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유명무실한 준법지원인 제도
컴플라이언스 가이드라인 필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처음으로 내부통제 제도가 도입됐다.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준법감시인 제도(2000년 도입)다. 상장회사에 적용되는 준법지원인 제도가 도입된 건 그로부터 11년 후다. 하지만 두 제도는 현재 유명무실하다. 법이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하거나, 지키지 않는 기업이 숱해서다. 한국형 내부통제 제도, ‘K-컴플라이언스’가 필요한 이유다.
 

컴플라이언스는 ESG 경영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핵심요소다.[사진=연합뉴스]
컴플라이언스는 ESG 경영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핵심요소다.[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7인조 보이그룹 BTS가 신곡 ‘버터(Butter)’를 발표했다. 노래 제목처럼 팬들의 마음이 녹은 걸까. 이 노래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6주 연속 1위(7월 8일 기준)에 오르며 K-팝의 위력을 보여줬다. 

K-팝이란 말은 1990년대 처음 등장했다. 한국 프로축구리그인 K-리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K는 Korea의 첫 글자에서 따왔는데, 그 안엔 한국산ㆍ한국적ㆍ한국식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다른 말로 한류韓流라고도 부른다. 대중문화에서 산업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는 현상이다. 우리의 방식이 세계를 이끈다는 자긍심이 묻어있다. 

K-팝에서 시작된 ‘K 열풍’은 K-드라마ㆍK-무비ㆍK-뷰티ㆍK-푸드ㆍK-방역ㆍK-반도체 등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젠 K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넘쳐날 정도다. 바야흐로 K 홍수시대인 셈이다.

필자는 이런 K 홍수시대에 하나만 더 얹어보려고 한다. ‘K-컴플라이언스’다. 혹자는 “컴플라이언스도 생소한데 K-컴플라이언스는 대체 뭔가”라며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K-컴플라이언스의 취지는 간단하다. “컴플라이언스는 우리나라에서 유래한 건 아니지만 우리 실정에 맞는 컴플라이언스 제도를 만들어보자.” 

컴플라이언스는 기업 스스로 법과 회사내규, 사회규범 등을 준수하고 나아가 윤리의식을 제고하는 활동ㆍ상태를 뜻한다. 이를테면 내부통제의 부분적 개념이다. 우리나라 내부통제 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나왔다. 넓은 의미에선 상근감사나 사외이사도 내부통제 제도로 볼 수 있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금융회사의 준법감시인 제도(2000년 도입)가 시초다. 그후 2011년 상법을 개정하면서 자산 5000억원 이상 상장회사에 준법지원인 제도(2012년 시행)가 생겼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준법감시인 제도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준법지원인 제도도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상장회사 중엔 법적 의무대상인데도 준법지원인을 선임하지 않은 기업이 여전히 많다. 실정법과 정관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회사 이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정작 상법엔 직접적인 제재 규정이 없다. 그나마 준법지원인을 선임한 회사도 운영 실적이 미미하고 활동 내역이 천편일률적이다. 이처럼 형식적으로만 운영되는 탓에 제도의 가치가 희석될 우려가 크다. 

사실 준법지원인 제도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반발이 심했다. 외국 입법례에도 없는 독특한 제도라 우리 현실엔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컴플라이언스가 발달한 나라들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되레 더 강력한 제도를 통해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라는 숱하다.

가령, 프랑스는 2016년 샤팽(Sapin)2법을 제정해 직원 500명 이상, 연간 매출액 1억 유로(약 1349억원) 이상인 기업은 반부패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위반하면 법인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은 2010년 제정한 뇌물방지법(Bribery Act)에 ‘뇌물방지실패죄’라는 독특한 기업 범죄를 신설했다. 이 법의 골자는 “기업의 임직원ㆍ대리인ㆍ자회사 등 관련자가 사업에서 유리한 혜택을 얻을 의도로 뇌물을 공여했을 때 뇌물제공 행위의 책임이 기업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기업이 뇌물공여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절차(adequate procedure)’를 갖추고 있다는 걸 입증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적절한 절차란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컴플라이언스 제도가 유명무실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땜질식으로 급하게 만들다 보니 정부 주도하에 단기간에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선지 컴플라이언스 책임자를 임명하고, 내부통제 기준을 제정하는 등 형식적 요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유인책이 분명한 것도 아니다.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에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부여되지 않으니, 파급효과가 약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제도가 외형적으로는 발전했음에도 컴플라이언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기업이 많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세계적으로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열풍이 불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지난해 12월 민간주도 한국형 지표인 ‘K-ESG’를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다수 투자자나 경영진들은 ESG 중에서 E(환경)나 S(사회)와 관련된 이슈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ESG 전문가들은 ESG 중 G(지배구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G가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E와 S는 지속적으로 추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한 핵심요소가 컴플라이언스다. 그래서 컴플라이언스는 ESG 경영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K-ESG 제정과 함께 컴플라이언스도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법제 정비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기업들이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K-팝처럼 K-컴플라이언스를 꿈꾸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정리=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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