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점 없던 현대모비스와 LG전자
전기차 부품 시장서 뜻밖의 격돌
향후 자율주행차 시장까지 노려
그룹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 높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던 LG전자와 현대모비스가 뜻밖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다름 아닌 전기차 부품 시장에서다. 이들의 대결이 흥미로운 건 자동차의 ‘껍데기’만 빼고 다 만드는 LG그룹과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꾸려는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어서다.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운 대결이 시작됐다. 

전기차 부품 라인업을 강화하며 급성장한 LG전자가 국내 자동차 부품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사진=LG전자 제공]
전기차 부품 라인업을 강화하며 급성장한 LG전자가 국내 자동차 부품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사진=LG전자 제공]

70%. 이 숫자에는 두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 첫째,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3만개에 달하는 내연기관차 부품의 70%가 쓸모를 잃어버렸다. 둘째, 전기차의 핵심이 되는 전장부품의 비중은 전체 부품의 70%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 두가지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자동차 부품 시장의 대세는 이제 ‘전장電裝(자동차에 들어가는 전기ㆍ전자장비)’이란 점이다. 실제로 2015년 284조원 규모였던 글로벌 전장부품 시장은 2020년 360조원 규모로 몸집이 커졌다. 올해 이후 전장부품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도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전장부품은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산업인 만큼 향후 자동차 부품 시장을 넘어 미래차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꿀 ‘전장’을 둘러싼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국내에서도 ‘빅매치’가 본격화하고 있다. ‘백색가전’의 LG전자와 20년 전통의 부품업체 현대모비스가 대격돌을 앞두고 있어서다.

LG전자와 현대모비스 모두 새롭게 펼쳐질 자동차 부품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장사업에 힘을 쏟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전’과 ‘자동차ㆍ철도’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회사의 행보가 최근 들어 쌍둥이처럼 닮아가고 있는 거다. 


실제로 LG전자와 현대모비스의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겹치는 부문이 상당수다. 2013년 본격적으로 전장사업에 뛰어든 LG전자는 가전제품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전동 파워트레인(모터ㆍ인버터ㆍ컨버터), 디스플레이(디지털계기판ㆍ헤드업디스플레이ㆍ조명), 차량용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ㆍ커넥티비티) 분야를 키우고 있다. 올해 들어선 파워트레인과 인포테인먼트 부문에서 각각 합작법인을 출범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현대모비스도 전장사업을 확대하며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지금까지 완성차에 탑재할 부품의 모듈화ㆍ시스템화 등에 주력하던 현대모비스는 매년 총매출액의 3%가량을 ‘미래차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동 파워트레인,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모듈, 디지털계기판ㆍ조명 등이 포함돼 있다. 공교롭게도 LG전자의 주력 사업과 ‘판박이’다.

LG전자와 현대모비스의 닮은꼴 행보는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두 회사는 현행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인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와 V2X(차량사물통신) 센서를 개발하는 데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전기차에 필요한 부품을 장악함과 동시에 자율주행차 시장까지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두 회사의 경쟁이 그룹 대결로 커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거다. LG그룹은 자동차 부문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미래차 시장에서도 이어가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 패권을 노리는 두 그룹의 야심은 글로벌 기업과의 합작법인 설립, 지분투자 등의 공격적인 행보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계열사 경쟁이 곧 그룹 기싸움

먼저 LG그룹의 행보를 보자.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후 3년 동안 자동차 사업부에만 2조8212억원을 쏟아부은 LG그룹은 지난해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 구동장치(LG마그나), 자율주행 센서ㆍ통신(LG이노텍ㆍLG유플러스) 등 미래차 3대 축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LG 관계자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 간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자동차 시장에서의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LG그룹이 자동차 플랫폼 사업에도 관심을 쏟는 듯한 징후도 보인다. LG전자가 지난 3월 스위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룩소프트)와 합작법인 ‘알루토’를 출범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LG전자는 이를 발판으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는 한편 승용차 호출 시스템 등의 서비스 분야까지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주사 ㈜LG가 지난 7월 택시앱 서비스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에 1000억원을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최근 애플카 협력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LG전자는 전장부품을 중심으로 미래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애플카 협력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LG전자는 전장부품을 중심으로 미래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LG그룹은 계열사인 LG유플러스를 통해 플랫폼 사업을 펼칠 만한 노하우를 어느 정도 축적해둔 상태다. 통신 서비스에 강점을 갖고 있는 LG가 향후 자동차 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로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엔 현대차의 발걸음을 보자. 현대차그룹 역시 최근 3년간 50곳의 지분을 사들일 정도로 역동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AI)ㆍ자율주행 기술개발 업체는 물론 승차공유서비스, 드론, 웨어러블 기기 업체까지 그 분야도 다양하다. 

합작법인 설립에도 적극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6월 자율주행 전문기업(앱티브)과 합작법인 ‘모셔널’을 출범한 데 이어 올 3분기엔 LG에너지솔루션과 협업해 배터리 생산을 전담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부문에서는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과 협업해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배터리 부문에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해 예상치 못한 변수를 통제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미래차 시장 ‘빅뱅’ 전초전 


현대차그룹의 행보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지난해 7월 소프트웨어 전문법인 ‘현대오토에버’를 출범했다는 거다. 자율주행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소프트웨어 기술이 중요해진 만큼 전문법인을 통해 IT기업의 DNA를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네이버ㆍKT와 플랫폼 서비스 및 통신 분야에서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만 만드는 기업에서 벗어나 테크기업으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다. 

전기차 부품부터 자율주행 기술, 플랫폼 서비스까지 장악하려는 두 그룹의 행보에 시장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과연 이들의 격돌은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까.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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