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라블라 론칭 3년 후

2018년 GS리테일은 H&B스토어 시장에서 13년간 유지해온 ‘왓슨스’ 대신 독자적인 브랜드를 들고 나왔다. 새 브랜드명은 ‘랄라블라(lalavla)’였다. 독특한 이름으로 재탄생한 GS리테일이 1위 사업자인 CJ올리브영을 추격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로부터 3년 후, 시장의 판도는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다. 올리브영의 독주체제는 되레 공고해졌고, 랄라블라 매장은 매해 줄었다. 랄라블라는 왜 꽃을 피우지 못했을까. 

GS리테일의 H&B스토어 랄라블라 매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GS리테일의 H&B스토어 랄라블라 매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2018년 3월, 국내 시장에서 홍콩의 글로벌 H&B(헬스 앤 뷰티) 스토어 ‘왓슨스’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랄라블라(lala vla)’라는 낯선 브랜드가 들어섰다. 2004년부터 A.S왓슨과 함께 해온 GS리테일이 합작사인 ‘왓슨스코리아’의 지분을 전부 인수하고,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에 나선 거였다.

랄라블라는 이름답게 ‘발랄하고 활기찬’ 콘셉트를 택했다. 1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천연·유기농·재활용 등 친환경 상품을 확대하고, 전용 요금제를 만드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매장 수를 300개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로부터 3년, 랄라블라의 야심 찬 행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186개를 기록했던 매장은 론칭 첫해(2018년) 168개로 줄더니, 지금은 114개(6월 14일·홈페이지 기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실적도 부진하다. 2016년 1460억원이었던 매출은 랄라블라로 바뀐 2018년 1728억원을 기록하며 증가했지만, 이듬해(2019년) 1627억원으로 감소했다.

 

영업이익 역시 2018년 –254억원, 2019년 –159억원 등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국내 H&B 시장의 2위 사업자였던 랄라블라의 부진은 결과적으로 1위 CJ올리브영의 독주체제를 공고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았다.[※참고: GS리테일은 2020년부터 H&B부문 실적을 ‘공통 및 기타’에 포함해 별도로 공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랄라블라는 왜 올리브영을 잡지 못했을까. 무엇보다 몸집 차이가 커도 너무 컸다. 1999년 H&B스토어 시장에 진출해 2011년부터 가맹사업을 시작한 올리브영의 매장 수는 랄라블라가 새롭게 론칭했던 2018년에 이미 1000개를 훌쩍 넘겼다(1198개). 당시 매장이 200개에도 미치지 못했던 랄라블라로선 따라잡기 힘든 차이였다. 접근성이 떨어지니 모객集客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랄라블라 론칭 당시 시장 환경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나쁜 변수’로 작용했다. 국내 H&B스토어 시장은 규모에 비해 경쟁업체가 많아 일찌감치 레드오션으로 전락했다. 2018년 랄라블라로 첫선을 보였을 때에도 3위 사업자 롯데쇼핑 ‘롭스’가 매장을 빠르게 늘리며 추격하고 있었다(2018년 기준 랄라블라 168개·롭스 124개).

여기에 신세계는 뷰티 편집숍인 ‘시코르(신세계백화점)’와 H&B스토어 ‘부츠(이마트)’의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2019년에는 글로벌 뷰티 편집숍 ‘세포라’까지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런 구도는 출혈경쟁으로 이어졌고, 랄라블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리 없었다.[※참고: 업황이 어려워진 건 랄라블라만이 아니다. 이마트가 들여온 부츠는 3년 만인 2020년 철수했다. 롯데쇼핑은 2020년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롭스를 마트 사업부에 흡수합병하고, 수익성 개선을 위해 대대적으로 매장을 정리했다. 출혈경쟁의 수혜는 올리브영만 본 셈이다.] 

랄라블라는 뷰티 인플루언서 브랜드와 온라인몰 단독 제휴를 맺는 등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랄라블라는 뷰티 인플루언서 브랜드와 온라인몰 단독 제휴를 맺는 등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난해부터 온라인몰을 통해 뷰티 인플루언서 브랜드와 단독 제휴를 맺으며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GS리테일 측은 “일부 랄라블라 매장에서 GS25의 캐릭터 상품 등을 판매하거나, 랄라블라의 화장품을 GS25에서 판매하는 등 협업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오프라인을 연계(O2O·Online to Offl ine)한 배송서비스가 한발 늦었다는 점도 랄라블라의 패착이었다. 올리브영은 2018년 12월 업계 최초로 온라인몰에서 주문 후 3시간 내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당일배송 서비스 ‘오늘드림’을 도입했다.

2020년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면서 오늘드림 주문 건수는 2019년 대비 12배나 늘어났다. 반면 랄라블라는 매장에서 산 제품을 다른 곳에 보낼 수 있는 택배 서비스를 2018년 3월 가장 먼저 도입했지만, 정작 비대면 소비에 유리한 당일배송은 올리브영보다 한참 늦은 2019년 6월에야 시행했다.

유통전문가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랄라블라는 처음부터 올리브영에 대적할 만한 확연한 차이점을 만들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랄라블라가 나아갈 방향을 이렇게 짚었다. 

“현재 H&B 시장은 과점 구조에 성장성이 정체됐다. 게다가 GS는 최근 젠더 이슈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은 상태다. 랄라블라가 두각을 드러내려면 중성적인 콘셉트로 바꾸거나 회사명을 감추는 식의 전면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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