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지훈 안전관리자
현직 안전관리자의 일침
건설사 눈치 안 봐야 안전 담보
충분한 지위 주고 책임지게 해야

지난 6월 광주광역시에서 해체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 후 속전속결로 건축물관리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법에는 건축물 해체공사의 착공신고 의무화, 상주 감리자 배치 의무화 등이 담겼다. 하지만 A 중견건설사 이지훈(47) 건설·토목 부문 안전관리자는 “그런 규정들을 신설한다고 현장이 안전해질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건설안전관리자로 15년가량 일한 베테랑이다.

건설업은 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두고 있음에도 산업재해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업종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건설업은 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두고 있음에도 산업재해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업종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지난 6월 광주에서 해체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 후 건축물관리법이 개정됐다. 이를 통해 건설현장이 좀 더 안전해질 것 같은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실질적인 안전이 담보될지는 의문이다.”

✚ 건축물관리법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뭔가.
“상주 감리자를 두고, 그 감리자만 열심히 안전을 외친다고 건설현장의 안전이 담보되겠는가. 그렇지 않다. 공사 총책임자부터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안전의식이 몸에 배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건설현장은 아직 안전하지 못하다.”

건설현장의 감리자는 건물이 애초 설계대로 지어지고 있는지(해체도 포함), 건물이 안전하게 지어지고 있는지 등을 관리·감독하는 사람이다. 이런 맥락에서 상주 의무화는 어쩌면 당연한 조치다.

다만 감리자는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안전문제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안전관리자와는 안전에 관한 마인드가 다르다. 감리자는 건물 자체의 안전성에, 안전관리자는 현장 사람들의 안전에 치중하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건설현장에선 설계업체가 대형 시공사의 지시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상주 감리자를 둔다고 안전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당연하다. 일례로 현행법은 건설현장에 안전관리자를 두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번에 개정된 건축물관리법의 상주 감리자 의무화와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건설업은 여전히 산업재해 1위 업종이고, 안전은 담보되지 않고 있다.” 

✚ 건설현장에 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두고 있음에도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우선 안전관리자의 지위에 허점이 있다. 현행법상 건설현장의 전반적인 안전문제는 시공사가 책임을 진다. 그래서 시공사가 안전관리자를 고용하는데, 대부분 계약직이다. 수시로 고용과 계약해지를 반복한다. 심한 경우 1년 만에 수십번 교체되는 현장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관리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광주 해체건물 붕괴 사고 이후 건축물관리법이 개정됐지만, 안전이 담보될지는 미지수다.[사진=뉴시스]
광주 해체건물 붕괴 사고 이후 건축물관리법이 개정됐지만, 안전이 담보될지는 미지수다.[사진=뉴시스]

✚ 그럼 시공사가 정규직 안전관리자를 두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나.
“아무래도 정규직은 경영진이 맘대로 해고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계약직보다는 낫지 않겠나. 그래서 우선 현재 시스템에서는 안전관리자의 정규직화가 무엇보다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 이유가 뭔가. 
“건설업은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고, 수주산업이다 보니 수주가 많지 않을 땐 고정비가 확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건설사는 안전관리자를 정규직으로 두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혹여 안전관리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더라도 고정비를 최소화해야 하니까 안전관리자에게 다른 업무도 병행시킨다. 안전관리자가 현장에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건설사에 정규직 안전관리자를 채용하라고 요구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건가. 
“그렇다. 사실 법에도 그런 규정이 없고, 실제로 안전관리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그 외에 안전관리자의 전문성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달라.
“무늬만 안전관리자인 정규직을 두는 경우가 있다. 일례로 B건설사는 해외플랜트 수주량이 줄면서 인력이 남아돌자 이들에게 안전관리자 교육을 받도록 한 후 현장에 투입했다. 그런데 이들은 애초부터 안전관리자가 아니다 보니 안전보다는 공기단축에 더 신경을 썼다.”

✚ 그럼 근본적인 해결책은 뭐라고 보는가. 
“누가 안전관리자를 고용해야 하느냐는 것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앞서 말한 문제들이 해결된다.”

✚ 자세히 설명해 달라. 
“우리는 흔히 시공사를 원청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행법도 시공사에 안전관리 책임을 지웠다. 하지만 시공사 위에는 발주처라는 진짜 원청이 따로 있다. 물론 발주처가 일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건설현장의 절반가량은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관급공사다. 따라서 안전을 생각한다면 공사기간 단축에 급급한 시공사가 안전관리자를 채용할 게 아니라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안전관리자를 채용하고 각 건설현장에 파견해 시공사를 감독하도록 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면 절반의 안전사고만이라도 줄일 수 있다.”

✚ 발주처도 안전관리자를 계약직으로 고용하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그렇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안전관리자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정규직 안전관리자여야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할 수 있을 거다. 정규직은 계약직에 비해 내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하지만 안전에 관한 책임을 시공사에서 발주처로 돌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안전관리자를 발주처가 채용하도록 하는 건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발주처에도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고 이후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제정을 추진한 건설안전특별법에도 발주처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안전 시스템 일원화해야

✚ 그 외 건설현장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게 더 있다고 보는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 외에 주무기관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 사실 건설현장 안전문제는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가 나눠서 관장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산하기관인 한국시설안전공단을 국토안전관리원으로 개편했다. 산업재해 예방을 빌미로 건설현장을 불시 점검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부도 산하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을 통해 안전지킴이 제도를 운영하며 건설현장을 불시 점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장 안전관리자는 현장 점검보다는 행정서류 작성하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 컨트롤타워의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건설기술진흥법(국토부 관여)과 산업안전보건법(노동부 관여)에서 안전에 관한 내용을 뽑아 통합하는 일도 시급하다. 법과 관리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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