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반대로 발등의 불
인수 과정 논란도 여전
자금력 부족해 ‘승자의 저주’ 우려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중흥그룹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대우건설 노조는 이번 인수를 반대하면서 총파업을 결의했다. KDB인베스트먼트의 ‘이상한 매각’은 자칫 법적 공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저런 산을 다 넘어도 문제는 남는다. 중흥그룹의 현금성 자산을 싹 긁어모아도 인수 자금이 부족해서다. 중흥그룹이 모로 가든 ‘승자의 저주’와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지난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건설은 ‘승자의 저주’에 시달렸고, 결국 대우건설까지 부실화됐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건설은 ‘승자의 저주’에 시달렸고, 결국 대우건설까지 부실화됐다.[사진=연합뉴스]

“대우건설을 살리고자 인수를 결심했다. 유동자금이 생겨도 10원 한푼 빼가지 않겠다.” 지난 14일 정창선 중흥그룹(이하 중흥) 회장이 광주상공회의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언급한 내용이다. 이날 정 회장은 이 말 외에도 다양한 얘기를 했다.

“대우건설은 뛰어난 기술력과 훌륭한 인재가 있지만 그동안 주인 없는 회사여서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노조는 물론 임원과도 만나 진심을 전할 계획이다. 나의 성실과 정직함을 알게 되면 노조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거다.” “대우건설과 중흥건설은 합병 없이 각자도생할 것이다.” “여유자금으로 인수를 추진하는 만큼 과거 금호그룹이 인수했을 때와는 천양지차다.”

그는 왜 침묵을 깨고 이런 얘기들을 늘어놓은 걸까. 답은 간단하다. 대우건설 인수를 앞두고 다양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그만큼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거다.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은 대우건설 노조의 인수 반대다. 노조는 지난 15~19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총파업을 결의했다. 노조가 중흥의 인수를 반대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서도 최대주주인 KDB인베스트먼트(이하 KDBI)가 대우건설을 매각하는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6월 25일 대우건설 본입찰에서 중흥과 DS네트웍스 컨소시엄이 경쟁했다. 각각 2조3000억원, 1조8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입찰 이후 중흥 측이 KDBI에 인수가격을 비롯한 일부 인수조건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2위와의 가격 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로 중흥 측이 인수를 포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7월 2일 KDBI는 양측에 가격을 다시 써내라고 요구했다.

그로부터 3일 후인 5일 중흥은 애초 가격보다 2000억원 줄어든 2조1000억원에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인수가격이 낮아서 재입찰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인수가격이 높아 수정가격을 받는 건 이례적이었다. 

KDBI 측은 “재입찰이 아니었다”면서 “예비 입찰이 없었던 만큼 양해각서(MOU) 체결 전에 조건을 수정하려는 인수 후보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KDBI 관계자의 더 자세한 말을 들어보자. “처음에 매수자가 많은 사항을 얘기하고 조정해야 마지막이 순조롭다. 아무 조정 없이 진행하다가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사유가 나오면 굉장히 당황스러울 수 있다.” 

이 관계자가 말한 ‘예상치 못한 사유가 나와 매각이 불발된 사례’는 2018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려던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의) 부실을 이유로 인수를 포기했던 걸 의미한다. 쉽게 말해, ‘순조로운 매각’을 위해 중흥의 요청을 받아들여 가격을 조정해줬다는 건데, 이는 대우건설 채권자나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배임의 소지가 있다. 대우건설 노조가 파업을 결정할 정도로 문제 삼고 있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대우건설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애초에 대우건설 내부 직원들은 동종업계인 중흥보다는 DS네트웍스 컨소시엄을 그나마 더 낫다고 판단했다. 가뜩이나 중흥이 인수하는 게 못마땅한데 빌미를 잡은 셈이다.”

