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건축은 일상과도 직결
도시의 지속가능성 고민해야
작가들의 다양한 제안 눈길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제3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도시 혹은 건축이란 단어만 보고 나와는 무관한 전시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이 전시전은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바꿔줄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현장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짚어봤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도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일러스트=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제공]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도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일러스트=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제공]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활력이 넘치기 마련이다. 다양한 인프라와 산업이 생겨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넘쳐난다. 그 안에선 돈이 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더 넓게 팽창한다. 현대의 도시는 그렇게 생겨났다. 

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도시엔 각종 문제가 따라붙는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만큼 다양한 갈등이 생겨나고, 범죄도 늘어난다. 개발이 늘면서 자연은 훼손되고, 공해는 피하기 어렵다. 코로나19를 통해 도시는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도시는 수많은 가능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가진 셈이다. 

그럼 도시의 장점들을 최대한 유지하거나 늘리면서 도시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할 수는 없을까. 도시건축(도시를 설계하는 일)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방향성을 제시해왔다. 

예컨대 전철을 통해 대도시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것도, 어두운 골목길을 환하게 만들거나 아기자기한 벽화를 그려 넣어 범죄율을 낮추는 것도, 가로등을 LED로 바꿔 전기소비량을 줄이는 것도 모두 도시건축의 일부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형태가 늘어나자 일부 도시에선 학교나 공원을 아파트 중간층에 끼워 넣는 형태의 초고층 아파트를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가 없어지지 않는 한 도시건축은 늘 새로운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 9월 16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그런 고민들을 풀어놓은 ‘집합체’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통해 수많은 작가들이 각종 프로젝트와 작품으로 다양한 도시건축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있어서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올해로 3회째(격년 개최)를 맞았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53개국 112개 도시, 190명의 작가, 40개 대학과 17개의 해외 정부·공공기관이 참여했다.

주제는 ‘크로스로드, 어떤 도시에서 살 것인가’다.[※참고: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인 도미니크 페로는 ‘도시의 회복력’에 중점을 두고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도시의 회복력’이란 도시에 예기치 못한 충격이 가해졌을 때 단순한 복구뿐만 아니라 충격의 피해를 줄이거나 취약성을 개선해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크로스로드’는 ▲지상·지하 ▲유산·현대 ▲공예·디지털 ▲자연·인공 ▲안전·위험 등 5가지의 대비되는 소주제를 의미한다. DDP 배움터 지상 2층에서부터 지하 2층까지 내려오면서 이 소주제에 포함된 프로젝트들을 만날 수 있다. 

과연 이 프로젝트들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을까. 몇가지 눈에 띈 작품을 살펴봤다. ‘시카고: 지열을 통한 냉난방 개입’이라는 프로젝트는 미국 시카고의 혹독한 기후와 이에 따른 건물에너지 소비량 증가에 착안한 것으로, 제목에서처럼 지열을 통한 냉난방 구조를 제안했다. 도시 지하에 위치한 280㎞의 터널에 지열에너지를 공급해 도시 생활이 가능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다. 

‘광합성 빙산과 UFO’라는 프로젝트는 거대한 온실 위에 지표면이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 있어 UFO를 연상시키는 땅 위에 마을이 있는 것을 가정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자치지역인 엘에히도에 있는 온실마을의 상황을 작가가 재해석한 것이다.

온실에선 친환경을 표방한 유기농 식품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어 얼핏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식품을 생산하는 건 초국적 거대기업이다. 그 안에서는 값싼 노동력의 착취, 온실로 인한 천연자원 고갈, 각종 플라스틱 공해가 일어난다. 친환경으로 포장된 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다. 

‘오픈바이크’라는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교통수단을 제안한다. 마치 플라스틱 판에 붙어 있는 조립품을 떼어내 장난감을 만들 듯 나무자전거의 부품이 나무판에 붙어 있다. 

나무판에 붙은 부품을 그대로 떼어내면 실제 자전거로 조립할 수 있다. 무공해 교통수단인 셈이다. 사용자는 제작자에게 자신만의 디자인 데이터를 전송하면 3D 프린팅 기술 등을 이용해 현지에서 제작할 수 있다.  

도시건축이 가야 할 방향 

‘사람을 위한 주택’은 다양한 주택의 구조를 미니어처로 표현한 프로젝트다. 각각의 평면도와 실제 주택 이미지도 담고 있다. 여기서 주택은 장소의 특성과 가족 구성원에 맞춰 설계한다는 게 핵심이다. 작가는 태양의 복사열을 막고, 단열을 최적화하는 주택의 기본을 지킨다면 낭비하는 공간 없이 온전히 주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신개념 아파트 발코니를 제안한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발코니는 새로운 정원’이라는 프로젝트인데 제목 그대로 발코니를 마당이나 정원처럼 꾸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원은 인공의 산물이지만 완전한 인공물인 발코니와 만나 자연으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도심 속에 공원을 두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연친화적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 건축자재를 재해석한 프로젝트도 있다. ‘지속을 위한 무장해제’라는 작품은 단단하고 무거운 자재인 돌이 때에 따라선 한없이 가볍고 부드러운 자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있는 한 예배당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는데, 하부에서부터 돌과 돌 사이에 간격을 두고 돌의 가장자리들이 서로 지지하는 구조로 쌓아 올리면 돌담 중간에 빛과 바람이 통과하고, 시야도 열린다.

단단하고 꽉 막힌 느낌을 주는 자재로 만든 건축물이 정반대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는 거다. 작가는 서울시의 돌담이 이렇게 개방된다면 더 민주적인 건물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지를 묻는다. 

DDP 주변 작업장의 도구와 기계에 카메라를 설치해 작업 현장 곳곳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저류(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깊은 곳에서 나타나는 움직임)’라는 프로젝트는 우리 주변의 노동현장을 돌아보게 한다.

동대문 인근의 작은 제조업체들은 한국이 현대화하는 시기에 처음 등장했지만, 청계천 복원과 DDP의 등장 등으로 대대적인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외곽 창고로 밀려나 버렸다. 

작품은 거리에 산재하던 노동현장이 사라짐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 연결성이 단절됐음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도시의 장점을 무너뜨리는 요소라는 걸 작가는 지적하고 있다. 

한 외국인 작가의 일침

이처럼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전시된 프로젝트들은 각각 현재의 도시건축이 가진 한계를 비판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제공한다. 중요한 건 한국의 도시들이 이런 새로운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실험할 준비가 돼 있냐는 점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참여한 한 외국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이나 회복력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도시들은 개발에 많은 비중을 둔다. 뭐든 밀고 새로 짓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절이 일어나고 갈등도 생긴다. 도시의 미래를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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