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슈퍼 육성책 성적표
나들가게 사업 10년 만에 중단
중기부, 스마트슈퍼 추진 나서
동네슈퍼 육성책 왜 효과 없나

동네슈퍼와 대형 유통사의 경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정부가 동네슈퍼 지원책을 펼치는 이유다. 그렇다고 동네슈퍼 지원책이 무수히 많은 것도 아니다. 2010년 내놓은 ‘나들가게’ 사업 정도가 전부였다. 문제는 10년 간 1000억원대 예산을 쏟아부은 이 사업의 성과가 미미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나들가게를 접고 ‘스마트슈퍼’ 사업을 새로 전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마트슈퍼의 미래도 밝은 것만은 아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동네슈퍼 육성책의 성적을 분석해 봤다. 

정부가 동네슈퍼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0년 시작한 나들가게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동네슈퍼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0년 시작한 나들가게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사진=연합뉴스]

동네슈퍼가 몰락하기 시작한 건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대형마트가 속속 들어섰다. 이어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골목을 파고들었다. 15만개에 달하던 동네슈퍼는 생존을 위협받기 시작했다. 영세한 동네슈퍼가 대기업 유통업체에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두손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정부는 동네슈퍼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2010년 ‘나들가게’ 정책을 내놨다. 동네슈퍼의 대표적 문제점으로 꼽힌 ‘영세성’ ‘낮은 가격 경쟁력’ ‘낙후된 시설’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참고: 나들가게 사업 대상은 당초 규모 300㎡(약 90평) 이하 동네슈퍼에서 2015년 165㎡(약 49평) 이하로 변경됐다.]

실제로 나들가게 사업은 ▲간판 교체ㆍ시설 개선 지원 ▲실시간재고관리시스템(POS) 설치 ▲점포개발 컨설팅 지원 ▲공동구매 통한 가격 경쟁력 제고 등을 골자로 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던 동네슈퍼들이 반응했고, 나들가게는 사업 1년여만에 2000여개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들가게 사업은 잠정 중단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사업 실효성 제고’ 등을 이유로 지난해 12월부터 신규 개점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 10년간(2010~2020년) 1134억원에 달하는 정책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사실상 실패한 사업이 된 셈이다.

실제로 나들가게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나들가게(POS기기 사용하는 3801개 점포 대상)의 2019년 월평균 매출액은 2341만원으로 2016년(2617만원) 대비 10.5% 감소했다. 폐업ㆍ취소율은 35.7%(2020년 8월 기준)에 달했다. 폐업의 가장 큰 이유가 ‘일반 슈퍼 전환(30.3%)’ ‘편의점 전환(24.0%)’이란 점을 감안하면 나들가게가 동네슈퍼의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막대한 자금을 들인 나들가게 사업은 왜 실패했을까. 무엇보다 ‘한발 늦은’ 정책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나들가게 사업이 본격화한 2010년 이미 대형마트는 450여개, SSM은 930여개에 달했기 때문이다. 유통공룡이 출점을 마친 상태에서 ‘사후약방문’ 정책을 펼친 셈이다.[※참고: 지난해 대형마트 점포 수는 402개로 2010년(450여개)보다 되레 적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무인 슈퍼’를 표방한 ‘스마트 슈퍼’를 연간 800개씩 확대할 방침이다.[사진=연합뉴스]
중소벤처기업부는 ‘무인 슈퍼’를 표방한 ‘스마트 슈퍼’를 연간 800개씩 확대할 방침이다.[사진=연합뉴스]

제품 공동구매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도 먹히지 않았다. 나들가게를 위한 중소유통공동도매물류센터를 운영했지만 상인들의 이용률은 저조했다. 물류센터의 배송시스템이 취약하고, 기존 도매상 대비 가격 경쟁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턴 지자체에 책임을 맡겨 ‘나들가게 육성 선도지역 지원사업(3년 단위)’을 펼쳤지만 역시 효과를 내진 못했다.

나들가게를 운영해온 김난주(가명ㆍ66)씨는 “3년 전 나들가게 지원을 받아 점포 환경이 개선됐지만 그뿐이었다”면서 “매출엔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은 만들어내지 못한 채 사업 중단 수순을 밟게 된 셈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측은 “나들가게 사업을 중단한 것은 맞지만 나들가게뿐만 아니라 전체 동네슈퍼(165㎡ 이하 기준)를 대상으로 한 ‘스마트슈퍼’ 사업을 폭넓게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들가게 사업이 실패한 게 아니라 스마트슈퍼 사업으로 전환했다는 거다.[※참고: 스마트슈퍼는 낮에는 ‘유인’, 심야에는 ‘무인’으로 운영되는 점포다. 출입인증장치ㆍ무인계산대ㆍ보안장비 설치에 정부와 지자체가 700만원 이상(점포당) 지원한다.] 중기부는 스마트점포 전환을 통해 동네슈퍼의 심야 매출 증가·점주의 노동 강도 완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스마트슈퍼는 나들가게와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현재로선 긍정적 시그널이 많다. 무엇보다 지난해 9월부터 스마트슈퍼 시범사업을 실시한 1호점(형제슈퍼ㆍ서울시 동작구)의 매출이 증가했다. 이 점포는 스마트슈퍼 전환 후(2020년 8월 대비 2020년 10월) 일매출이 36.5%, 심야매출이 71.7% 증가했다. 중기부는 여세를 몰아 스마트슈퍼를 올해 800개, 2025년 4000개로 확대할 방침을 세웠다.

그렇다고 장밋빛 미래를 기대해선 안 된다. 나들가게도 사업 초반 지표는 긍정적이었다. 나들가게 사업 6개월 만인 2010년 11월 경기 의왕마트와 경남 나들가게 삼방점은 각각 250%(50만원→175만원), 220%(50만원→160만원)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중기부가 반짝 성과에 취하지 말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등포구에서 동네슈퍼를 운영하는 김형선(가명ㆍ61)씨는 이렇게 말했다. “스마트슈퍼 전환을 제안받았지만, 근처 무인가게들이 도난 사고로 두곳이나 문을 닫은 걸 보면 불안한 마음이 크다. 스마트슈퍼라는 시도도 좋지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편의점을 막지 못하는데 얼마나 큰 성과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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