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 배터리 내재화
현대차그룹도 내재화 할까
돈도 기술도 없으니 씁쓸

“현대차는?” 테슬라에 이어 최근 폭스바겐까지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하자, 현대차의 행보에 시장의 눈이 쏠린다. 현대차도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내재화를 통해 얻는 이익이 적지 않아서다. 하지만 배터리를 내재화하는 건 그렇게 쉬운 과제가 아니다. 

배터리 내재화가 자동차 업계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현대차그룹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배터리 내재화가 자동차 업계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현대차그룹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테슬라와 폭스바겐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의 테슬라는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과거의 폭스바겐은 내연기관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새 시대를 개척한 두 기업에는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테슬라에 이어 폭스바겐도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같은 목표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참고 : 자동차 전문가들은 이를 ‘배터리의 내재화’란 표현을 쓴다.]

자동차 업체들이 배터리 내재화 전략을 펼치는 덴 이유가 있다. 우선 배터리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라는 점에서 부품의 수급 안정성을 기할 수 있다. 전기차 생산 계획을 유연하게 짤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참고 : 사실 배터리 내재화 전략의 핵심은 가격이다. 전기차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내연기관차 못지않은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전기차 가격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생산 공정 개선을 통해, 폭스바겐은 특정 유형의 배터리를 선택해 가격을 낮출 심산이다. 이들이 배터리를 개발하는 동안 배터리 제조사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가능성도 있다. 제조 원가를 알 수 있어서다.

배터리 내재화는 테슬라ㆍ폭스바겐 두 기업만의 이슈가 아니다. GM은 2019년 12월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과 절반씩 지분을 출자해 미국 현지에 합작법인을 세우고, 2022년 가동을 목표로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그러자 일부에선 “현대차그룹도 배터리를 자체 생산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현대차그룹의 최대 과제 역시 전기차 가격을 낮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보조금을 받아 단가를 낮추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일례로 올해 전기차 판매량이 늘면서 일부 지자체가 지급하는 전기차 보조금 예산이 예상보다 빨리 소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완성차 업체로선 제품을 빨리 만들어 판매해야 하는데, 보조금이 없어 판매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다. 결국 보조금 액수에 따라 한해 전기차 생산량과 판매량을 결정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가격경쟁력도 갖춰야 한다. 2021년식 기준 현대차 아이오닉5의 공식 가격은 5200만~5700만원이다. 경쟁 모델인 테슬라 모델3는 5479만~7479만원이다. 최저가 기준으로 보면 고작 279만원 차이다.

게다가 테슬라 모델3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검증을 받았지만, 아이오닉5는 구체적인 재원조차 나와 있지 않다. 이 때문인지 아이오닉5가 사전예약에서 흥행을 거뒀음에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내재화 가능성이 나오는 건 이처럼 필요성이 있어서다. 물론 현대차의 행보는 정중동이다. 배터리 제조사들과 각을 세우는 것보단 협력을 중시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배터리 3사(LG화학ㆍ삼성SDIㆍSK이노베이션)의 생산현장을 모두 방문했고, 각 그룹 총수들과도 회동했다. 정 회장은 세계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배터리 제조사들과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기술 수준을 보유한 배터리 제조사가 한곳도 아니고 3곳이나 국내에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일부에선 “현대차그룹도 배터리 내재화 전략을 취하고 싶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당분간은 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배터리 내재화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일 뿐,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그 현실적인 어려움이란 뭘까. 가장 큰 건 돈 문제다.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려면 기술 개발과 생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10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공장을 지을 때 약 3조원이 필요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배터리 3사를 차례로 방문해 협력을 강조했다.[사진=뉴시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배터리 3사를 차례로 방문해 협력을 강조했다.[사진=뉴시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 현대차의 현금(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은 5조7634억원, 기아차는 7조2408억원이다. 이를 모두 합치면 13조여원이다. 40GWh 생산공장 1곳을 만들 수 있다는 건데, 이는 테슬라 모델3 8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에 불과하다.

현대차그룹이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쳐 2025년까지 100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판매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배터리 생산량이 너무 적다. 현대차그룹이 2014년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10조원에 매입한 일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동산 대신 미래에 투자할 힘을 남겨놨으면 어땠을까란 아쉬움에서다. 

또한 설비투자를 하고도 양산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 수율이 안 나올 수도 있어서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2016년 폴란드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완공하고도 수년간 생산을 못했다. 수율이 안 나왔기 때문인데, 결국 2020년에야 정상적인 수율을 맞춰 가동을 시작했다.

적은 규모의 배터리 양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문제다.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하면 국내 배터리 3사와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 고민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내재화를 하는 동안 국내 배터리 3사가 기술 격차를 더 크게 벌려 놓는다면 가격 협상에서 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사실 이 문제는 현대차에만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완성차 업체도 같은 고민에 빠져 있다. 전기차가 대중화하면 배터리 내재화만큼 중요한 이슈가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 생산에 시동 걸까 말까.” 현대차와 정의선 회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무언가 결정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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