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굴뚝을 기다리며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부조리극이다. [사진=극단 고래 제공]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부조리극이다. [사진=극단 고래 제공]


굴뚝 위를 걷는 누누와 나나.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어떻게 굴뚝에 올라왔는지 생각한다. 굴뚝 위에서 두 사람은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반가워했다가 춤을 추기도 한다. 똑같이 반복되는 그들의 일상에 몇 사람이 찾아온다. 성자가 될 ‘청소’, 굴뚝을 청소하는 로봇 ‘미소’, 소녀 ‘이소’다. 

극단 고래의 17번째 정기공연 ‘굴뚝을 기다리며’는 20세기 대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연극이다. 베케트의 작품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오지 않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연극은 이 모티브만을 차용해 굴뚝 위 노동자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원작의 인물들은 고도가 누군지, 정말 있는지, 왜 기다리는지 모른 채 습관처럼 고도를 기다리고, 베케트는 이들을 통해 ‘실존한다는 건 무엇인지’ 묻는다. ‘굴뚝을 기다리며’도 마찬가지다. 이미 굴뚝에 올라와 있지만 굴뚝을 기다리는 노동자 나나와 누누를 통해 우리는 ‘살고 있으면서도 삶을 기다리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의 전반에는 관객의 실소를 이끌어내는 언어유희가 배치돼 있다. 그렇지만 마냥 가벼운 유희는 아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현상이나, 고공에서 농성하며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 등 한국 노동의 문제점을 담고 있다.  

‘굴뚝을 기다리며’의 작가이자 연출을 맡은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는 고공 농성자의 삶에 집중한다. 이 대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지자 광화문 광장에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치고 항의한 경험이 있다. 당시 광장에서 만난 유성기업·쌍용차·콜트콜텍·파인텍 등 고공농성을 한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을 계기로 작품을 구상했다. 굴뚝이라는 장소는 최장기 고공 농성자였던 차광호 파인텍지회장을 인터뷰한 뒤 설정했다.

작품은 노동현실만을 고발하지 않는다. 고공 농성자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위태롭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투영하고 있다. 누누와 나나 역은 오찬혁·이요셉이 맡았다. 성자가 된 청소는 박현민, 소녀 이소는 윤새얀, 청소로봇 미소는 김재환이 연기한다. 6월 10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