가파르게 증가했다.[사진=뉴시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내재화)는 의지를 속속 밝히고 있다. 테슬라와 폭스바겐에 이어 최근엔 현대차도 가세했다. 현대차는 지난 4월 22일 열린 1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중장기 EV(전기차)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김태연 EV사업전략실장(상무)은 “2025년까지 12종 이상의 전기차를 선보이고, 라인업을 다변화할 계획”이라면서 “현재의 리튬이온배터리 셀 에너지 밀도를 개선하고 차세대 배터리를 도입해 EV 항속거리를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차세대 배터리 개발 계획도 밝혔다. 그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는 물론 해외업체들과 협업해 차급·용도별 성능과 가격이 최적화된 배터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셀 품질 강화 ▲충전·주차 중 배터리시스템 모니터링 및 진단기능 도입 ▲배터리 손상 방지 위한 설계 강화 등을 통해 품질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배터리 제조사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긴 했지만, 테슬라나 폭스바겐의 내재화 선언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 역시 자체 배터리 개발 전까지는 배터리 제조사들의 손을 놓을 수는 없어서다. 

더구나 현대차가 개발하겠다고 나선 ‘차세대 배터리’는 전고체 배터리다. 현대차는 콘퍼런스콜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2025년 시범 양산하고, 2030년에 본격 양산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이온배터리보다 고열과 외부 충격에 강하다. 

당연히 배터리 안정성을 위한 추가 부품이 적게 들어 원가와 부피를 줄일 수 있다. 특히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온배터리보다 높기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자율주행차에도 유용하다.[※참고: 현재 국내 3사가 기술력과 노하우를 인정받는 분야는 리튬이온배터리다.]

이런 분위기는 배터리 제조사들에는 악재다.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면 그만큼 시장 파이가 줄어들 수 있어서다. 하지만 배터리 제조사들의 표정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개발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오랫동안 배터리 연구에 집중해온 배터리 제조사들의 기술 수준을 단번에 뛰어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배터리 양산을 위한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양산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다. 일정 기간 배터리 제조사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현대차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현대차가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전고체 배터리는 기술적 난제가 숱하다. 업계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가 일러야 4~5년은 지나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배터리 제조사들이 기술적으로만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에는 가격경쟁력까지 갖출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제조사들이 제조 단가를 낮추려 소재 내재화를 통한 배터리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꾀하고 있어서다. 배터리 제조사들이 완성차 업계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에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지난 4월 27일 삼성SDI 콘퍼런스콜에서 김종성 삼성SDI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테슬라나 폭스바겐이 배터리 내재화를 얘기하는 건 배터리의 안정적인 수급이 중요하고, 수요가 늘어난다는 걸 의미다. 하지만 배터리는 오랜 기술 개발과 양산 역량, 노하우가 종합적으로 필요해 내재화에는 상당한 시행착오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음날인 28일 열린 LG화학 콘퍼런스콜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왔다. 이날 장승세 LG에너지솔루션 경영전략총괄 전무는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 전략을 밝히면서 중장기적으로 폭스바겐에 납품하는 물량은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완성차 업체가 전체 EV 물량을 내재화하기는 어렵고, 위험(안정적인 배터리 수급 등) 분산을 위해서라도 배터리 선두업체와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K-배터리’의 미래도 괜찮은 걸까.[※참고: ‘K-배터리’는 문재인 정부가 국내 배터리 산업을 핵심 국가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면서 명명한 것인데, 통상적으로 국내 배터리 제조 3사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의 배터리 산업(특히 전기차 배터리)을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왜일까. 통계 하나를 보자. 현재 세계 전기차 시장은 판매량 기준으로 유럽(42.9%)과 중국(41.4%)이 양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자국 전기차 산업과 배터리 산업을 키우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안정적인 시장을 발판으로 갖고 있다는 거다. 

지난해 배터리 제조사의 국적별 판매 비중을 살펴보면 중국 업체들이 37.5%(SNE리서치 기준)로 가장 높았다. 다음이 한국(34.7%)과 일본(19.9%)이었다. 2030년에 전기차 시장이 20배나 커져 배터리의 수요가 넘치더라도 그 물량이 국내 배터리 3사에 올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셈이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에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사진=뉴시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에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사진=뉴시스]

실제로 올해 1분기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의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31.5%로 국내 배터리 3사(31.0%)의 점유율 합계보다도 높았다. 그만큼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는 거다. 게다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에서 출시할 전기차에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K-배터리의 문제는 또 있다. 미래 시장의 일정 부분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차세대 배터리의 향방과 궤를 함께하는 우려다. 현재 국내 배터리 제조3사가 가진 기술력과 노하우는 리튬이온배터리에 집중돼 있다. 일본도 리튬이온배터리 위주다. 중국은 리튬인산철배터리로 승부를 걸고 있다.[※참고: 세 나라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차세대 배터리는 앞서 언급한 ‘전고체 배터리’인데, 이 분야는 우리나라보단 미국이나 일본의 발걸음이 빠르다. 유럽 특허청(EPO)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 국제 특허 국가별 비중은 일본이 54.0%로 가장 크다. 미국이 18.0%로 2위이고, 한국은 12.0%로 3위다. 특히 일본의 도요타는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1000여개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은 200여개의 전고체 배터리 특허를 가진 미국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제조 3사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지만, 미국·일본처럼 구체적인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리튬이온배터리 분야의 강자란 평가를 받고 있는 국내 배터리 제조 3사가 미래시장까지 거머쥘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유다. K-배터리는 과연 괜찮은 걸까. 경쟁국은 미래를 만들고 있고, 우린 현재에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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