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이재용 취업논란과 취업승인 제도
이 부회장, 삼성 최고의사결정권자
240조원 투자 결정 이사회 거쳤나
경영복귀 전 법적 자격부터 갖춰야

‘취업제한’ 대상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 직후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논란이 일자 법무부는 “미등기ㆍ비상근ㆍ무보수이기 때문에 취업이 아니다”라면서 변명을 늘어놨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이 부회장은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취업 승인을 받으면 정상적으로 경영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 부회장과 법무부는 이 절차를 몰랐을까.
 

이재용 부회장은 사실상 삼성전자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다.[사진=뉴시스]
이재용 부회장은 사실상 삼성전자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다.[사진=뉴시스]

그가 돌아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재수감된 지 207일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두고 특혜라는 논란이 있지만 법에서 정한 요건은 충족한 것으로 보인다. 재벌 총수라고 역차별을 받을 필요는 없다. 구치소를 나온 이 부회장은 첫 일성으로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를 잘 듣고 있다”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가서 주요 경영진과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행보가 또다른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취업제한’ 규정 때문이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엔 5억원 이상의 횡령ㆍ배임 등을 저지른 임원은 형 집행이 종료된 날로부터 5년간 유죄 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이 부회장은 재산상 손해를 입은 피해기업인 삼성전자에 컴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법을 위반해 수감됐던 이 부회장이 석방되자마자 위법 논란에 휩싸인 셈이다.

특정경제범죄법 취업제한 규정이 확립된 건 2019년이다. 이전에도 취업제한 규정이 있었지만 모호한 규정 때문에 사문화死文化됐다가 2019년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석이 명확해졌다. 과거엔 자신의 회사에 횡령ㆍ배임 등으로 피해를 준 재벌 총수 일가들이 형 집행이 끝나고 슬그머니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재벌 총수들의 경영 복귀가 어려워진 것이다. 중한 죄를 지은 임원의 재범 방지를 위해 취업을 제한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도 취업제한 대상자였다. 법무부는 지난 2월 이 사실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통보했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어떻게 경영에 복귀할 수 있었을까. 석방 이후 법무부 장관은 “이 부회장은 무無보수, 비非상임, 미未등기 임원이기 때문에 ‘취업’으로 보기 어렵지 않겠냐”고 논란을 일축했다. 법무부도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가 특정경제범죄법상 취업제한 규정을 위반한 게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앞서 취업제한을 통보했던 것과 상반된 입장이다.

법무부의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럴 바엔 지난 2월 이 부회장에게 취업제한 통보를 왜 했는가. 특정경제범죄법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건전한 경제윤리에 반하는 특정경제범죄를 가중처벌하고 그 범죄행위자에 대한 취업제한 등을 규정해 경제질서를 확립한다.” 86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해 뇌물을 제공하고 경제 질서를 무너뜨린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를 인정하는 것은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상법엔 ‘사실상 이사(de facto director)’라는 개념이 있다. 현행 상법 제401조의 2를 보면 “이사가 아니면서 명예회장, 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 기타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해 회사의 업무를 집행한 자”를 업무집행지시자, 이른바 ‘사실상 이사’로 본다고 나와 있다. 사실상 이사는 회사나 제3자에 관한 법적 책임을 부담한다. 주주대표소송이나 다중대표소송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취업 여부를 “미등기ㆍ비상근 임원이며 보수를 받지 않는다”는 표면적인 이유만으로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국내 재벌 총수들은 등기나 상근, 보수지급 여부와 상관없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들이 보통 직장인들처럼 월급으로 먹고살지 않는다는 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법 해석상 논란은 있더라도 이 부회장이 사실상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임은 분명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24일 향후 3년간 240조원을 신규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채용한다는 투자ㆍ고용방안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이 출소한 지 11일 만이다. 언론은 “사회적 기대에 삼성이 부응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가 경제 측면에선 환영할 일이지만 한가지 의문이 있다. 이 정도의 대규모 계획을 발표하는데 이사회 결정이 있었다는 뉴스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의 출소를 기다렸다가 발표한 느낌도 없지 않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이며 상장기업이다. 경영상 중대한 의사결정은 총수 개인이 아닌 이사회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 경영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거버넌스(경영방식ㆍgovernance)에 정답은 없다. 오너 경영이 폐해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너 총수라 하더라도 상법상 지배기구인 이사회에 들어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게 맞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풀려났지만 현행법상 업무에 복귀할 수 없다. 당장은 물론이고 2022년 7월 형 집행이 종료된 이후에도 5년간 삼성전자에서 일할 수 없다. 하지만 특정경제범죄법은 제14조 단서 규정에서 별도의 취업 승인을 받으면 경영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법무부도 개정 시행령을 시행함과 동시에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를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특정경제범죄법 제14조 단서 규정에 따라 취업 및 인허가 승인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기구다. 2020년 1월엔 처음으로 취업 승인 의결을 내리기도 했다.

 

7개 시민단체가 이 부회장을 취업제한 규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사진=연합뉴스]
7개 시민단체가 이 부회장을 취업제한 규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로 국가 경제가 어렵다. 삼성전자도 어려운 경영 환경에 놓여 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이 부회장을 배려한 조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법질서를 훼손하면서 혜택을 주는 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 일이다. 취업이냐 아니냐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법에서 허용한 취업 승인을 신청하고 특별경제사범 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기 바란다. 

이 부회장은 출소 직후 국민 앞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법적 자격을 갖춘 후에 ‘열심히 하는’ 것이 수순이다. 이 부회장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삼성준법감시위원회도 이럴 때 한마디 해야 한다. 법부터 지키라고.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정리 =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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