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새 공공기관 6.4개씩 설립돼
이중 30%는 관피아 노후 보금자리
관피아 임명된 공공기관 예산 400조
관피아 기관장 연봉으로 200억 쓰여

외환위기, 저축은행 사태, 세월호 참사, 옵티머스 사태….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대형 사건ㆍ사고의 이면엔 늘 관피아가 있었다. 그때마다 경각심을 갖고 관피아를 척결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달라진 건 없다. 공공기관은 언제나 관피아의 차지였고, 그들만의 리그였다.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되찾겠다’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번엔 뭐가 달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달라진 건 없다. 
 

350개 공공기관 중 102개 기관의 수장이 관료 출신이다.[사진=연합뉴스]
350개 공공기관 중 102개 기관의 수장이 관료 출신이다.[사진=연합뉴스]

공공기관의 수장 자리는 ‘그들만의 리그’로 통한다. 은퇴한 관료들이 산하 공공기관장으로 재취업하는 행태가 관행처럼 굳어진 지 오래여서다. 선후배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형성된 주무부처-산하기관 간의 커넥션이 ‘나쁜 대물림’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이탈리아 범죄조직 마피아(Mafia)에 빗대 ‘관官피아의 세상’이라고 꼬집는다.[※참고: 관피아는 공무원 출신 낙하산 인사를 뜻한다. 같은 낙하산이라도 정치권에서 내려오는 정피아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공공기관이 관피아의 노후 보금자리로 전락한 셈인데,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관피아를 척결하겠다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말은 늘 ‘성찬盛饌’에 그쳐왔다. 

이번 정부는 어땠을까. ‘적폐청산’을 국정 기조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좀 달랐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19일 여야 대표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공공기관 인사에 있어서 낙하산ㆍ보은 인사가 없도록 약속해 달라”는 주문에 “그런 일은 없게 하겠다”며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척결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4년, 이 말은 지켜졌을까.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공공기관은 350개다. 이중 주무부처 출신 기관장은 102곳에 이른다. 전체의 29.1%가 주무부처에서 내려온 관피아인 셈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부처별로 조금 차이가 있다. 가장 많은 관피아가 포진해 있는 곳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이다. 40개 산하기관 가운데 20개 기관의 수장이 ‘위’에서 내려왔다(산자부 출신ㆍ한국전력 자회사는 한전 출신). 그다음으로 관피아가 많은 곳은 국토교통부(28개 중 18개), 과학기술정보통신부(47개 중 9개), 해양수산부(17개 중 8개) 등이다. 그 외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출신이 코레일 자회사 사장으로 선임되거나, 우정사업본부 출신이 관련 산하기관 기관장으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할 건 기획재정부 출신 낙하산 인사를 뜻하는 모피아(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ㆍ관피아의 시초)의 행보다. 앞에서 언급한 기관들보다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서다. 기재부 산하기관 4곳 중 4곳과 금융위원회 산하기관 8곳 중 5곳을 모피아가 꿰찼을 정도다(나머지 3곳 중 2곳의 기관장은 금융위 출신). 모피아가 관치금융과 금융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받아왔다는 걸 감안하면 현 정부 들어서도 나아진 게 전혀 없다. 

 

관피아가 포진한 공공기관에 편성된 올해 예산은 402조원에 달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관피아가 포진한 공공기관에 편성된 올해 예산은 402조원에 달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혹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오랜 공직생활로 전문성과 업무 연관성을 겸비한 퇴직 공무원들이야말로 산하 공공기관 기관장으로서의 적합한 자질과 역량을 갖춘 적임자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관피아의 순기능보단 역기능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1997년 외환위기부터 카드 사태(2003년), 저축은행 사태(2011년), 원전비리(2012년), 세월호 참사(2014년), 옵티머스 사태(2020년) 등 우리나라를 뒤흔든 대형 사건ㆍ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그 뒤엔 늘 ‘관피아 문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관피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착관계가 주무부처의 허술한 관리ㆍ감독과 공공기관의 방만ㆍ비리경영을 부채질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모피아는 여전히 금융권을 장악하고 있고, 해피아(해수부+마피아)는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관피아의 폐해는 그뿐만이 아니다. 박형준 성균관대(행정학) 교수는 “관피아의 문제점 중 하나는 필요 없는 공공기관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퇴직 공무원이 갈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공공기관을 세우고, 일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1년 286개였던 공공기관은 10년 만에 350개로 64개가 늘었다. 1년에 6.4개씩 새로운 공공기관이 생긴 셈이다.

이들 공공기관에서 쓰고 있는 예산도 적지 않다. 관피아가 보금자리를 튼 102개 공공기관에 편성된 올해 예산은 총 401조8652억원에 달한다. 올해 정부 예산(556조원)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게다가 관료 출신 공공기관장 102명의 연봉ㆍ상여금으로 지난해 201억6878만원(1명당 평균 1억8674만원)이 쓰였는데, 1명당 적게는 9190만원에서 많게는 4억6532만원까지 받아갔다. 

심지어 이들 중엔 서로 다른 기관장인데도 일괄적으로 동일한 성과급을 받거나, 2021년 경영성과급이 벌써 예산에 책정된 경우도 있다. 일부 공공기관이 경영실적과 관계없이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방만경영과 관피아의 온상인 공공기관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귀희 숭실대(행정학) 교수는 “사회에 해악을 미치는 관피아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규범을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제도 개혁과 시스템 마련을 위한 담론이 필요한 때다”고 지적했다. 관피아 척결, 이젠 말이 아닌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는 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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