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 60주년 프로젝트
면·수프 바꾼 삼양라면의 승부수
농심·오뚜기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한국 최초의 봉지라면부터 한국 최초의 컵라면까지…. 라면의 ‘최초 기록’은 삼양식품이 갖고 있다. 그런데도 삼양식품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불닭볶음면’의 전세계적 인기로 ‘글로벌 수출기업’으로 거듭났다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라면시장 점유율이 농심에 이어 오뚜기에도 밀린 3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삼양식품이 최근 60주년을 맞아 삼양라면을 리뉴얼했다. 달라진 삼양라면은 시장점유율까지 끌어올려 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라면 원조의 변신과 도전을 취재했다. 

삼양식품은 지난 1963년 국내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을 출시했다.[사진=뉴시스]
삼양식품은 지난 1963년 국내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을 출시했다.[사진=뉴시스]

한국의 ‘대표 라면’ 하면 어떤 제품이 떠오르는가. 십중팔구 ‘신라면(농심)’을 떠올릴 거다. 그런데 신라면은 한국 라면의 ‘원조元祖’가 아니다. 한국 최초 라면은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이다. 1961년 설립한 삼양식품은 ‘꿀꿀이죽(미군이 버린 잔반으로 끓인 죽)’을 먹던 당시 식량문제 해결 방책으로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시장을 선점한 삼양식품은 ‘최초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렸다. 1970년대 삼양식품의 라면시장 점유율이 60%대에 달했을 정도다. 국내 최초로 ‘컵라면(용기면ㆍ1972년)’을 선보인 것도 삼양식품이었다. 하지만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었다. 1989년 터진 ‘우지라면 파동’으로 삼양식품은 침체기에 빠졌다.[※참고: 검찰은 식용이 아닌 공업용 우지(소기름)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삼양식품·오뚜기 등 5개사를 고발했다. 삼양식품은 라면 생산을 중단하는 등 피해를 입었지만,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함께 고발된 오뚜기는 별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업계 1위였던 삼양식품은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렸다. 그사이 후발주자인 신라면(1986년 출시), 진라면(오뚜기ㆍ1988년)이 치고 올라왔다. 삼양식품의 라면시장 점유율은 10%대로 떨어졌고,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런 삼양라면을 두고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삼양식품이 회사 창립 60주년을 맞아 삼양라면의 ‘리뉴얼’에 나섰기 때문이다. 

삼양식품 측은 “6개월여간의 연구ㆍ개발을 거쳐 면, 수프, 플레이크 등을 모두 개선한 ‘삼양라면(오리지널)’을 새롭게 선보였다”면서 “표고버섯 등 야채를 더해 국물 맛이 진하고, 건청경채ㆍ건파ㆍ건당근을 비롯한 플레이크 재료를 30% 증량해 맛을 업그레이드했다”고 설명했다.

패키지에도 변화를 줬다. 사명을 연상시키는 ‘세 마리의 양’을 이미지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녹색인증’을 받은 친환경 포장재를 적용했다. ‘스테디셀러’인 삼양라면을 활용한 제품 라인업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6월 출시한 냉동식품 ‘삼양라면 만두’ ‘삼양라면 밥’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은 삼양라면의 면과 수프, 플레이크를 만두와 밥에 각각 첨가했다.

아울러 온라인 채널을 확장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2016년 개설한 자체 온라인 쇼핑몰 ‘삼양맛샵’을 꾸준히 리뉴얼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신제품을 빠르게 선보이기 위해 자사몰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온라인 전용 제품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삼양식품은 60주년을 맞아 원조 ‘라면 명가’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매운맛 라면 ‘불닭볶음면’이 삼양라면에 이어 또 하나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는 건 긍정적이다.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2019년 누적 매출액 1조원(불닭 브랜드 기준)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 6월엔 누적 판매량 30억개를 기록했다. 

국내 라면시장 규모는 2조원대에 그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삼양식품이 점유율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사진=연합뉴스]
국내 라면시장 규모는 2조원대에 그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삼양식품이 점유율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사진=연합뉴스]

특히 전세계에 불어닥친 ‘매운맛’ 열풍에 이어 ‘K-푸드’ 바람을 타고 해외시장(85개국)에서 불티나게 판매됐다. 지난해 삼양식품의 전체 매출액(6485억원) 중 절반가량인 3703억원이 해외에서 발생한 것도 불닭볶음면 덕분인 셈이다.[※참고: 올해 상반기 수출 실적(2020년 상반기 1816억원→2021년 상반기 1650억원)이 한풀 꺾이긴 했지만, 이는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라면 수요가 급증한 기저 효과 등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불닭볶음면만으로 라면 제품의 점유율까지 끌어올리는 덴 한계가 있다. 한껏 높아진 불닭볶음면 ‘의존도’가 되레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시장에서 불닭볶음면의 성장세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면서 “수출 국가를 다변화한다고 해도 불닭볶음면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40~50%에 달할 만큼 높다는 점은 해소해야 할 변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라면시장의 주류인 ‘국물라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관건은 다시 ‘삼양라면’이다. 최근 리뉴얼한 삼양라면이 국물라면 시장에서 얼마나 파이를 키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다. 업계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데, 이유는 간단하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는 게 쉽지 않아서다. 

지난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전세계적 인기를 바탕으로 누적 매출액 1조원을 넘어섰다.[사진=삼양식품]
지난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전세계적 인기를 바탕으로 누적 매출액 1조원을 넘어섰다.[사진=삼양식품]

익명을 원한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오뚜기(2019년 기준 시장점유율 23.5%)가 농심(49.7%)과 경쟁하는 2위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맛’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오뚜기는 꾸준히 진라면의 ‘저가 정책’을 고수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왔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이런 전략을 펼칠 수 있었던 덴 라면 외에도 ‘마요네즈’ ‘케첩’ 등 수익을 낼 만한 다른 제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면 사업 비중(92.6%ㆍ2021년 상반기 기준)이 높은 삼양식품으로선 라면 가격을 낮추는 선택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실제로 오뚜기는 진라면 가격을 684원으로 유지해 오다 지난 7월 13년 만(2008년 이후)에 770원으로 인상했다. 농심과 삼양식품이 4년여(2016년 12월ㆍ2017년 5월) 텀으로 가격을 인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주기가 상당히 길었다는 얘기다.

리뉴얼했다곤 하지만 소비자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김태희 경희대(외식경영학) 교수는 “라면은 소비자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소비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선호제품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서 “맛을 개선하고 패키지를 바꾸는 정도로는 소비자를 사로잡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더 자세히 들어보자. “성패를 가르는 건 소비자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냐다. 예컨대 최근 소비 트렌드를 이끄는 건 MZ세대다. 그들이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읽어야 한다. ‘팔도비빔면(팔도)’이 ‘네넴띤’으로 이슈몰이에 성공한 것도 ‘맛’보단 ‘소통의 기술’ 덕분이다. 최근 이슈몰이에 성공한 유통업체나 식품업체 중엔 MZ세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한 기업들이 많다. 삼양식품 역시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을 찾는다면 제품의 기획부터 브랜딩까지 접근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10월 경남 밀양에 신규 공장을 착공했다. 2000억원을 투입해 짓는 30년 만의 신규공장으로, ‘수출 전진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과 ‘불닭볶음면’이란 두 토끼를 모두 잡고 제2의 전성기를 열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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