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블루와 집의 가치
내재한 갈등 수면 위로 드러나
미안함은 관계 회복의 걸림돌

다시 ‘집의 시대’다. 코로나19라는 몹쓸 바이러스가 퍼지자 사람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집에 머물렀다. 문제는 집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갈등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맞벌이ㆍ한부모ㆍ조손 가정의 고민도 깊어졌다. 집에 홀로 남은 아이들이 학습 격차뿐만 아니라 소외감ㆍ우울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렇게 부모가 해야 할 몫은 많아졌는데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자녀를 위해 애쓰면서도 늘 미안해하는 부모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럴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유혜진 소장과 박종수 상담자, 두 전문가에게 코로나블루와 집의 역할, 그리고 내 아이 상담법을 들어봤다. 

유혜진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과 박종수 상담자는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더불어 부모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혜진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과 박종수 상담자는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더불어 부모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혼공, 혼밥, 혼활… 혼자서 일상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아이들이 ‘생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김현수 명지병원 교수ㆍ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 인용).” 코로나19로 ‘학교의 빈자리’가 생겼다. 그렇게 텅 빈 공간은 맞벌이 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자녀를 돌볼 부모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어서다. 

사실 텅 빈 공간은 미세한 부분까지 건드렸다.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없게 되자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선생님이 눈앞에 없으니 학습 결손이 심화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니 혼자서 일상을 보내는 아이들도 늘어났다. 작지만 심각한 파편들이 홀로 남은 아이들을 괴롭힌 셈이다. 


물론 9월 이후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교육부가 6일부터 초ㆍ중ㆍ고등학교 전면등교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경제 활동과 교육·양육 부담을 져온 부모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교육부가 지난 6월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2학기 등교 확대 관련 설문조사(6월 3~9일)’에서 전체의 77.7%가 “전면등교를 찬성한다”고 답했다. 교육부는 “수도권 외 지역에선 9월 중 전체 학교의 80~90%가 전면등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벌써부터 일부 지역에서 교내 코로나19 확진자·자가격리자가 발생하면서 등교수업을 다시 원격수업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전면등교’와는 별개로 ‘집’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단 거다. 그건 맞벌이ㆍ조손ㆍ한부모 가정도 마찬가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함께 코로나19 시대에 필요한 부모의 역할을 짚어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혜진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과 박종수 상담자는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더불어 부모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코로나19로 아이들의 교육과 돌봄에 공백이 생겼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심리적 공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인 듯합니다. 
유혜진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이하 유혜진 소장) : “그렇습니다. 학교 교육이 중단되면서 부모는 직장에 나가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아졌어요. 적절한 ‘마음 돌봄’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늘었죠.”

✚ 센터에 찾아오는 아이들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코로나19가 터진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나요. 
박종수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자(이하 박종수 상담자) : “‘코로나블루’라는 단어가 생겨났듯 무기력감ㆍ우울감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코로나로 인해 늘어났다기보단 그동안 내재했던 갈등이나 어려움이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증폭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 아무래도 예전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다 보니 부모와 자녀 간 갈등도 늘었다고 하던데요. 
유혜진 소장 : “가족도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갈등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에요. 특히 자녀가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자녀에게 생활습관적인 부분까지 지적하는 횟수가 늘다보니 마찰이 잦아지는 거죠. 부모들은 ‘참다 참다 지적한다’고 토로하지만, 아이들은 ‘꼭 (공부ㆍ정리 등을) 하려고 하면 잔소리를 해서 안 하게 된다’고 얘기를 해요.” 

✚ 뉴스를 접하다 보면, 이런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기도 하는 듯합니다. 
유혜진 소장 : “이렇게 마찰이 잦아지면 갈등의 골이 깊어지죠. 아이들의 가출이나 자해ㆍ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안타까운 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 더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집의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부딪힘’이 잦을 수밖에 없어서죠. 아울러 부모가 알코올이나 폭력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심화했다. 아동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 조사(2020년 6월ㆍ만 4~19세 기준)에 따르면 소득수준이 낮은 가정의 아동은 ‘경제적 상황’ ‘학업 상황’에 대한 걱정 수준이 더 높고, ‘부모와의 관계’ 만족도는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9월부터 2학기 전면 등교를 추진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교육부가 9월부터 2학기 전면 등교를 추진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무엇보다 아이들의 고충이 클 듯합니다. 
박종수 상담자 : “그렇죠.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코로나19로 친구들을 드문드문 만나다 보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더 어려워졌죠.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대면할 기회가 줄면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거고요. 스마트폰에 시간을 쏟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도 대면(만남)에 대한  ‘목마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부모 역시 ‘피로도’가 높아졌을 텐데요. 
박종수 상담자 : “그렇습니다. 부모가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일은 많아졌는데, 코로나19로 상황은 더 나빠졌죠. ‘(자녀를) 잘 돌봐야 한다’는 마음은 커졌는데 여력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유혜진 소장 : “부모가 다중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 스트레스를 자녀와의 관계에서 푸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하고요.” 

✚ 특히 맞벌이ㆍ한부모ㆍ조손 가정 등의 어려움이 더욱 크겠네요. 
박종수 상담자 : “맞벌이 가정에선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한 사람이 일을 관둬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선뜻 선택하지 못하죠. 혼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한부모 가정의 어려움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고요.”

