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유통 콜라보 마케팅 인기 이유

유통가에서 금융상품을 보는 일이 흔해지고 있다. 혁신금융서비스로 특례를 인정받은 금융업체가 유통업체와 손잡고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서다. 재테크와 투자에 관심을 갖는 젊은층이 늘면서 주식·보험 등 금융상품이 웬만한 사은품보다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금융-유통의 콜라보 마케팅이 활발해진 이유다. 하지만 이런 마케팅이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금융과 유통이 경계를 넘어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금융과 유통이 경계를 넘어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금융과 유통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혁신금융서비스가 활성화하자 금융권이 제휴·프로모션을 통해 유통가로 들어오면서다.[※참고: 혁신금융서비스는 기존 금융 서비스와 차별화된 서비스에 관해 규제 적용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다. 서비스 지정 시 최대 4년간 금융 규제에서 유예·면제된다.]

사례는 숱하다. 지난 8월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와 하나은행은 디지털 혁신사업 관련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협약대로 진행된다면 소비자는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듯 라이브 방송을 통해 금융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보험업계도 적극적이다. 한화생명은 8월 ‘LIFEPLUS 구독보험’을 출시하면서 GS리테일·이마트·프레시지 유통업체 3곳과 손을 잡았다. 1년 만기상품인 이 구독보험은 매월 보험금을 납입하면 유통업체의 쿠폰이나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예컨대 GS리테일과 제휴한 ‘편맥 구독보험’에 가입하면 매월 맥주 4캔을 무료로 구매할 수 있다. 

‘이마트 할인 구독보험’은 월 3만원 보험료를 내면 이마트 상품권 3만원에 할인쿠폰 5000원을 함께 준다. ‘프레시지 밀키트 구독보험’에 가입하면 프레시지에서 밀키트를 최대 47%까지 할인 구매할 수 있다. 

증권업체들은 주식을 상품처럼 내걸고 고객을 끌어들인다. 신규 계좌 개설자에게 랜덤으로 상장사 주식을 1주씩 지급하는 식이다. 유통업체에서 제품을 구매하고 계좌를 개설하면 주식을 주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가령, 지난 7월 이마트24는 하나금융투자와 손잡고 ‘주식 도시락’을 출시했다. 도시락 구매 시 네이버·현대자동차 등 10개 기업 주식 중 1주를 무작위로 받을 수 있는 제품이었다.[※참고: 도시락 속 쿠폰을 이마트24 앱에 등록하고, 연결된 페이지를 통해 하나금융투자에 신규 계좌를 개설해야 주식이 지급됐다.]

주가가 가장 낮은 대한해운(7월 23일 기준 3470원) 주식을 받더라도 도시락 가격이 4900원이니, 약 1400원으로 도시락을 구입할 수 있는 셈이었다. 소비자가 ‘주식 도시락’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치킨 시켰더니 치킨 회사 주식이…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래에셋증권은 배달 플랫폼 요기요와 손잡고 ‘치킨 먹고 치킨회사 주주되자’ 이벤트를 진행했다. 요기요에서 치킨을 주문하고 미래에셋증권에 신규 계좌를 개설하면 추첨을 통해 교촌에프앤비의 주식을 주는 행사였다.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이벤트였지만 기존 미래에셋증권 고객에게도 추첨으로 교촌에프앤비 주식 50주(약 100만원)를 준다고 밝혀 더 많은 참여를 유도했다. 

한화생명은 GS리테일과 손잡고 맥주 구독 보험 상품을 내놨다. [사진=GS리테일 제공]
한화생명은 GS리테일과 손잡고 맥주 구독 보험 상품을 내놨다. [사진=GS리테일 제공]

그렇다면 금융업계는 왜 유통업계까지 파고든 걸까. 답은 간단하다.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젊은층이 늘면서 금융상품이 웬만한 사은품보다 더 효율적인 ‘소비자 유인효과’를 창출해서다.

임명호 단국대(심리학) 교수는 “‘상호성의 법칙(상대에게 호의를 받으면 갚으려는 법칙)’에 따라 작은 상품이라도 받는 소비자는 뭐라도 해야 한다고 느낀다”며 “금융상품의 가입절차가 번거롭더라도 기꺼이 감수하는 소비자가 많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마트24와 하나금융투자의 주식 도시락은 1차 판매에선 3일, 2차 판매에선 4일 만에 완판됐다. 이벤트용으로 준비한 주식 3만주 중 지급된 주식은 2만5000주에 달한다. 주식을 받기 위해선 가입하고 계좌를 만들어야 하니, 하나금융투자는 이벤트를 통해 최소 2만5000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한 셈이다.

하나금융투자 관계자는 “주식 도시락을 통한 신규계좌 개설에선 남녀 투자자의 비중이 51대 49로 비슷했다”며 “20~40대 고객이 72%로 젊은 층이 많이 유입됐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과 요기요의 치킨 이벤트도 큰 관심을 받았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치킨을 주문하면 실제 주주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재미를 느낀 고객이 많았다”며 “8월 26일까지 요기요를 통해 이벤트에 참가한 이들은 2만7000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유통을 활용한 금융업계의 마케팅이 지속 가능하느냐다. 임 교수는 “소비자가 이벤트 참여시 제품 구매 등으로 비용을 들였다면 서비스를 좀 더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매몰비용이 있기 때문에 서비스를 유지하려는 심리가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명한’ 소비자 실익 없으면 안 써

반론도 있다. 허경옥 성신여대(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 교수는 “과거에 비해 현명한 소비자가 많아졌다”며 “이들은 자신에게 실익이 없다면 굳이 이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벤트로 서비스에 가입했더라도, 장기간 사용했을 때 어떤 편익이 있는지 따지는 소비자가 많다. 매일 다양한 마케팅이 쏟아지는 만큼 이제는 소비자도 이득이 되는지 아닌지 곧잘 구분한다. 결국 고객을 장기적으로 확보하려면 기본적인 서비스가 좋아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상품을 지나치게 쉽게 구매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금융소비자학과) 교수는 “금융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젊은층이 마케팅을 통해 상품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테크에 관심이 높아지는 건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위험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보험이나 주식은 사실 복잡한 상품으로, 자신이 뭘 구매하는지 설명을 통해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벤트를 통해 비대면으로 금융상품에 가입한 경우 실제론 잘 모르는데도 본인이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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