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조의 노후준비 ‘우습게 생각하기’❺ 증권사 IRP 수수료 경쟁

증권사의 개인형 퇴직연금(IRP) 수수료 경쟁이 치열하다. 너도나도 수수료 무료를 선언하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쟁이 노동자가 퇴직연금을 불리는 데 도움을 주는지 의문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여전히 저조한 데다, 증권사의 퇴직연금상품 수익률이 높은 편도 아니어서다. 더구나 퇴직연금을 제대로 알고 있는 노동자도 많지 않다. 증권사의 수수료 경쟁이 불편하게 보이는 이유다.

국내 증권사의 IRP 수수료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그 경쟁이 소비자를 위한 것인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국내 증권사의 IRP 수수료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그 경쟁이 소비자를 위한 것인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최근 퇴직연금 시장의 이목을 사로잡은 뉴스거리가 있다. 증권사가 앞다퉈 진행 중인 개인형 퇴직연금(IRP·Individual Retire ment Pension) 계좌 수수료 ‘무료경쟁’이다.[※참고: IRP 계좌는 퇴직금을 노동자 스스로 자신 명의의 퇴직 계좌에 적립해 연금 등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퇴직연금제도다.]

IRP 수수료 무료경쟁의 포문을 연 건 삼성증권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4월 국내 증권사 중 처음으로 IRP 계좌의 운용관리 및 계좌 관리·보관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기존 고객의 이탈을 우려한 다른 증권사들이 너도나도 수수료 0원을 선언하고 나섰다.

증권사의 IRP 수수료 경쟁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2017년 7월에도 삼성증권을 시작으로 IRP 수수료 무료경쟁이 벌어졌다. 당시에는 개인이 추가로 납입한 금액만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증권사들의 IRP 고객 유치 전쟁이 4년 만에 더 확전擴戰한 셈이다. 증권사들이 IRP 유치 경쟁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퇴직연금 시장에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액은 255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 168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87조1000억원(51.7%)이나 증가했다. 특히 개인형 IRP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같은 기간 개인형 IRP 적립금은 15조3000억원에서 34조4000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어났다.

사람들이 IRP로 발길을 돌리는 건 확정급여형(DB·Defined Benefit)과 확정기여형(DC·Defined Contribution)의 수익률이 워낙 낮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퇴직연금의 운용 수익률은 2.58%였다. 2019년 2.25%보다 0.33%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DB형 수익률이 1.91 %로 가장 낮았다.

저금리 기조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DC형은 3.47%를 기록했고, IRP는 이보다 0.37%포인트 높은 3.84%의 수익률을 올렸다.[※참고: DB형은 퇴직금이 확정돼 있는 것이다. DC형은 기업이 부담금을 노동자의 퇴직연금 계정에 주기적(매월 또는 분기)으로 내고 그 납입금을 노동자의 의사에 따라 여러 상품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의 수익률 격차가 더 확대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원리금보장형은 1.68%, 실적배당형은 10.67%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8.99%포인트의 차이를 보였다. 이는 2019년 4.61%포인트(원리금보장형 1.77%·실적배당형 6.38%)보다 훨씬 커진 수치다.

원리금보장형은 저금리 기조의 악영향을 받았지만 실적배당형은 증시 활황의 덕을 봤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 IRP로 몰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증권사에 IRP 시장은 좋은 먹잇감임에 분명하다. 저금리에 지친 퇴직연금 가입자가 은행에서 증권사로 발길을 돌릴 게 뻔해서다. [※참고: 퇴직연금을 취급하는 금융회사는 은행, 증권사, 생보사 등이다.]

불붙은 증권사 IRP 수수료 경쟁


실제로 올해 1분기 증권사의 IRP 적립액은 9조1100억원이다. 지난해 말 7조5485억원에서 20.6%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은 23조8555억원에서 26조4491억원으로 1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노동자의 퇴직연금이 증권사로 몰리고 있다는 건데,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공산이 크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저금리 기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건 명확하다. 혹여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저금리 국면’을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국내 증권사가 수수료 무료경쟁까지 펼치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는 건 이 때문이다.

퇴직연금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사진=뉴시스] 
퇴직연금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사진=뉴시스] 

물론 DB형에만 머물러 있던 퇴직연금이 DC형과 IRP로 확대되는 건 반길 만한 일이다. 퇴직연금의 원금을 지키는 것에 머물러 있던 노동자의 관심이 퇴직연금을 불리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라서다.

하지만 우려할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증권사가 운용하는 실적배당형 퇴직연금상품의 수익률이 꼭 높은 건 아니다. 지난해 금융업권별 실적배당형 수익률을 보면, 근로복지공단 17.56%, 손해보험사 12.06%, 금융투자회사 11.20%, 생명보험사 11.17%, 은행 10.05%의 순이었다. 금융투자회사의 수익률이 월등히 높지 않았다는 거다.


필자가 증권사의 IRP 수수료 무료경쟁을 상술에 불과하다고 꼬집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실 수수료 무료 이벤트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퇴직연금을 제대로 알리는 거다. 퇴직연금이 노후를 책임지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무관심한 노동자가 여전히 많아서다.

미래에셋투자와 연금센터가 2030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금이해력 조사’의 결과를 보면, 개인의 퇴직연금 이해력 점수는 400점 만점에 평균 190.5점에 불과했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47.6점을 기록한 셈이다.

특히 위험자산 투자 한도와 투자 가능 상품에 관련한 질문의 정답률은 각각 17.3%, 28.1%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퇴직연금 가입자가 수수료 이벤트에 홀려 넘어가면 증권사의 배만 채워주는 격이 된다.

노동자 스스로 퇴직연금 챙겨야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사의 퇴직연금 수수료 수익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9년 9996억원이었던 수수료 수입은 지난해 1조773억원으로 늘어났다. 은행이 6257억원을 챙겨갔고, 보험사와 증권사는 각각 2621억원, 1895억원을 벌어들였다. 같은 기간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은 2.25%에서 2.58%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금융회사의 퇴직연금 수수료가 연 7.7% 증가할 때 노동자는 수익은 0.33% 늘어난 셈이다. 무료를 내세워 선심을 쓰는 척하면서 뒤에선 실속을 다 챙기는 금융회사를 맹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글=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naver.com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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