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 삼성 준법위의 함의
2020년 출범한 삼성 준법위
준법경영 롤모델 될 수 있을까

2020년 2월 국내 재계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삼성그룹이 준법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 ‘준법감시위원회’를 공식 출범한 거다. 준법위는 그룹 내부의 통제시스템 강화, 지배구조 개선 등 다양한 숙제를 풀어내야 한다. 그중에서도 그룹 총수인 회장을 얼마나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느냐가 핵심 과제다. 총수의 워치독(watchdogs)이 되느냐 스피커(speaker)가 되느냐에 준법위의 성패가 달려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기업의 회장은 누가 감시할까. 이 질문에 선뜻 답을 하기란 어렵다. 이론적으로는 각 기업의 이사회가 회장을 감시하도록 돼 있지만, 지배주주인 회장이 이사회 구성원인 이사를 임명하는 한국 기업의 현실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다.[※참고: 이사회란 기업의 업무집행, 대표이사 선정, 주식 발행 등을 감독하고 관련 사안을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구다.] 

물론 기업의 수장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일례로 국내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을 들여다보면 다른 기업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조직이 있다. 바로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위)다.
 
삼성 준법위는 주요 계열사들의 준법경영ㆍ내부통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2020년 2월 출범한 독립적ㆍ자율적 위원회다. 준법위 활동은 준법감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6인의 외부위원과 1인의 내부위원이 조직을 구성해 삼성 주요 계열사의 준법활동을 감시하는 형태로 이뤄진다.[※참고: 현재 준법위와 활동 협약을 맺은 계열사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의 7개사다.]
 
사실 삼성이 준법위를 마련한 계기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정경유착을 끊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한 것이 시발점이었다(2020년 1월). 준법위 출범 당시 ‘이 부회장의 감형을 이끌어 내기 위한 면피용 기구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준법위가 매달 정례회의를 개최해 각종 제보ㆍ신고를 관리하고 내부거래 등을 꾸준히 감시한 결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사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 삼성그룹의 사내식당 운영에 경쟁입찰을 도입한 것 모두 준법위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2020년 5월 이 부회장의 ‘대국민사과’도 출발점은 준법위였다. 김지형 당시 삼성 준법위원장은 경영권 승계, 노조 문제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이 부회장에게 사과를 권고했고, 이 부회장이 이를 수용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사과를 통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 ▲무노조 경영을 폐기할 것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할 것을 약속했다. 준법위라는 감시의 눈이 생기자 마침내 ‘회장님’도 고개 숙여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내놓은 거다.

한계 드러낸 준법감시위원회 

앞서 살펴봤듯 삼성 준법위는 세간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나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며 의미 있는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그 한계점이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지난 2월 새롭게 출범한 이찬희 위원장 체제의 제2기 준법위가 ‘묘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그 배경부터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경❶ 취업제한 논란 = 2기 준법위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 발단은 지난 6월 경찰이 이 부회장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약칭 특경가법)’상 취업제한 혐의에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시계추를 돌려 경찰의 판단이 논란을 부른 이유를 되짚어 보면 이렇다.

이 부회장은 2021년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8월 이 부회장은 광복절 기념 가석방 대상자에 포함돼 출소했다. 

다만, 가석방 대상자인 이 부회장은 곧바로 경영활동에 복귀할 수 없었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특경가법에서 ‘형 집행 종료 이후 5년간’ 취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활동을 하기 위해선 법무부 장관의 별도 승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가석방 뒤 곧바로 삼성전자 사옥으로 직행해 업무 현안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명백한 취업제한 위반인데 법무부가 봐주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법무부는 “이 부회장은 무보수ㆍ비상근ㆍ미등기 임원이어서 취업제한 대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미취업 상태”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주식회사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데, 미등기 임원은 이사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부회장을 ‘실질적 취업 상태’의 임원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는 경영진의 부정不正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고 경제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한 취업제한 규정의 취지를 법무부 스스로 부정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법무부를 향해 “(이 부회장이) 규정 위반 논란을 피해갈 수 있는 꼼수를 직접 찾아준 꼴”이란 비판이 쏟아졌던 이유다. 

■배경❷ 비상식의 콜라보 = 아이러니한 건 법무부가 세간의 지탄을 받으며 (이 부회장의) ‘방탄복’ 역할을 하는 사이 정작 이 부회장은 가석방 이후 지금까지 ‘미취업 부회장’이란 유일무이한 타이틀로 삼성전자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최근 경찰의 무혐의 처분까지 더해지면서 이 부회장은 사실상 ‘취업제한 규정 위반’의 꼬리표까지 떼어냈다.  

문제는 법무부와 경찰의 법 해석이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공정거래법에는 ‘동일인’이라는 용어가 있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의 범주를 결정하고 그 지배자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핵심 개념으로, 우리가 통상 부르는 ‘재벌총수’가 바로 동일인이다. 공정거래법 제2조에선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을 기업집단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삼성이란 기업집단의 동일인이 이 부회장이라는 데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법무부와 경찰은 ‘무보수ㆍ미등기ㆍ비상근’이란 이유로 이 부회장을 ‘미취업 상태’로 분류했다. 이같은 비상식적인 법 해석은 우리 사회에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재벌총수가 죄를 저지르고도 회사에 공식적인 적籍을 두지 않고 급여만 받지 않으면 경영에 복귀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2기 준법위 행보 = 이런 상황에서 재계는 되레 이 부회장의 사면赦免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인플레이션, 긴축적 통화정책, 그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나라경제가 심상치 않으니, 이 부회장이 ‘해결사’ 역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공교롭게도 이 사면론에 삼성그룹 2기 준법위를 이끌고 있는 이찬희 위원장이 가세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6월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진 간담회가 열린 날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은 코로나19 이후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국가 경제가 발전하고 본인들의 생활이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최고경영진이 재판 때문에 제대로 경영을 할 수 없다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서 (사면)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 위원장의 발언은 1기 활동을 통해 준법경영의 토대를 마련한 위원회의 가치를 되레 격하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룹의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책임자가 재판 중인 기업총수의 사면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준법위의 약속을 퇴색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상법상 회사의 소속 기관도 아니고 법인격도 없는 준법위가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준법감시위원회 존속하려면… 

삼성 준법위는 누구도 견제하거나 감시하지 못했던 ‘회장님’을 공식적인 감시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준법위는 최고경영진의 변호인이 아닌 감시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아무리 준법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았다고 해도, 그룹의 총수인 회장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다면 위원회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일수록 준법위는 그룹 차원의 준법감시를 어떻게 해나갈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그룹의 준법 리스크가 누구에게서 비롯됐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감시와 경계, 그것만이 삼성 준법위가 국내 기업의 준법경영 롤모델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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