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유통 풀필먼트 구축 시범사업
플랫폼·배송 시스템 구상 없어…
동네슈퍼 온라인 배송 가능할까

‘온라인 배달’이 대세다. 백화점, 마트, 편의점까지 온라인 시장에서 ‘배달전쟁’을 벌인다. 이런 트렌드에서 빠져 있는 건 동네슈퍼다. 그래서인지 산업통상자원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동네슈퍼도 온라인으로 배송할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이를테면 ‘중소유통 풀필먼트 구축 시범사업’인데, 핵심이 빠져있다. 동네슈퍼를 ‘온라인화’하겠다면서 온라인 플랫폼과 배달 시스템에 대한 구상은 없다. 마치 팥소 없는 찐빵 같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동네슈퍼 온라인 배송 시범사업의 허점을 짚어봤다. 

산업부가 동네슈퍼 등 중소유통사도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도록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사진은 농협 풀필먼트 센터.[사진=뉴시스]
산업부가 동네슈퍼 등 중소유통사도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도록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사진은 농협 풀필먼트 센터.[사진=뉴시스]

“동네슈퍼도 온라인으로 주문” “주문하면 동네슈퍼에서 5분 내 배송”…. 최근 수년간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성장했다. 로켓배송, 샛별배송, 번쩍배송 등 차별화한 온라인 배송 서비스도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동네슈퍼만은 ‘오프라인 세상’을 벗어나지 못했고, 시장에서 조금씩 밀려났다. 

이런 동네슈퍼들도 온라인으로 제품을 배송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거란 전망이 나온다. 산업부가 7월부터 본격화하는 ‘중소유통 풀필먼트(fulfillment) 구축 시범사업’을 통해서다.[※참고: 중소유통 풀필먼트 구축 시범사업은 정부가 지난 3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비대면·온라인화 대응을 위한 디지털 유통 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이다.] 

이 사업은 동네슈퍼들이 이용하는 전국의 ‘중소유통공동도매물류센터(이하 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를 쿠팡이나 마켓컬리(컬리)의 물류센터처럼 ‘풀필먼트화’하겠다는 거다. 기존 물류센터가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보관ㆍ판매하는 기능만 했다면 앞으론 상품의 입고, 재고관리, 출고, 배송까지 아우르겠다는 거다.[※참고: 풀필먼트(fulfillment)는 주문한 상품이 물류창고를 거쳐 고객에게 배달 완료되기까지의 전 과정(판매 상품의 입고ㆍ보관ㆍ제품ㆍ선별ㆍ포장ㆍ배송ㆍ교환ㆍ환불 등)을 일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물류센터가 풀필먼트 센터로 전환하면 동네슈퍼 상품을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풀필먼트 센터나 동네슈퍼에서 빠르게 배송해주는 시대가 열린다는 게 산업부의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6월 중 사업을 수행할 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를 2곳 선정할 방침이다.[※참고: 사업 기간은 2023년까지 총 2년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6대 4 비율로 자금(2021년 정부자금 기준 총 35억4000만원)을 지원한다. 사업 대상은 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와 해당 지자체가 구성한 컨소시엄이다.] 

그렇다면 풀필먼트 센터만 구축하면 온라인으로 배달을 척척 해내는 동네슈퍼를 만날 수 있는 걸까.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다. 무엇보다 이 사업의 방점은 ‘온라인 배송’이 아니라 ‘데이터화’에 찍혀 있다. 산업부 측의 설명을 들어보자. “올 하반기부터 상품 정보, 물류 정보(입ㆍ출고, 위치) 등을 데이터화할 방침이다.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한 다음, 온라인 쇼핑 사이트와 연계해 동네슈퍼 상품을 판매하고 소비자에게 빠르게 배송해주는 게 목표다.” 

하지만 상품·물류 정보를 데이터로 빠르게 전환하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산업부 시범사업의 범주에 동네슈퍼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이나 ‘배달 시스템’이 없어서다. 동네슈퍼 상품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배송할지 구체적인 모델을 마련해 놓지 않았단 거다. 자! 지금부터 이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플랫폼 부재 = 먼저 플랫폼 문제다. 산업부는 동네슈퍼를 위한 별도의 온라인 사이트나 플랫폼을 마련할 계획이 없다. 현재로선 기존의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 동네슈퍼가 입점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럴 경우 동네슈퍼가 제조사나 대형 유통업체와 직접 경쟁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제품을 갖췄거나 가격 경쟁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동네슈퍼는 대형 유통업체와 경쟁할 만한 브랜드 파워가 없다”면서 “얼마나 차별화한 상품을 판매하느냐가 관건이 될 텐데, 동네슈퍼들이 그걸 해낼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사실 산업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는 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외부 사이트에 입점할 경우 제품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게 사실이다”면서 “궁극적으론 해당 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와 지자체가 PB(Private Brand)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업 기간은 고작 2년이다. 이 짧은 시간에 동네슈퍼가 PB 상품을 만들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중소유통 풀필먼트 구축 시범사업이 오는 7월 추진된다.[사진=연합뉴스]
중소유통 풀필먼트 구축 시범사업이 오는 7월 추진된다.[사진=연합뉴스]

■배달 시스템 부재 = 이 사업의 두번째 문제는 ‘배달 시스템’이다. 산업부는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풀필먼트 센터나 동네슈퍼에서 처리해 배달기사를 통해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방식을 ‘모델’로 제시했다. 문제는 배달 대행업체를 적절히 활용하더라도 영세한 동네슈퍼들이 건당 2000~3000원에 달하는 배달기사 수수료를 감당할 수 있느냐다. 

비슷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B마트(배달의민족 운영)’의 사례를 들어보자. B마트는 배달앱 상에서 식료품·공산품 등을 주문할 경우 1시간 내에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당초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로 배송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수익성’ 문제를 풀지 못해 난항을 겪었다. 어쩔 수 없이 B마트는 지난해 3월 무료배송 기준을 종전 2만원에서 3만원으로 인상했다. 

배달앱 1위 업체인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B마트마저 부담스러워하는 수수료를 동네슈퍼가 감당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송상화 인천대(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물류(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유통’할 것인지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선 각계 전문가와 정부 부처, 민간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이 문제를 간단히 여기는 듯하다.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사업에 선정되는 컨소시엄이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산업부 측은 “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와 지자체가 구성한 컨소시엄이 플랫폼 및 배송 시스템 등을 구상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다”면서 “산업부는 이를 면밀히 검토해 사업 대상을 선정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규모 슈퍼조합이 운영하는 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가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혹여 이들이 신박한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동네슈퍼가 온라인 시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네슈퍼가 온라인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기존의 업체들도 진화할 게 뻔해서다. 더구나 정부는 동네슈퍼뿐만 아니라 기존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풀필먼트화’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 역시 정부가 3월 발표한 비대면·온라인화 대응을 위한 디지털 유통 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이다. 

한상린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풀필먼트화를 이루기 위해선 지속적인 투자와 관리가 중요하다”면서 “정부 주도로 영세한 중소유통공동물류센터를 지원한다는 건 좋은 의도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또 다른 ‘비효율’을 만들어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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