매각 과정 논란 지속될 듯

대우건설 내부 관계자도 “대우건설이 중흥으로 넘어가면 ‘중견기업 이미지’가 강해져서 영업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과거에 호반건설로 인수될 거라는 말이 나왔을 때 영업직들이 재건축 아파트 입찰경쟁 과정에서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울고 싶은 대우건설 직원들의 뺨을 KDBI가 때려줬고, 노조는 인수 반대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는 얘기다. 

정창선 회장은 ‘여유자금’으로 대우건설을 인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유자금의 출처는 명학하지 않다.[사진=연합뉴스]
정창선 회장은 ‘여유자금’으로 대우건설을 인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유자금의 출처는 명학하지 않다.[사진=연합뉴스]

이렇게 상황이 꼬여 있다 보니 중흥의 대우건설 인수를 놓고 우려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노조의 반대가 끝이 아니란 점이다. 입찰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DS네트웍스 컨소시엄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DS네트웍스 관계자는 “KDBI의 대우건설 매각 과정은 노조가 아닌 다른 이들이 봐도 이상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격으로 볼 때 승산이 없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높은 가격을 써낸 후 할인이 된다는 걸 알았다면 우린 왜 안 했겠나. 본입찰 이후 KDBI의 행태는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법적인 하자는 없을지 모르지만, 문제를 제기할 부분이 있는지 우리 나름대로 검토 중이다.” 

대우건설이 중흥에 고스란히 넘어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중흥으로선 리스크일 수밖에 없다. 

우려는 또 있다. 중흥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자금을 갖고 있느냐다. 언급했던 것처럼 정창선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여유자금으로 인수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중흥건설엔 대우건설을 인수할 만한 자금(2조1000억원ㆍ재무제표 기준)이 없다. 모든 계열사를 망라해도 마찬가지다. 중흥 계열사 중 현금성 자산이 10억원 이상인 곳은 17개인데, 모두 합쳐봐야 1조1004억원에 불과하다. 계열사의 현금을 싹싹 긁어모아도 1조여원이 모자라는 셈이다. 

게다가 계열사의 현금성 자산이 장부상에 기재된 만큼 있는지도 의문이다. 특정 계열사가 수주를 따내면 그걸 다른 계열사와 나눠 먹는 일은 중흥그룹에서 흔한 일이다. 과거 계열사를 이용한 중흥의 ‘벌떼 입찰’이  논란을 일으킨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같은 계열사로부터 돈을 받지 않으면 현금화가 쉽지 않은 현금성 자산이 적지 않다. 중흥의 재무제표에 계열사 간 자금 대여나 차입거래가 많이 기록돼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례로 핵심 계열사인 중흥토건은 계열사와 수천억원의 채권ㆍ채무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때문인지 “중흥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려는 또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나온다. 인수ㆍ합병(M&A) 전문가인 송호연 ESOP 피에이지앤컨설팅 대표는 “정 회장이 재무제표상에 현금이 없는데도 별도의 여유자금이 있다고 주장한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현재로선 중흥이 대출을 받아 인수자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중흥 계열사들의 신용도가 그리 높지 않아 자체 대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우건설을 인수한 후 대우건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법이 있다.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한데, 과거 금호그룹도 몸집을 불릴 때 이 방법을 썼다. 그런데 이렇게 받아서 마련한 자금을 ‘자기자본’이라 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인수한 기업을 이용해서 대출을 받은 거니까 자기자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애매하다는 건데 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본다.” 

장부에 돈 없으면 위험

이처럼 대우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중흥의 주변엔 숱한 우려가 널려 있다. 회장까지 나서 대우건설 인수 의지와 목표를 밝혔으니 몇몇 우려는 잠재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장부상에 돈 없는 기업’이 또다른 기업을 M&A했을 땐 십중팔구 탈이 났다. 특히 이번엔 몸집이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삼킨 케이스다. 중흥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더라도 결국 ‘승자의 저주’를 만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송 대표는 “문제는 그 ‘승자의 저주’가 대우건설의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또다시 터진다면 그땐 누가 책임지겠는가. 중흥의 대우건설 인수 절차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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