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할 바람 부는 배터리 업계
삼성SDI 이유 있는 ‘조용한 행보’
기술력·계열사 시너지 효과 기대
완성차 기업 협력 등 과제도 숱해

올여름 SK이노베이션이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차세대 자동차 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른 배터리 사업을 분할하기로 결정해서다. 지난해 열풍과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던 LG에너지솔루션과 판박이 행보다. 그런데 시장을 들썩이게 하는 ‘라이벌’의 행보에도 유독 조용한 곳이 있다. 바로 삼성SDI다. 과연 삼성SDI는 소리 없이 강한 걸까, 강하지 않아서 소리가 없는 걸까.

삼성SDI가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숱한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삼성SDI가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숱한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LG화학은 배터리 사업부를 떼어내 자회사(LG에너지솔루션ㆍ이하 LG엔솔)를 설립했다. 올 10월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업체를 출범할 예정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 ‘기업분할’ 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분할을 통해 다른 사업에 가려졌던 배터리 사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이런 분할 열풍 속에서 유독 조용한 곳이 있다. 국내 3대 배터리 제조사 중 하나인 삼성SDI다. 당연히 시장 관계자들은 삼성SDI를 향해 의문을 던진다. 배터리 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데, 태평하게 관망하고 있어도 괜찮냐는 거다. 

이런 의문에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삼성SDI는 2009년, 2014년 두차례에 걸쳐 기존의 디스플레이 사업을 털어내고 배터리 중심 기업으로 전환했다. 이후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고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에 전념했다. 지금은 그동안의 작업이 빛을 발할 시점이다.”  


실제로 삼성SDI의 실적은 시장의 기대치를 웃돌고 있다. 올해 2분기 삼성SDI는 매출 3조3343억원, 영업이익 2952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최대 실적을 거뒀다. 삼성SDI의 약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올 하반기 차세대 배터리(일명 젠5)의 출시를 앞두고 있어서다. 이 제품은 삼성SDI의 독자적인 소재 배합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성과 안전성을 극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배터리 소재의 내재화 작업도 한발 앞서가고 있다. 배터리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직접 생산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생산 비용은 절감하고 배터리 공급의 효율성은 높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SDI는 올 하반기 차세대 배터리 젠5를 출시할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삼성SDI는 올 하반기 차세대 배터리 젠5를 출시할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이를 발판으로 삼성전자와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삼성SDI의 미래성장동력 중 하나다. 향후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전장부품 ▲통신기술에 최적화한 배터리를 개발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편에서 “삼성SDI가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배터리 시장에서 삼성SDI가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숱하다. 무엇보다 미국 내 현지 공장을 설립해야 한다. 삼성SDI는 그동안 비용 절감을 이유로 국내 생산을 고집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부품의 50% 이상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기로 하면서 현지 공장 설립이 배터리 사업의 ‘필수요건’으로 떠올랐다. 2012년 미국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한 LG엔솔, 올초부터 조지아주에 공장을 건립 중인 SK이노베이션에 비하면 삼성SDI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삼성SDI 풀어야 할 숙제 산더미

시급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선 완성차 기업과의 합작사 운영이 필요한데, 삼성SDI는 경쟁사에 뒤처져 있다. LG엔솔과 SK이노베이션이 각각 제네럴모터스(GM), 포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합작법인을 세운 것과 달리 삼성SDI의 파트너는 ‘부재’ 상태다.

미국의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가 유력한 파트너 후보로 꼽히고 있지만 구체적인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경쟁사들이 공격적으로 해외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사이 삼성SDI로선 결정적인 투자 타이밍을 번번이 놓친 셈이다.  

이런 빈틈을 후발주자 SK이노베이션이 파고들고 있다는 점도 삼성SDI엔 위험요인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05년 하이브리드 전기차용 배터리 연구를 시작하며 배터리 사업의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일찌감치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을 시작한 선발주자(LG엔솔ㆍ삼성SDI)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상황이 바뀐 건 SK이노베이션이 2010년대 들어 배터리 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시작하면서다. 그 결과,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삼성SDI와의 점유율 격차를 2019년 2.3%포인트(삼성SDI 4.4%ㆍSK이노베이션 2.1%)에서 2020년 0.5%포인트(삼성SDI 8.2%ㆍSK이노베이션 7.7%)로 좁히는 데 성공했다. 

삼성SDI 배터리 시장 승기 잡을까 

그렇다고 국내 1위 배터리 제조사 LG엔솔이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회사는 다양한 고객사를 유치해 압도적인 공급량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데, 올해 7월까지 LG엔솔이 공급한 배터리 에너지 총량은 5.7GWh (기가와트시)로 중국의 CATL을 제치고 전세계 1위를 차지했다. 

김필수 교수는 “현시점에서 배터리 업계의 선결과제는 최대한 많은 고객사를 확보하는 동시에 그만한 물량을 공급할 수 있도록 ‘외형’을 키우는 일”이라며 “배터리 공급 생태계를 먼저 갖추는 제조사가 향후 ‘배터리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삼성SDI가 독자 기술력만으로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과연 삼성SDI는 숱한 난제와 변수를 뚫고 배터리 시장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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