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사태가 던지는 한가지 질문
스피크업 문화는 최고의 컴플라이언스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 효과를 갖고 있다(남양유업 4월 발표).” 백신의 효능마저 논란이 되는 마당에 유산균 음료가 코로나를 예방한다는 발표는 누가 봐도 이상했다. 결국 이 발표는 파문을 일으켰고, 남양유업은 주인이 바뀌는 격변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지점엔 몇가지 의문이 있다. “시장에서 57년을 살아남은 회사가 어떻게 이런 내용을 발표했을까.” “회사에 목소리를 내는 직원이 없었을까.”

구글 직원들은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구성원 행동주의로 맞섰다.[사진=연합뉴스]
구글 직원들은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구성원 행동주의로 맞섰다.[사진=연합뉴스]

1970년대만 해도 우유는 귀한 음식이었다. 어느 정도 사는 집이 아니면 매일 아침 배달된 우유를 마시는 건 꿈도 꾸기 어려웠다. 197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중년 중엔 그 시절 마셨던 우유 맛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유회사는 대체로 오래된 곳이 많다. 남양유업도 그중 하나다. 1964년 충남 천안에서 설립됐다. 회사 이름은 ‘남양 홍씨’인 창업주의 본관에서 따왔다고 한다. 남양유업은 본래 우유보다 분유粉乳사업에 먼저 뛰어들었다. 1970년대 히트를 쳤던 ‘우량아 선발대회’의 후원을 맡아 인지도를 쌓으면서 분유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이후 우유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둔 남양유업은 유제품뿐만 아니라 커피ㆍ음료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이렇게 성장가도를 달려온 남양유업이 무너진 건 한순간이었다. 남양유업은 지난 4월 13일 심포지엄에서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불가리스는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회사 주가는 폭등했다.

하지만 이내 상황이 바뀌었다. 질병관리청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가 아니다”면서 불가리스의 예방 효과를 부인했고, 경찰은 식품표시광고법 위반과 주가 조작 혐의로 수사에 나섰다. 2013년에도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사건으로 논란을 빚은 전력이 있는 남양유업에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벌이며 분기를 표출했다. 

소비자들의 분노가 그나마 수그러든 건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눈물로 호소하며 사죄한 뒤였다. 5월 4일 홍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회장직 사퇴를 발표했고, 그로부터 얼마 뒤인 27일 홍 회장 일가가 보유한 지분 53.08%가 국내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에 매각(3107억원)됐다. 1964년 창업했던 남양유업의 오너경영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선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불가리스는 품질이 우수하고 건강에 좋은 식품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코로나19 백신의 효능도 논란이 되는 마당에 유산균 음료가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발표는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은 내용이었다.

시장에서 57년을 살아남은 회사에서 어떻게 이런 어이없는 내용이 발표됐을까. 회사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직원이 한 사람도 없었을까. 물론 누군가 목소리를 냈다고 해도 무시됐을 수 있다. 회사가 몰락하는 주된 원인은 가족 중심의 전前근대적 지배구조와 비非상식을 지적하지 못하는 폐쇄적 조직문화이기 때문이다.

잠깐 눈을 돌려 이번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의 사례를 보자. 2018년 11월, 구글 직원들이 대규모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일본 도쿄에서 시작된 시위는 하루 만에 세계 50여개 도시로 확산됐다. 시위에 참여한 직원만 2만여명에 달했는데, 전체 직원 수(당시 7만3000여명)의 약 27%에 달하는 숫자였다. 구글 직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인 건 고위 임원 앤디 루빈(Andy Rubin)의 성희롱 사건 때문이었다.

앤디 루빈은 휴대전화용 운영체제(OS)를 개발한 안드로이드사의 공동 창업자로 ‘안드로이드의 아버지(Father of Android)’로 불리는 유명 인물이다. 구글이 안드로이드사를 인수하면서 영입한 회사의 핵심 임원이었다. 구글은 성희롱 사건이 터졌음에도 앤디 루빈에게 9000만 달러(약 1060억원)에 이르는 퇴직 보상금을 지급했고, 앤디 루빈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직원들이 대규모 거리 시위를 벌인 것이다. 

구글엔 단순하지만 명확한 신조(Credo)가 있다. ‘Don’t be Evil(사악해지지 말자)’이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의미다. 직원들은 이런 회사의 가치가 성희롱 의혹으로 손상됐다는 걸 알고 행동에 나섰다. 결국 구글은 직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회사의 중재를 금지하고 피해자 보호조치를 강화했다. 

구글 사례와 같이 직원들이 기업 내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뜻이 같은 동료들과 자발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는 현상을 ‘구성원 행동주의(Employee Activism)’라고 부른다. 이제 할 말은 하는 직원들이 늘면서 구성원 행동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구성원 행동주의가 당장은 기업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고객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회사를 살리고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다. 경영자의 의사결정이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동떨어질 때 직원들이 회사의 가치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의 몰락은 많은 기업에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러분의 회사엔 직원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기업문화(Speak-up culture)가 있는가.” 만약 대답이 ‘No’라면 회사는 직원들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한다. 물론 직원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회사가 경청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개별 직원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은 직원들이 말할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는 데 중요하다. 회사가 구성원 행동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컴플라이언스 전문가들은 최고最高의 컴플라이언스란 “뭔가 잘못되고 있을 때 기꺼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문제가 사건ㆍ사고로 확전되기 전에 직원들이 보복의 두려움 없이 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직원만이 조직에 가치가 있다.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도 침묵하는 것은 회사를 죽이는 것과 같다. 지금 회사에 문제가 있다면 목소리를 높여라.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라.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정리 =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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