유혜진 소장 : “부모가 어떻게든 돌볼 수 있다면 그나마 조금 낫겠죠. 하지만 아픈 할머니ㆍ할아버지가 손주까지 돌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주거 환경 개선이나 경제적 어려움 해결이 시급한 가정도 적지 않고요. 이렇게 ‘먹고사는 일’이 힘들다 보니 아이들의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는 거죠.” 

✚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겠네요. 
박종수 상담자 : “그렇습니다.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면서 사회가 담당해온 돌봄이나 교육에 공백이 생겼을 때 많은 아이가 어려움에 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취약한 부분을 제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혜진 소장 : “일시적인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 이렇게 학교의 공백이 장기화하면 아이들의 심리적 문제가 우려되지는 않나요. 
유혜진 소장 : “비대면 시스템이 장기화하면 아이들이 오프라인상에서 관계를 맺는 걸 어색하게 받아들일 순 있습니다. 부모들이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 형성을 잘 해둔다면,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간 뒤 다시 사회로 나갔을 때 훨씬 수월하게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 결국 가정에서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겠네요.
유혜진 소장 : “부모ㆍ자녀 간 ‘소통’이 가장 중요합니다. 코로나19 이전이든 이후든 부모ㆍ자녀 관계 형성이 학교·사회 생활을 하는 데 초석이 되죠.”


✚ 코로나19 시대에 자녀와 관계 맺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종수 상담자 : “먼저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아이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학창시절에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맞게 됐죠. 정상적으로 학교에 갔다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겪고 있는 셈이에요. 부모는 ‘온라인 수업을 잘 듣지 않는다’며 꾸지람하지만, 사실 아이들이 ‘마음잡기’가 어려운 상황인 건 사실이에요. 마치 방학인 것 같고, 늦잠도 자고 싶고 한 게 ‘보통 인간’의 마음이잖아요. 그런 마음에 공감을 하는 게 첫걸음이라고 봅니다.” 


✚ 하지만 부모로선 걱정된 마음에 잔소리가 늘 수밖에 없지 않나요. 
박종수 상담자 : “그래서 아이들을 좀 더 믿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생활 습관을 잘 들였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품곤 하죠. 이 시기를 허투루 보냈다가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도 갖고 있고요. 하지만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다’ ‘내 아이가 뒤처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상담하면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본인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거든요. ‘좋은 사람’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 말이죠. 그런 아이들을 좀 더 믿어줬으면 좋겠습니다.”


✚ 부모가 이해의 폭을 넓혀야겠군요. 
유혜진 소장 : “부모의 노력이 좀 더 필요한 건 맞습니다. 분명한 건 아이들은 부모가 노력하면 반드시 반응할 거란 점입니다. 물론 부모가 기대한 반응이 아닐 순 있어요. 아이들이 ‘잘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 꼭 부모를 만족시키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사실 2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로 부모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굿네이버스가 ‘코로나19 이후 부모(보호자)의 양육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73.2%가 “코로나19 이전보다 양육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생(77.2%), 미취학 아동(73.8%), 초등학교 저학년생(73.8%) 자녀를 둔 부모의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났다.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찾아오는 부모들의 고민도 다르지 않다. 

✚ 코로나19 국면에서 스트레스가 커진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유혜진 소장 : “언뜻 자녀의 행동이 ‘문제 행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관심받고 싶어서 노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아봐 줘야 합니다. 이렇게 부모와 갈등을 겪고, 소통하고, 이해하고, 이해받는 경험을 통해 아이는 반드시 성장할 겁니다.” 

✚ 맞벌이ㆍ한부모·조손 가정 부모로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자녀와 관계 맺기를 하는게 좋을까요? 
유혜진 소장 : “‘한부모 가정이라서 내 자녀에게 결핍이 생기진 않을까…’란 마음을 갖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 역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자녀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미안해하면 자녀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엄마가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존재일까. 나는 짐스러운 존재일까.’ 아이들이 이런 마음을 품으면 투정도 응석도 못 부리는 어른아이가 될 수 있어요. 결핍된 부분이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문제 행동을 일으킬 우려도 있고요.”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유혜진 소장 :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미안함’이 아닙니다. 짧은 시간이나 한정적 환경에서도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 ‘언제든 내 곁에 있어준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박종수 상담자 : “현실을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 벌어진 상황 자체가 모두에게 힘든 게 사실이죠. 그런 상황에서 한부모ㆍ맞벌이ㆍ조손 가정의 부모나 조부모는 ‘내가 전보다 자녀에게 더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요. ‘퍼펙트’한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말고 ‘이만하면 괜찮은’ 부모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그 선의善意를 분명히 알고, 건강하게 자라날 겁니다.”

✚ 마지막으로 팬데믹 시대를 지나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한마디씩 해주신다면요. 
유혜진 소장 : “물이 아래로 흐르듯 부모가 아이를 좀 더 이해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조건 ‘부모’라는 역할에 매달려 자녀와 갈등하고 관계를 악화시키지 마세요. 서로 ‘심리적 공간’을 만들길 추천합니다. 단 30분만이라도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동네 한바퀴를 돌며 부모가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게 서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박종수 상담자 : “아이들에겐 해줄 말이 많지 않아요.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갈 거다. 그리고 너희들에겐 강한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분명 잘 자랄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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